한티 순교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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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 가산과 팔공산 사이 깊은 산중턱 (해발 600m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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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 박해 시대 신자들이 숨어 살며 교우촌을 형성하고, 수많은 순교자를 낳은 천혜의 은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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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황: 순교자 묘역, 피정의 집, 순례자 성당 등이 조성된 대구대교구 대표 성지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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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정착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을해박해(1815) 이후 대구 감옥에 갇힌 신자 가족들이 은신처로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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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김현상 요아킴 가정이 신나무골에서 이주해 와서 교우촌 형성의 중심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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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움막을 짓고 사기·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생계 유지. 이후 서촌, 한밤, 원당 등 인근 지역 신자들이 입교하여 1850년대 큰 교우촌으로 성장.
박해와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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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신박해(1860): 신나무골에서 피신한 배정모 가족이 한티 사기굴에 숨어 있다가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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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박해(1866): 전국적으로 8천여 명 순교. 이때 대구·신나무골 신자들이 한티로 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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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 박해: 서울 포졸과 가산 군사들이 한티에 들이닥쳐 신자들을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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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가롤로 회장, 아내 최 바르바라, 동생 조 아기 등 약 40명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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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신자들이 돌아와 보니 마을은 불타고, 온 산에 시신이 방치되어 있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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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결과, 37기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한 무덤에 여러 명 합장된 경우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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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순교자: 조 가롤로, 최 바르바라, 조 아기, 서태순 베드로 등.
교우촌 재건과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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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후 살아남은 조영학 토마, 박만수 요셉, 김재윤 플로리아노, 김윤하 안드레아 등 신자들이 합심하여 마을 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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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묘역은 ‘거룩한 땅’이라 하여 밟지 않고, 인근에 새 마을을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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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83년 로베르 신부가 성사 집행 (신자 39명, 고해 20명, 영성체 19명, 세례 3명, 혼배 1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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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 신자가 80명까지 증가했으나 점차 이주로 쇠퇴.
성지 조성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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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부터 공적 순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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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성지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과 묘역 확인 작업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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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피정의 집 봉헌, 2000년 영성관, 2004년 순례자 성당 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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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2층에는 성체조배실이 마련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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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2015년 대구대교구 신학생들이 이곳에서 입학식과 30일 피정을 거행.
현황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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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묘역 입구에 대형 십자가와 야외 제대, 십자가의 길 14처 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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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교구 신앙의 초석이 된 교우촌으로, 신나무골과 함께 대구 교회 역사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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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전국 순례자들이 방문하여 피정과 기도를 드리는 영적 안식처로 자리 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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