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 순교성지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성지

구 분 대구대교구
주 소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 5   📍지도
홈페이지 http://www.hanti.or.kr
관련 기관 한티 피정의 집
추가 자료 🗂️자료+4개 🖼️이미지+31개

한티 순교성지

  • 위치: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득명리, 가산과 팔공산 사이 깊은 산중턱 (해발 600m 이상)

  • 의미: 박해 시대 신자들이 숨어 살며 교우촌을 형성하고, 수많은 순교자를 낳은 천혜의 은둔지

  • 현황: 순교자 묘역, 피정의 집, 순례자 성당 등이 조성된 대구대교구 대표 성지

형성

  • 신자 정착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을해박해(1815) 이후 대구 감옥에 갇힌 신자 가족들이 은신처로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됨.

  • 1837년 김현상 요아킴 가정이 신나무골에서 이주해 와서 교우촌 형성의 중심이 됨.

  • 초기에는 움막을 짓고 사기·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생계 유지. 이후 서촌, 한밤, 원당 등 인근 지역 신자들이 입교하여 1850년대 큰 교우촌으로 성장.

박해와 순교

  • 경신박해(1860): 신나무골에서 피신한 배정모 가족이 한티 사기굴에 숨어 있다가 체포.

    • 남편 배정모는 배교, 아내 이선이 엘리사벳과 장남 배 스테파노는 작두날에 목이 잘려 순교.

  • 병인박해(1866): 전국적으로 8천여 명 순교. 이때 대구·신나무골 신자들이 한티로 피신.

  • 1868년 박해: 서울 포졸과 가산 군사들이 한티에 들이닥쳐 신자들을 체포.

    • 조 가롤로 회장, 아내 최 바르바라, 동생 조 아기 등 약 40명 순교.

    • 살아남은 신자들이 돌아와 보니 마을은 불타고, 온 산에 시신이 방치되어 있었다 함.

    • 발굴 결과, 37기의 무덤이 확인되었고, 한 무덤에 여러 명 합장된 경우도 있음.

  • 대표 순교자: 조 가롤로, 최 바르바라, 조 아기, 서태순 베드로 등.

교우촌 재건과 성장

  • 박해 후 살아남은 조영학 토마, 박만수 요셉, 김재윤 플로리아노, 김윤하 안드레아 등 신자들이 합심하여 마을 재건.

  • 순교자 묘역은 ‘거룩한 땅’이라 하여 밟지 않고, 인근에 새 마을을 형성.

  • 1882~83년 로베르 신부가 성사 집행 (신자 39명, 고해 20명, 영성체 19명, 세례 3명, 혼배 1쌍).

  • 1900년대 초 신자가 80명까지 증가했으나 점차 이주로 쇠퇴.

성지 조성과 발전

  • 1967년부터 공적 순례 시작.

  • 1980년대 성지 조성을 위한 부지 매입과 묘역 확인 작업 진행.

  • 1991년 피정의 집 봉헌, 2000년 영성관, 2004년 순례자 성당 축성.

  • 성당 2층에는 성체조배실이 마련됨.

  • 1995~2015년 대구대교구 신학생들이 이곳에서 입학식과 30일 피정을 거행.

현황과 의의

  • 순교자 묘역 입구에 대형 십자가와 야외 제대, 십자가의 길 14처 조성.

  • 대구대교구 신앙의 초석이 된 교우촌으로, 신나무골과 함께 대구 교회 역사의 뿌리.

  • 지금도 전국 순례자들이 방문하여 피정과 기도를 드리는 영적 안식처로 자리 잡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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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 4 자료 등록
4 2020년 한티피정 프로그램 K. Baptista (819) 2020/02/13
3 한티순교성지 2019년 피정 프로그램 K. Baptista (733) 2019/01/18
2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성지 K. Baptista (752) 2018/10/29
1 한티 순교성지 나눔지기~♡ (737) 2007/08/30

🖼️ 사진 : 31 사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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