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홍리 공소
내포 지역의 오래된 신앙 공동체 위에 서산 본당의 세 번째 자리(1919~1937) 로 기능했던 곳으로, 한옥 구법을 적용한 성당·사제관이 남아 근대 가톨릭 한옥 건축의 귀중한 실물 자료다. 1937년 본당이 읍내(현 서산동문동)로 옮겨간 뒤에도 공소로 존속하며 지역 신앙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설립과 초기 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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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의 옛 이름은 ‘가재 공소’(갈재 아래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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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세 신부 1883–1884년 교세표에 공소명이 확인되며, 1884–1885년 신자 81명 → 이듬해 102명(서산 최대 공소) → 1886–1887년 52명으로 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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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까지 두세 신부 관할, 이후 양촌(→합덕) 본당 관할로 전환.
수곡 본당 설립과 서산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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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수곡 본당(초대 주임 폴리 신부) 설립, 관할: 덕산·해미·서산·홍주·결성. 1909–1910년 총 1,30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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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소집으로 폴리 귀국 후 공백을 메운 라리보 신부가 광역 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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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안학만 신부 부임. 뮈텔 주교 결정으로 본당을 서산 금학리(소길리) 에 둠. 당시 금학리는 신자 288명의 견고한 공동체.
상홍리로의 본당 이전(1920)과 성당 건립(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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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0 폴리 신부 복귀, 1920.3.25 본당을 상홍리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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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3~4월 사이 한옥 목조건 성당 완공, 함께 사제관도 축조된 것으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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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리 종(1923경 종루 설치), 서산 천주교 청년회(1922), 야학·강습소 개설 등 멜리장 신부 시기 사목 활성화.
읍내 이전과 공소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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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신부가 본당 발전을 위해 서산 읍내 부지 매입 후 1937.10.5 동문동 성당 축성, 상홍리는 17년 만에 공소로 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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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홍리 종은 전시 중 공출, 동문동 성당 ‘세사리 종’ 은 광복 후 복원.
순교 유산과 성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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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해미 무명 순교자 유해 발굴·안장(상홍리 공소 뒤 백씨 문중 묘역) → 1955년 순교탑 건립, 1977년 정화, 1995년 해미 성지로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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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종루 복원, 공소 강당·사제관 보수.
건축과 문화재 가치
오늘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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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홍리 공소는 서산 본당 변천의 핵심 고리이자, 내포 신앙사의 지속성과 기억을 전하는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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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순교 성지와 연결되는 지역 순교 서사의 중간 거점으로서 교육·순례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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