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聖女 유소사 체칠리아(1760-1839),과부,옥사형(79세로 1839년 11월 23일 순교)
글쓴이 :  나눔지기~♡님이 2011-04-02 20:36:36에 올려주신 글  [목록] ... 조회수(879)
 
聖女 유소사 체칠리아(1760-1839),과부,옥사형(79세로 1839년 11월 23일 순교)

순교 성인들 중에는 유명한 순교일가(殉敎一家)가 여럿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소사(세실리아)의 집안도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실리아에 대한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그녀의 신앙생활과 함께 그 가족의 순교 내용을 이해하고 깊이 교훈을 얻게 될 것이다.
유 소사 체칠리아는 신유박해 때에 순교한 유명한 정 약종 아우구스띠노의 후처로서 남편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교하여 깊은 신심을 보여주었다. 정 약전을 그의 시숙이며, 정 약용(요한)은 시동생이다. 남편이 체포될 당시 그녀도 세 아이와 함께 옥에 갇혔는데, 남편이 순교한 후 모두가 석방되었다. 어려운 처지에 살 길이 막연한 체칠리아는 광주(廣州)의 마재에 있는 시아주머니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시아주머니는 그들을 도와 주기는 커녕 여러 가지로 괴롭히기만 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맏딸이 사망하였고, 1801년 순교한 전실(前室)의 아들 정철상(가롤로)의 아내와 아들도 사망하였다. 이제 아들 성 정하상(바오로, 1839년 9월 22일 참수)과 딸 성녀 정정혜(엘리사벳) 만이 그녀의 곁에 남아 있게 되었다.
어느날 밤 체칠리아는 꿈속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나는 천국에 방 여덟이 있는 집을 하나 지었는데 다섯은 벌써 차고 셋만 남았소. 그러니 생활이 어럽더라도 참아 받으시오. 그
리고 꼭 우리를 만나러 오도록 하시오"하였다. 과연 가족은 여덟 식구에게 이미 다섯이 순교하였으니 이 꿈은 나중에 꼭 들어 맞았다.
그 꿈은 그녀의 가슴에 깊이 인상을 박아주어 큰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의 아들 바울로는 신심깊은 생활을 하며 선교사들을 조선에 영입하기 위하여 여러 해동안 어머니와 떨어져 살았으니 체칠리아에게는 이것이 큰 시련이었고 이들이 북경으로 떠날 때마다 가슴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지는 아픔을 기도로써 참아 이겨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을 도왔으니 어떤 때는 그녀가 먹을 것도 먹지 않고 내어주었다. 또 나이가 너무 많아서 가사를 돌볼 수 없었기에 거의 모든 시간을 기도와 신앙생활에만 전념하며 지냈다.
1839년 기해박해가 한창일 때 그의 조카 한 사람이 시골에 집까지 장만하여 주며 피신하기를 권했으나 "나는 늘 순교하기를 원하였는데 이제 그 기회가 왔으니 아들 바울로와 함께 순교할 생각이다" 하며 거절하였다.
체칠리아는 1839년 7월 19일 79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큰 죄나 지은 국사범과 같이 오라로 꽁꽁 묶어 끌려갔다. 그것은 그의 집이 순교지 집안이요, 그 아들이 외국인과 자주 만났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훗날 순교한 체칠리아의 딸 정정혜도 어머니의 신앙심을 따라 열심히 교리를 이행하고 였다. 그녀는 모친과 오라버리는 따라다니며 항상 그 뒷받침을 하였으며, 일찍부터 동정을 지키려는 마음을 가지고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이러한 생활로 인하여 그녀는 가족들과 같은 시기에 체포되어 압송되기에 이르렀다.
며칠 동안 옥에 갇혀 있던 체칠리아는 포장 앞에 나가 심문을 당하였다. 처음 다섯 번 문초를 당하는 동안 태형을 2백 30대나 맞았다. 기운이 쇠약한 체칠리아였으나 끝까지 참아내며 자세 하나 흩뜨리지 않고 태언자약한 태도를 보여주어 형리들을 놀라게 했다. 체칠리아는 참수하기를 바랐으나 나라 법률에 노인은 참수하기를 금하였으로 재판관들을 때려서 죽이기로 하고 두번이다 그를 불러내어 문초를 거듭하고 위협하고 형벌을 가하였다. 용감한 부인은 모든 것을 말 없이 참아 받았으나 물한 모금도 제대로 마시지 못하고 아픔으로 인해 밤잠을 설치며 계속되는 매로 성한 곳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 광경은 살이 터져서 찢어지고 거의 산 송장처럼 되어 사람이 눈을 뜨고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젊은 사람이라도 그 이상 견딜 수 없었으리라!
마침내 기운이 진하여 옥 바닥에 누워 마지막으로 "예수 마리아!"하고 소리내어 부르고 숨을 거두니 때는 1839년 11월 23일이었다.

<교훈>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이나 역경이 그럴 수 있겠습니까?
박해가 그럴 수 있겠습니까?
굶주림과 헐벗음이 그럴 수 있겠습니까?
혹 위험이나 칼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시련을 넉넉히 이겨냅니다."(로마 8,35-37) 하신 말씀처럼 유 체칠리아가 참수를 당한 것은 아니지만 깊은 신심과 용기를 보여주는 순교로써 하느님의 영화로운 간선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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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체칠리아 (2011/06/15 11:57:55)
    유소사체칠리아 성녀님의 이름으로 살아가기로 주님앞에 약속하였으니 평생 용기와 지혜를 주님께 청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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