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하상 바오로 (St. Paul Chong Hasang)
1) 마재에서 시작된 평신도 사도
- 양근 마재 출생(1795). 부친 정약종 아우구스티노·형 정철상 가롤로 순교, 모친 유 체칠리아도 기해박해 중 순교.
- 어린 나이에 집안의 박해와 몰수로 궁핍을 겪었지만, 어머니에게서 신앙과 기도를 배우며 성장.
2) “목자 없는 교회”를 다시 세우다
- 20세에 서울로 올라와 조증이 바르바라의 집에 머물며 교회 재건을 결심.
- 정약용의 조언을 받으며 교우 조직을 추슬러 평신도 지도자로 자리매김.
3) 북경으로 9번, 변문으로 11번 — 길을 트는 집요함
- 신분을 숨기고 역관 집 하인으로 지내며 중국 왕래 길 확보.
- 북경에서 성사들을 받고, 주교에게 성직자 파견을 여러 차례 청원(북경 9회, 변문 11회 왕래).
4) 사제 영입과 ‘독립교구’의 문을 열다
-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조신철 가롤로 등과 연대, 로마·북경에 탄원.
- 파리외방전교회 위임과 조선 독립교구 설정 성사.
- 유방제 파치피코 신부, 모방 베드로·샤스탕 야고보 신부, 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까지 모셔 들임.
5) 조선 최초의 호교론, 「상재상서」
- 박해가 격화되자 체포에 대비해 재상에게 올리는 글을 집필.
- 국가에 대한 충성과 신앙의 자유가 양립함을 조리정연한 문장으로 변증.
6) 체포, 고문, 그리고 신앙의 증언
- 1839.07.11 체포, 혹독한 심문에도 배교 거부.
- 사제 은신처를 끝내 누설하지 않음.
- 1839.09.22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 순교(향년 45).
7) 유해와 공경
- 고향 인근 배알미리에 안장 → 1981년 수습, 하남·천진암 성지에 봉안.
- 1925 시복, 1984 ‘103위 한국 순교성인’으로 시성.
8) 오늘 우리에게 주는 표징
- 평신도 사도직의 원형: 조직·외교·문필·영성을 겸비한 리더십.
- 교회를 위한 끈기와 연대, 그리고 법정에서의 담대한 변증.
9) 마음에 새길 한마디
“조선의 신하로서 나라를 사랑하듯,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을 섬깁니다.”
“믿음과 충성은 서로 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된 덕을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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