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이매임 데레사

성인 성녀 이매임 데레사 (李梅任 Teresa)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788-1839년
신분 부인 , 순교자
지역 한국(Korea)
같은 이름 이 데레사, 이 테레사, 이데레사, 이테레사, 테레사
첨부 자료 2253.jpg 2253.jpg (747.5 KB)
최종수정 나눔지기† 2025/10/05 (2,0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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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임 데레사

 
성녀 이매임 테레사(Teresia, 또는 데레사)는 어느 양반 집에서 태어났고, 순교자인 이영희 막달레나(Magdalena)와 이정희 바르바라(Barbara)의 고모이다. 외인 시절에 결혼한 이매임은 스무 살에 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왔을 때, 같은 동리의 한 여교우로부터 성교회를 알고 입교하였다. 이때부터 집안 식구들에게도 열심히 전교하였다. 그래서 이영희 막달레나의 어머니가 우선 입교하였고, 또한 어머니는 딸들을 입교시키게 되었다. 이매임은 판공성사 때가 되면 올케 허계임과 함께 상경하여 성사를 보곤 하였다.

기해년에 들어서면서 박해가 크게 일어났는데, 이 때 남명혁, 이광헌 등의 교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었다. 그러자 함께 모였던 김성임, 김 루치아(Lucia), 허 막달레나, 이 막달레나, 이 바르바라 등 6명은 천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하고 자수를 결정하였다. 그래서 4월 11일에 그들은 자수하였으나 포졸들은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포장은 기가 막혀서 이와 같이 물었다. “너희들은 천주교 도리가 옳은 것이라고 믿느냐?” “물론입니다. 만약 거기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의심을 가졌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 “배교하고 천주교 책을 바쳐라.” “차라리 죽을지언정 배교를 못하겠습니다.” 여기서 주리 트는 형벌을 4차례를 당하여도 굴복하지 않자 그들을 포청으로 보냈다.

5일 후 포장이 다시 불러내어 “너희들이 당한 형벌과 옥중의 무서움이 너희들의 혼미함을 깨우치지 못하였을까?” “저희들더러 배교하라고 권하시는 것은 시간을 허비하시는 것뿐입니다. 저희들이 자수를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함인데 그를 배반하라고 하신단 말씀입니까? 아니올시다. 참된 교우는 천주를 위하여 살고 천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나라법이 저희들을 사형에 처한다면 즐겨 죽겠습니다. 그러니 저희 교를 배반한다는 것은 절대로 안 될 말입니다.” 이리하여 그들은 형조로 이송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1839년 7월 20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받고 치명하였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52세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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