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김성임 마르타

성인 성녀 김성임 마르타 (金成任 Martha)
축일 9월 20일
활동년도 1787-1839년
신분 과부 , 순교자
지역 한국(Korea)
같은 이름 김 마르따, 김 마르타, 김 말따, 김마르따, 김마르타, 김말따, 마르따, 마르타, 말따
첨부 자료 127.jpg 127.jpg (37.3 KB)
최종수정 나눔지기† 2025/10/04 (90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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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임 마르타

 
성녀 김성임 마르타는 부평 땅의 어느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아직 외교인이었을 때, 그녀는 가정불화로 인하여 본남편과 헤어져 서울에서 숨어 살다가 점쟁이 장님에게 재가하였다. 그때에 그녀가 천주교를 알게 되어 그 계명을 지키며 살다가 남편이 죽은 뒤에는 살아나갈 방도가 막연하여 신자 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그녀는 신자들로부터 도움만 받지 않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신자들의 일을 거들어 주는 한편 수계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기해년에 들어와 박해가 심해지던 어느 날 함께 모여 살던 이 테레사(Teresia), 김 루치아(Lucia)와 함께 그녀는 교회의 박해, 순교자들의 용맹, 천국의 행복을 이야기하다가 거룩한 열정이 분발해 포청에 자수해서 신앙을 증거하자고 결정하였다. 이리하여 김 마르타 일행은 4월초에 포교들의 처소로 찾아가 “당신들은 천주교인을 찾지요? 우리를 결박해서 옥에 가두시오.” 하며 자수하자, 포장과 포졸들은 어이가 없어 그들의 말을 믿지 아니하므로 그들은 다시 “우리는 천주교인입니다.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묵주를 꺼내 보이자 포졸들은 결국 그녀들의 팔을 뒤로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다.

닷새 후 포장은 다시 그녀들을 불러내어 배교하라고 위협했지만, 김 마르타와 3명의 여인들은 “저희가 자수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함인데 주님을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참된 교우는 천주를 위하여 살고 천주를 위하여 죽는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나라 법이 저희들을 사형에 처한다면 즐겨 죽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리하여 김 마르타는 사형선고를 받고, 1839년 7월 20일 함께 생활하던 교우들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53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하였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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