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3 아들의 영은 우리가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흠숭하고, 사랑하고, 찬양하기 위해 하느님 면전에 놓여 있음을 깨닫게 해주신 뒤에, 우리 마음속에서 일곱 가지 청원과 일곱 가지 축복이 솟아나게 하신다. 첫 세 가지 청원은 주님을 향한 간구로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우리를 이끌어 준다. 마지막 네 가지 청원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로서 우리의 비참한 처지를 하느님의 은총에 내맡기도록 해준다. “심연이 심연을 부른다”(시편 41,8).
2804 첫 세 가지 청원들은 우리가 아버지를 향하도록, 아버지를 위하도록, 곧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을 추구하도록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그분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랑의 특성이다. 이 세 가지 청원 중 어느 것에서든 우리는 '우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랑하는 아들에게는 '고뇌'가 된 그 '열렬한 소망'이 우리를 사로잡는다.56) “(……) 거룩히 빛나시며, (……) 오시며, (……) 이루어지소서.”라는 이 세 가지 탄원은 이미 구세주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안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아직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지 않으셨으므로,57) 이 간청들은, 희망하는 중에, 이제 그 최후의 성취를 지향하고 있다.
2805 마지막 네 가지 청원들은 성찬례에서 성령의 강림을 간구하는 일부 기도들과 유사하게 펼쳐진다. 곧, 우리가 기대하는 바를 자비로우신 아버지께 말씀 드리며 그분의 눈길을 우리 쪽으로 끄는 것이다. 우리 안에서 우러나는 이 청원들은 바로 이 순간에 이 세상에 있는 우리들과 관계된다. “(……) 저희에게 주시고, (……)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저희를 구하소서.”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청원은 식량을 얻거나 죄를 치유받기 위한, 우리의 생명 자체와 관련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두 가지 청원은 삶의 승리를 위한 우리의 싸움, 바로 기도의 싸움과 관련된 것이다.
2806 처음 세 가지 청원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 안에서 굳건해지며, 바람으로 가득 차게 되고, 사랑으로 불타게 된다. 피조물이며 아직도 죄인인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청원을 드려야 한다. 이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보다도, 세상의 넓은 공간과 오랜 역사만큼 최대한으로 확대된 '우리', 곧 '만인'을 포함한 의미의 '우리'이며, 이러한 우리를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맡겨드리는 것이다. 실제로 당신 그리스도의 이름과 당신 성령의 다스림을 통해서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와 온 세상을 위한 구원 계획을 실현시키신다.
I.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2807 여기서 '거룩히'라는 말은 우선 원인을 나타내는 의미(하느님 홀로 거룩하게 하신다)가 아니라, 오히려 존중의 의미에서 거룩한 분으로서 거룩한 방식으로 대하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흠숭에서는 그 같은 간청이 이따금 일종의 찬미와 감사 드리는 행위로 이해된다.58) 그러나 예수께서는, 소원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곧 하느님과 인간이 관련된 청원과 열망과 기대감인 이 청원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 아버지께 첫 번째 청원을 드리는 순간부터 하느님 천주성의 신비로운 내면을 만나게 되고, 또한 우리 인류의 구원이라고 하는 극적인 사건과도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에페 1,4),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에페 1,9)에 우리를 포함시킨다.
2808 구원 경륜의 중요한 순간들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밝히시는데, 당신 사업을 수행하심으로써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신다.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날 때, 하느님의 사업도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2809 하느님의 거룩함은 그분의 영원한 신비의 이해할 수 없는 중심점이다. 자연 세계와 역사 안에서 이 신비 중에 드러난 것을 성서는 '영광', 엄위하신 하느님의 광채라고 하였다.59)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닮은 모습대로”(창세 1,26)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그에게 “영광의”60) 관을 씌워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빼앗겼다”61). 그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창조주의 모상을 따라”(골로 3,10) 새로워지도록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알려 주심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다.
2810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그 약속에 따른 맹세로써62)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지만, 당신의 이름을 알리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하시고,63)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사람들에게서 구해 내심으로써 온 백성에게 당신 이름을 드러내신다. 시나이 산의 계약 이후, 이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으며, 하느님의 이름이 그들 안에 머무르고 계시므로, 그들은 '거룩한 민족'이 되어야 했다.64)
2811 그런데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율법을 주시고, 거듭 주셨음에도,65) 또 주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고려하여” 인내를 보이심에도, 백성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뭇백성 가운데서 그분의 이름을 모독한다.66) 그 때문에 구약 시대의 의인들과,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가난한 이들 그리고 예언자들은 하느님 이름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 올랐던 것이다.
2812 드디어, 예수님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졌고, 사람이 되신 구세주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67) 곧, 예수님의 신원과 말씀과 희생 제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이름이 알려진 것이다.68) 이것이 예수께서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의 핵심이다. “거룩하신 아버지, (……)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9).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성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69) 우리에게 성부의 이름을 “알려주시는” 것이다.70)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예수께서 파스카를 끝마치셨을 때, “어느 이름보다도 뛰어난 이름을” 예수께 주셨다. 이 이름은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주님”71)이라는 이름이다.
2813 세례성사의 물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성령으로 깨끗이 씻겨지고 거룩하여졌으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1고린 6,11).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일생에 걸쳐 우리를 부르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덕택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1고린 1,30). 아버지의 이름을 우리가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나게 하는 것은 그분의 영광과 우리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여기에 우리의 첫 번째 청원의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거룩하신데, 누가 그분을 거룩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라는 말씀에 따라, 세례성사로써 거룩하게 된 우리는 우리가 꾸준히 거룩한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이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성화를 통해 우리의 죄를 정화해야 하므로, 우리는 이를 날마다 청합니다. (……) 그러므로 우리는 이 거룩함이 우리 안에 지속되기를 비는 것입니다.72)
2814 하느님의 이름이 뭇백성들 가운데서 거룩히 빛나시는 것은 우리의 분리될 수 없는 삶과 기도에 달려 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함으로 모든 피조물을 구원하시고 성화하시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하느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 (……) 이 타락한 세상에 구원을 가져다 주는 이름도 바로 이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우리 안에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 사실, 우리가 착하게 살면, 하느님의 이름이 찬미를 받으나, 우리가 악하게 살면, “당신들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로마 2,24)73) 라고 하신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하신 그만큼, 우리의 영혼도 거룩해지도록 기도합니다.74)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말할 때, 하느님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서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아직도 하느님의 은총을 기다리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하느님의 이름이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이니,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원수들을 위해서까지도 기도하라고 하신 계명을 우리가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안에서’ 거룩히 빛나소서.”라고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그 이름이 모든 사람들 안에서 빛나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75)
2815 모든 요청들을 포함하는 이 청원은, 뒤이어 오는 다른 여섯 청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기도를 통해서 받아들여진다.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를 예수님의 "이름으로"76) 바치면,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된다. 예수께서는 사제로서 바치신 기도에서 이렇게 청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나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람들을 지켜 주십시오”(요한 17,11).
II.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2816 신약성서에서 '나라'(????????)라는 말은 '왕권'(추상 명사), '왕국'(구상 명사), 또는 '통치'(동작 명사) 등,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보다 먼저 있다. 그 나라는 강생하신 '말씀'을 통해서 다가왔으며, 복음 전체를 통하여 선포되었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도래하였다. 하느님 나라는 최후 만찬 이래, 성찬례 안에서 우리 가운데 펼쳐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를 당신 아버지께 드릴 때, 하느님 나라는 영광 중에 도래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또한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날마다 기원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어서 빨리 우리에게 당신의 도래를 앞당겨 드러내 보이시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부활이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부활하기 때문이며, 그분은 또한 하느님의 나라이시기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77)
2817 이 청원은 '마라나 타'(Marana tha), 곧 '오소서, 주 예수님'이라고 하는 성령과 신부(新婦)의 외침이다.
비록 이 기도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가 오기를 기원할 의무를 지우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희망이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우리는 열렬하게 이 말을 외치게 될 것입니다. 제대 밑에서 순교자들의 영혼은 큰소리로 주님께 간청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더 오래 기다려야 땅 위에 사는 자들을 심판하시고 또 우리가 흘린 피의 원수를 갚아 주시겠습니까?”(묵시 6,10). 과연 그들은 세상 끝날에 정당한 갚음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 주님의 나라가 어서 오게 하소서!78)
2818 주님의 기도에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재림79)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궁극적 도래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희망은 이 세상에서의 교회 사명을 흩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명을 다하도록 자극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 강림 이후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성자의 구원 사업을 세상에서 이루시며,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하시는"80) 주님의 성령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이다.
2819 “하느님 나라는 (……)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로마 14,17).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마지막 때는 성령께서 내려오신 때이다. 성령 강림 이후로 '육'과 성령 사이의 결정적 싸움81)이 시작되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만이 “그 나라가 오소서.” 하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 바오로의 가르침에 따라서, 우리는 “죽어버릴 육체의 욕망에 굴복하지 않고 죄의 지배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로마 6,12). 생각과 말과 행위의 순수성을 간직한 사람은 하느님께 이렇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소서!”82)
2820 성령에 따른 분별력으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의 성장과, 자신들이 관계된 문화와 사회의 진보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구별은 분리가 아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인간의 소명은, 이 세상에서 정의와 평화에 투신하기 위해 창조주께 받은 힘과 수단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하는 의무를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83)
2821 이 청원은 성찬례에서 표명되고 유효하게 되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전달되고 받아들여진다.84) 이 청원은 행복 선언에 따르는 새 생활 안에서 열매를 맺는다.85)
III.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2822 우리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는”(1디모 2,3-4)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신다”(2베드 3,9).86) 다른 모든 계명들을 요약하고 또한 아버지의 뜻을 우리에게 온전히 밝혀 주는 아버지의 계명은,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87)
2823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하나가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에페 1,9-11). 우리는 이런 관대한 계획이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이 세상에서도 완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청하는 것이다.
2824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인간 의지를 통해서, 아버지의 뜻이 완전히 그리고 단 한번 결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면서 말씀하셨다. “하느님, (……)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히브 10,7).88) 예수님만이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요한 8,29)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고뇌에 찬 기도를 바치시던 중에도,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셨다.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루가 22,42).89) 그러기에 예수께서는 “하느님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당신 자신을 제물로 바치셨다”(갈라 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단 한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히브 10,10).
2825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음으로써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다”(히브 5,8).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하여 양자가 된, 피조물이며 죄인인 우리야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버지의 뜻과 그리고 세상에 생명을 가져다 주는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려고,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당신 아들의 의지와 결합시켜 주실 것을 우리 아버지께 청한다. 우리는 이 점에서 근본적으로 무능하다. 그러나 예수님과 결합되고 또한 당신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우리는 아버지께 우리의 의지를 맡겨 드리고, 당신 아들이 항상 선택하신 것을 우리도 선택하려고 결단할 수 있으니, 곧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90)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름으로써 그분과 한마음이 될 수 있으며, 이로써 그분의 뜻을 수행할 수 있고, 이렇게 하여 그분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91)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덕이 우리 노력에만 달려 있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달려 있음을 보여 주심으로써, 어떻게 겸손을 가르치시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여기에서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모든 신자들에게, 온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에게나 여러분 안에서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온 땅에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곧, 세상에서 오류가 추방되고, 진리가 넘치며, 악습이 퇴치되고, 덕이 다시 번성하며, 땅이 더 이상 하늘과 다르지 않게 되기를 바라신 것입니다.92)
2826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간할"93) 수 있으며,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인내를 얻을 수 있다.94) 예수께서는 말로써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마태 7,21)을 행함으로써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고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2827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의 청을 들어 주신다(요한 9,31).95) 교회가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 특별히 성찬례에서 드리는 기도의 힘도 그러하다. 교회의 기도는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와 일치하여 드리는 전구이며,96) 주님의 뜻이 아니면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 '마음에 든' 모든 성인들과 일치하여 드리는 전구이다.
우리는 진리를 그르치는 일 없이,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이 말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와 같이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아버지의 뜻을 이룬 신랑에서와 같이, 그 신랑에게 정혼한 신부에게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바꾸어 말할 수도 있습니다.97)
IV.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2828 “저희에게 주소서.” 이 말은 자기 아버지께 모든 것을 기대하는 자녀들의 아름다운 신뢰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며”(마태 5,45), 모든 생물에게 “제때에 먹이를”(시편 103,27) 주신다. 예수께서는 이 청원을 드리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다. 이 청원을 드리는 사람은, 아버지께서 모든 선을 초월하여 더없이 선한 분이심을 깨달은 사람이기에, 참으로 우리 아버지께 찬미를 드린다.
2829 “저희에게 주소서.”라는 청원은 또한 계약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버지의 것이고, 아버지는 우리를 위한,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그러나 이 '우리'(저희)라는 말은 또한 아버지를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결핍을 느끼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과 이루는 연대에서, 그들 모두를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 드리는 것이다.
2830 “저희의 양식.”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께서 삶에 필요한 양식과, 물질적이고 영적인 '합당한' 모든 재화를 주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우리 아버지의 섭리에 협력하는 이 자녀다운 신뢰를 강조하셨다.98) 예수께서는 우리를 소극적으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99) 오히려 온갖 불안감과 걱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자 하신다. 그리고 이것이 하느님의 자녀들이 자녀답게 의탁하는 일이다.
하느님의 나라와 정의를 찾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덤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과연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자신이 하느님과 관계를 끊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100)
2831 그러나 양식이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이 청원의 또 다른 깊은 의미를 일깨워 준다. 세상에 이 굶주림의 비극이 있다는 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개인적인 처신에서나 그들과의 연대에서나, 그들의 형제들에 대한 실질적 책임을 다하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이 청원은 거지 라자로101)의 비유, 최후의 심판102)의 비유와 뗄 수 없다.
2832 반죽 속의 누룩과 같이, 하늘 나라의 새로움은 그리스도의 성령으로써 이 세상을 '부풀어 오르게' 해야 한다.103) 하늘 나라의 새로움은 개인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국제적 관계 안에서 정의를 확립함으로써 드러나야 하며, 올바르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없이는 올바른 사회 구조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2833 '우리'의 빵이며, '하나'인 빵이 '여럿'을 위한 것이 되는 일이 중요하다. 행복 선언에 언급된 가난은 나눔의 덕이다. 이 자발적 가난은 강요가 아니라 사랑으로 물질적 정신적 재물을 공유하고 나누어 주어, 가진 사람들이 궁핍한 사람들을 도와 줄 것을 요구한다.104)
2834 “기도하고 일하여라.”105) “모든 것이 하느님께 달려 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모든 것이 그대들에게 달려 있는 것처럼 일하여라.”106) 우리가 일을 하였어도, 양식은 여전히 우리 아버지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아버지께 양식을 청하고 감사를 드리는 것은 옳은 일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드리는 식사 전 기도의 의미이다.
2835 이 청원과 이 청원이 부과하는 책임은 사람들이 겪는 또 다른 굶주림에도 해당된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리라”107). 곧,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숨결로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노력을 다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땅 위에는 “양식이 없어 배고픈 것이 아니요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 굶주린 것이다”(아모 8,11). 그렇기 때문에 이 네 번째 청원의 특별한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생명의 빵, 곧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하느님의 말씀과 성찬으로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의 몸과 관련된다.108)
2836 “오늘”이라는 말은 신뢰심을 표현한다. 교만한 우리는 이 말을 고안해 낼 수 없었기에 주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신다.109) 특히 이 말은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 아들의 몸에 관계된 것인 만큼, 이 '오늘'은 우리의 현세적 오늘뿐 아니라 하느님의 오늘인 것이다.
그대가 매일 빵을 받으면, 그대에게는 매일이 오늘입니다. 만일 그대가 오늘 그리스도를 모신다면, 그분은 날마다 당신을 위해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너는 내 아들, 오늘 너를 낳았노라”(시편 2,7). 오늘은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는 때입니다.110)
2837 “일용할”(?????????)이라는 낱말은 신약성서에서 여기서만 쓰인다. 세속적인 의미에 따르면 이 말은 우리의 '완전한' 신뢰를 굳게 하기 위해 '오늘'이라는 낱말을 교육적으로 반복한 것이다.111) 특성적인 의미를 따르면, 생명에 필요한 것을, 더 넓은 의미로는 먹고 입는 데 충분한 모든 재물을 가리킨다.112)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이 낱말은(?????????; “반드시 필요한”), 그것 없이는 우리 안에서 생명이 유지될 수 없는, “불사불멸의 약”113)인 생명의 빵, 그리스도의 몸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114) 끝으로, 이러한 의미들과 관련된 이 말의 천상적 의미는 명백하다. 곧, '이날'은 주님의 날, 성찬으로써 미리 참여하는 하늘 나라의 잔칫날이다. 성찬은 다가오는 하늘 나라를 앞당겨 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찬의 전례는 '날마다' 거행되어야 한다.
성체는 우리의 일상 양식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이 양식의 고유한 효험은 일치를 이루게 하는 힘입니다. 성체는 우리를 구세주의 몸에 결합시켜서, 우리를 우리가 받아 모시는 당신 몸, 그 몸의 지체가 되게 합니다. (……) 그런데 여러분이 날마다 교회에서 듣는 독서도 일상의 양식이며, 여러분이 듣고 노래하는 찬미가도 일상의 양식입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지상 나그네길에 필요한 것들입니다.115)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의 자녀로서 하늘의 빵을 청하도록 촉구하신다.116)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동정녀 안에 뿌려져, 육체 안에서 부풀어 오르고, 수난으로 반죽이 되고, 무덤의 화로에서 구워져, 교회 안에 저장되고 제단으로 옮겨져서, 날마다 신자들에게 제공되는 천상 양식인, 빵이십니다.”117)
V.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2838 이 청원은 놀라운 것이다. 만일 이 청원을 말하는 문장의 둘째 부분이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라는 문구로만 되어있다면, 그리스도의 희생이 '죄의 용서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의 기도의 처음 세 가지 청원 속에 묵시적으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라는 이 문장의 첫째 부분에 따라, 먼저 우리가 이 강한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않는 한 우리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청원은 미래를 향하나, 우리의 응답이 그 청원에 앞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부분은 “하오니”라는 한마디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2839 우리는 대담한 신뢰심으로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아버지께 간청하면서, 우리를 항상 더 성화시켜 주시기를 청하였다. 세례의 옷을 입었지만, 우리는 죄를 짓고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새로운 청원으로써, 탕자가 그러했던 것처럼118) 아버지께 돌아서고, 세리가 그러했던 것처럼119)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한다. 우리의 비참함과 하느님의 자비심을 동시에 고백하면서 우리는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기”(골로 1,14)120) 때문에, 우리의 희망은 굳건하다. 우리는 아버지께서 주시는 용서에 대한 유효하고 의심할 수 없는 표징을 그분의 교회가 집전하는 성사들 안에서 볼 수 있다.121)
2840 그런데,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우리가 용서하지 않는 한 하느님의 넘치는 자비가 우리 마음속으로 스며들 수 없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몸이 분열되지 않듯이, 사랑도 분열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눈에 보이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다.122) 우리의 형제 자매를 용서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 마음은 다시 닫히고 굳어져서, 아버지의 자비로운 사랑이 스며들 수 없게 된다.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은 아버지의 은총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리게 된다.
2841 이 청원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어서 주께서는 예외적으로 이 청에 대해서 거듭 말씀하시고, 산상 설교에서는 더 자세히 설명하신다.123) 계약의 신비에 내포된 극히 중요한 이 요구를 충족시키기란 인간에게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다”(마태 19,26).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2842 여기에 나타나는 “하오니(것처럼)”124)라는 말이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단 한번 나오는 것은 아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마태 5, 48).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가 6,36).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만일 하느님을 외적으로 모방하는 것이라면, 주님의 계명은 지키기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참여, 우리 하느님의 거룩함과 자비와 사랑이 담긴 적극적인 참여를 의미한다. “우리의 생명”(갈라 5,25)이신 성령만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똑같은 마음을 갖게 해주실 수 있다.125)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32). 그리하여 용서의 일치는 가능하게 된다.
2843 이리하여 극치에 도달하는 사랑, 곧 용서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구체화된다.126) 교회 공동체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완성하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는127) 이 말씀으로 끝맺는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 사실 모든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맺어지고 끊어지는 것이다. 당한 모욕을 더 이상 느끼지 않고 잊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러나 성령께 자기 마음을 바치는 사람은 모욕을 동정으로 바꾸며, 상심한 자신을 전구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기억을 정화한다.
2844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원수를 용서하기에 이른다.128) 기도하는 제자는 변화되어 스승의 모습을 닮게 된다. 용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이다. 하느님과 같은 마음을 지녀야만 기도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용서는 우리의 세상에서, 사랑이 죄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어제와 오늘의 순교자들은 예수님의 이러한 증언을 재현하고 있다. 용서는 하느님의 자녀들과 그들의 아버지 사이의 화해129)를 그리고 인간들 상호간의 화해130)를 위한 기본 조건이다.
2845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이 용서에는 한계도 없고 범위도 없다.131) 모욕(루가 11,4에 따르면 ‘죄’, 또는 마태 6,12에 따르면 ‘빚’)에 관해서라면 , 사실 우리는 항상 빚진 자들이다.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로마 13,8). 거룩하신 삼위의 일치는 모든 관계의 진실성의 근원이며 기준이다.132) 이 일치는 기도를 통해서, 특히 성찬례 안에서 실현된다.133)
하느님께서는 분열을 일삼는 사람들의 제물을 받아들이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제단에서 돌려보내시면서, 먼저 형제들과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평화를 위한 기도로써 화평해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 바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제물은 우리들 사이의 평화와 화합이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믿는 백성의 일치입니다.134)
VI.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2846 우리의 죄는 유혹에 동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이 청원은 앞서 말한 청원들의 근원에 적중한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께 우리가 유혹에 '굴복하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는 것이다. 그리스 용어를 한마디로 번역하기란 쉽지 않다. 이 말은 “유혹에 빠지게 허락하지 마십시오”,135) “유혹에 쓰러지게 우리를 내버려두지 마십시오.”라는 뜻이다. “하느님은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십니다”(야고 1,13). 오히려 그분은 우리를 악에서 구해 내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죄로 이끄는 길을 택하도록 우리를 버려두지 마시기를 하느님께 청원하는 것이다. 우리는 '육과 성령 사이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청원은 분별력과 힘을 주시기를 성령께 간청하는 것이다.
2847 성령께서는 우리가 "시련을 이겨내는 힘"136)을 다지기 위하여 인간의 내적 성장에 필요한 시련137)과, 죄와 죽음으로 이끌어 가는 유혹138)을 분간하도록 하신다. 또한 우리는 '유혹을 당한다'는 것과 유혹에 '동의한다'는 것도 분별해야 한다. 끝으로, 분별력을 이용하면, 우리는 유혹의 거짓된 가면을 벗길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 유혹의 대상은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럽지만"(창세 3,6), 실제로 그 열매는 죽음이다.
하느님께서는 선을 행하도록 강요하지 않으시며, 자유로운 인간을 원하십니다. (……) 유혹이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우리 자신까지도 우리 영혼이 하느님에게서 무엇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유혹은 우리 자신을 알도록 가르치려고 그것을 나타내 보여 주며,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비참함을 발견하게 하고, 유혹이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준 좋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게 합니다.139)
2848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는 마음의 결단도 포함한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마태 6,21-24).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갈라 5,25). 우리가 성령께 이렇게 동의할 때,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신의가 있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힘에 겨운 시련을 겪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시련을 주시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1고린 10,13).
2849 이러한 싸움과 승리는 기도로만 가능하다. 처음부터,140) 그리고 고뇌에 찬 마지막 싸움에 이르기까지,141) 예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유혹자에 대항하여 승리를 거두신다.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이 청원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싸움과 고뇌에 결합시키신다. 당신과 일치하여, 마음이 깨어 있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일깨우신다.142) 깨어 있음은 '마음을 지키는 것'인데,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 안에 우리를 지켜주시기”143)를 아버지께 청하신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이처럼 깨어 있도록, 끊임없이 우리를 일깨우고자 노력하신다.144) 이 청원은 지상에서 우리 싸움의 마지막 유혹과 관련되어 그 극적인 의미를 총괄한다. 이 청원은 마지막까지 신앙을 성실히 지키게 하는 은총을 청하는 것이다. “내가 도둑같이 오겠다. 정신을 차리고 (……)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묵시 16,15).
VII. “악에서 구하소서”
2850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이 마지막 청원 역시 예수께서 이미 하신 기도에 포함되어 있다. “내가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그들을 이 세상에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지켜 주시는 일입니다”(요한 17,15). 이 간청은 우리 각자에게 개인적으로 관계되는 것이나, '우리'가 온 교회와 일치하여 항상 모든 인류 가족의 해방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의 기도는 끊임없이 우리를 구원 경륜의 차원에 눈뜨게 한다. 죄와 죽음의 비극에 모두가 관련되어 있는 우리의 상호 관계가 뒤집혀져,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의 연대성과 '성도들의 친교'로 전환된다.145)
2851 이 청원에서, 악은 추상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한 인격, 사탄, 악령, 하느님께 대항하는 천사를 가리킨다. '마귀'는 하느님의 계획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룩된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가로막는' 자이다.
2852 “처음부터 살인자였으며 (……)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요한 8,44)인 그는 “사탄이라고도 불리며 온 세상을 유혹하는 자”(묵시 12,9)인데, 그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의 결정적인 패배로 온 인류가 “죄와 죽음의 구렁에서 건져질”146) 것이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그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악마가 그를 다치게 하지 못합니다”(1요한 5,18-19).
여러분의 죄를 없애 주시고 잘못을 용서해 주신 주님은 여러분과 싸우는 마귀의 계교에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지켜 주시어, 악을 발생시키는 악습을 가진 원수가 여러분을 불시에 공격하지 못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악마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 되셨으니 누가 감히 우리와 맞서겠습니까?”(로마 8,31).147)
2853 예수께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자유로이 당신 몸을 죽음에 내맡기시던 그 '시간'에, “이 세상의 권력자”(요한 14,30)에 대한 승리가 단 한번 결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이것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는 것이며,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는”148) 것이다. 그는 “여자를 쫓아가지만”(묵시 12,13),149) 그 여자를 움켜잡지 못한다. 곧, 성령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새 하와는 죄와 죽음의 부패에서 보호받는다(평생 동정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와 승천). 그러자 “용은 그 여자에 대하여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남은 자손들과 싸우려고 떠나갔습니다”(묵시 12,17). 그렇기 때문에 성령과 교회는 “오소서, 주 예수님!”(묵시 22,17.20) 하고 기도한다. 예수님의 내림은 우리를 악에서 구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2854 우리는 악에서 구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또한 악의 세력이 주도하거나 선동하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악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기도한다. 이 마지막 청원에서 교회는 세상의 모든 괴로움에 대하여 아버지께 호소한다. 인류를 짓누르는 악에서 구원해 주시기를 비는 교회는 평화의 귀중한 선물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꿋꿋한 인내의 은총을 간청한다. 이렇게 기도함으로써, 교회는 신앙의 겸손 안에서 “죽음과 저승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묵시 1,18),150)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묵시 1,8)이신 그분 안에 그분을 머리로 하여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하나 됨을 앞당겨 이루는 것이다.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151)
마침 영광송
2855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 하는 마침 영광송은 주님의 기도에서 드리는 첫 세 가지 청원을 포괄적으로 다시 되풀이한다. 곧,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구원 의지가 힘차게 드러나기를 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재청원은 하늘 나라의 전례처럼,152) 흠숭과 감사 기도의 형태를 취한다. 이 세상의 권력자가 나라와 권능과 영광, 이 세 가지를 가졌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주장했었는데,153) 주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이시며 우리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이 세 가지를 돌려드리신다. 구원의 신비가 결정적으로 완성되고 하느님께서 만물을 완전히 지배하시게 될 때, 아버지께 그 나라를 넘겨 드리실 것이다.154)
28561 “그 다음 기도가 끝나면, 그대는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안에 포함된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155)라는 의미인 '아멘'이라고 말함으로써 동의를 표합니다.”156)
요 약
2857 '주님의 기도'의 첫 세 가지 청원은 아버지의 영광이 그 목적이다. 곧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고 하느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어지는 네 가지 다른 청원들은 우리의 소망을 아버지께 말씀 드리는 것이다. 이 청원들은 우리의 생명 유지를 위한 양식을 얻고 죄를 치유받기 위한 것이며, 악에 대한 선의 승리를 위한 우리의 싸움과 관계되는 것이다.
2858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기를” 청함으로써, 하느님께서 먼저 모세에게, 다음에는 예수님을 통해서 알려 주신 당신 이름의 거룩함이 우리를 통하여 우리 안에서, 모든 나라와 각 사람에게서 나타나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에 협력하게 된다.
2859 두 번째 청원을 통해서 교회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느님 나라의 마지막 도래를 생각하고 있다. 교회는 또한 하느님 나라가 우리 삶의 '오늘'에서도 성장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2860 세 번째 청원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구원 계획이 이 현세에서 완성될 수 있도록 우리의 의지를 당신 아들의 의지에 결합시켜 주시기를 아버지께 청한다.
2861 네 번째 청원에서 “저희에게 주소서.”라고 말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형제들과 일치하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대한 우리의 자녀다운 신뢰를 표명한다. “우리의 양식”은 모든 사람의 생존에 필요한 이 세상의 양식을 가리키며, 또한 생명의 빵인 하느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킨다. 하느님의 ‘오늘' 우리는 성찬례가 미리 맛보게 해주는 하늘 나라 잔치에 반드시 필요한 생명의 빵을 받아 모신다.
2862 다섯 번째 청원은 우리가 끼쳐 드린 모독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는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우리 원수들을 용서해야만 하느님의 자비는 비로소 우리 마음속에 스며들 수 있는 것이다.
286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하는 것은, 죄로 이끄는 길로 우리가 들어서는 것을 허락하지 마시도록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다. 이 청원은 분별력과 용기를 주시는 성령을 간청하며, 깨어 있을 수 있는 은총과 끝까지 견지하게 하는 은총을 청하는 것이다.
2864 “악에서 구하소서.”라는 마지막 청원에서, 그리스도인은 교회와 더불어, 하느님과 그분의 구원 계획에 직접 반대한 천사, 사탄, “이 세상의 권력자”를 쳐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드러내 주시도록 하느님께 청한다.
2865 마침의 “아멘”으로, 우리는 일곱 가지 청원이 이루어지기를 빈다.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56) 루가 22,15; 12,50 참조.
57) 1고린 15,28 참조.
58) 시편 110,9; 루가 1,49 참조.
59) 시편 8; 이사 6,3 참조.
60) 시편 8,6 참조.
61) 로마 3,23 참조.
62) 히브 6,13 참조.
63) 출애 3,14 참조.
64) 출애 19,5-6 참조.
65) 레위 19,2: “너희 주 하느님인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참조.
66) 에제 20; 36 참조.
67) 마태 1,21; 루가 1,31 참조.
68) 요한 8,28; 17,8; 17,17-19 참조.
69) 에제 20,39; 36,20-21 참조.
70) 요한 17,6 참조.
71) 필립 2,9-11 참조.
72)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12: CCL 3A, 96-97(PL 4,544).
73) 에제 36,20-22 참조.
74)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설교집」, 71,4: CCL 24A, 425(PL 52,402).
75) 테르툴리아누스, 「기도론」, 3,4: CCL 1,259(PL 1,1259).
76) 요한 14,13; 15,16; 16,24.26 참조.
77) 성 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13: CCL 3A, 97(PL 4,545).
78) 테르툴리아누스, 「기도론」, 5,2-4: CCL 1,260(PL 1,1261-1262).
79) 디도 2,13 참조.
80) 로마 미사 전례서, 감사기도 제4양식, 118, 표준판(바티칸 1970) 468면 참조.
81) 갈라 5,16-25 참조.
82)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신비 교리교육」, 5,13: SC 126,162(PG 33,1120).
83) 사목헌장, 22항; 32항; 39항; 45항; 바오로 6세, 교황권고 「현대의 복음선교」, 31항: AAS 68(1976) 26-27 참조.
84) 요한 17,17-20 참조.
85) 마태 5,13-16; 16,24; 7,12-13 참조.
86) 마태 18,14 참조.
87) 요한 13,34; 1요한 3; 4; 루가 10,25-37 참조.
88) 시편 39,8-9 참조.
89) 요한 4,34; 5,30; 6,38 참조.
90) 요한 8,29 참조.
91) 오리게네스, 「기도론」, 26,3: GCS 3,361(PG 11,501).
92)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복음 강론」, 19,5: PG 57,280.
93) 로마 12,2; 에페 5,17 참조.
94) 히브 10,36 참조.
95) 1요한 5,14 참조.
96) 루가 1,38.49 참조.
97) 성 아우구스티노, 「산상 설교」, 2,6,24: CCL 35,113(PL 34,1279).
98) 마태 6,25-34 참조.
99) 2데살 3,6-13 참조.
100)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21: CCL 3A, 103(PL 4,551).
101) 루가 16,19-31 참조.
102) 마태 25,31-46 참조.
103) 평신도교령, 5항 참조.
104) 2고린 8,1-15 참조.
105) 성 베네딕토, 「규칙서」, 20: CSEL 75,75-76(PL 66,479-480); 같은 책, 48: CSEL 75,114-119(PL 66,703-704) 참조.
106)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말씀; Petrus de Ribadenyra, Tractatus de modo gubernandi sancti Ignatii, c.6, 14: MHSI 85,631 참조.
107) 신명 8,3 참조.
108) 요한 6,26-58 참조.
109) 마태 6,34; 출애 16,19 참조.
110) 성 암브로시오, 「성사론」, 5,26: CSEL 73,70(PL 16,453).
111) 출애 16,19-21 참조.
112) 1디모 6,8 참조.
113)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에페소인들에게 보낸 서간」, 20,2: SC 10bis, 76(Funk 1,230).
114) 요한 6,53-56 참조.
115) 성 아우구스티노, 「설교집」, 57,7,7: PL 38,389-390.
116) 요한 6,51 참조.
117) 성 베드로 크리솔로고, 「설교집」, 67,7: CCL 24A, 404-405(PL 52,402).
118) 루가 15,11-32 참조.
119) 루가 18,13 참조.
120) 에페 1,7 참조.
121) 마태 26,28; 요한 20,23 참조.
122) 1요한 4,20 참조.
123) 마태 5,23-24; 6,14-15; 마르 11,25 참조.
124) 편집자 주.(하오니-하듯이)
125) 필립 2,1.5 참조.
126) 요한 13,1 참조.
127) 마태 18,23-35 참조.
128) 마태 5,43-44 참조.
129)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 14항: AAS 72(1980) 1221-1228 참조.
130) 2고린 5,18-21 참조.
131) 마태 18,21-22; 루가 17,3-4 참조.
132) 1요한 3,19-24 참조.
133) 마태 5,23-24 참조.
134)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주님의 기도 해설」, 23: CCL 3A, 105(PL 4,535-536).
135) 마태 26,41 참조.
136) 로마 5,3-5 참조.
137) 루가 8,13-15; 사도 14,22; 2디모 3,12 참조.
138) 야고 1,14-15 참조.
139) 오리게네스, 「기도론」, 29,15.17: GCS 3,390-391(PG 11,541-544).
140) 마태 4,1-11 참조.
141) 마태 26,36-44 참조.
142) 마르 13,9.23.33-37; 14,38; 루가 12,35-40 참조.
143) 요한 17,11 참조.
144) 1고린 16,13; 골로 4,2; 1데살 5,6; 1베드 5,8 참조.
145)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권고 「화해와 참회」, 16항: AAS 77(1985) 214-215 참조.
146) 로마 미사 전례서, 감사기도 제4양식, 123, 표준판(바티칸 1970) 471면.
147) 성 암브로시오, 「성사론」, 5,30: CSEL 73,71-72(PL 16,454).
148) 요한 12,31; 묵시 12,10 참조.
149) 묵시 12,13-16 참조.
150) 묵시 1,4 참조.
151) 로마 미사 전례서, 삽입 기도(“주님의 기도” 후에 바치는 기도), 표준판(바티칸 1970) 472면.
152) 묵시 1,6; 4,11; 5,13 참조.
153) 루가 4,5-6 참조.
154) 1고린 15,24-28 참조.
155) 루가 1,38 참조.
156)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신비 교리교육」, 5,18: SC 126,168(PG 33,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