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말씀의 초대

글쓴이 :  저녁노을님이 2019-01-11 17:18:09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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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후 토요일(1/12)





    말씀의 초대
    요한 사도는,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14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15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16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17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18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20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21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그때에 2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23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24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26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27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29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30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나는 영혼일까요, 육체일까요? 물론 나는 영혼과 육체가 결합된 총체입니다. 그런데 영혼은 하늘에서 왔고 하늘에서 오는 기쁨으로 양식을 삼습니다. 육체는 땅에서 왔고 땅의 것을 먹으며 땅으로 돌아갑니다. 서로 추구하는 기쁨이 상반되기에, 내가 영혼과 육체 사이에서 어느 것에 나 자신의 정체성을 두느냐에 따라 육체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고 영적인 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육체적인 인간은 남겨지고 영적인 인간만 구원받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매우 기뻐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기쁠 상황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던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께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기뻐합니다. 그리고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고 말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육체적인 기쁨이 아니라 영적인 기쁨을 좇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고 말하며, 육체적인 기쁨을 줄여야 영적인 기쁨이 커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영적인 인간이 되려면, 오늘 독서 말씀대로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온 세상이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것처럼 육체도 자아의 헛된 욕망 아래 놓여 있습니다. 영은 생명을 주지만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요한 6,63 참조). 육체적인 기쁨을 버리고 영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이만이 하늘 나라에 합당한 사람입니다.(전삼용 요셉 신부)
-출처 매일 미사-


김은영(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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