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교우님. 안녕하세요.
먼저, 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혼자만의 고백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마음을 이해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용서와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믿으실 수 있습니다.
저는 교우님께서 신앙생활을 열성적으로 했지만, 남는 것도 없고, 남들과 뒤쳐지는 것 같고, 소외감을 얻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저는 마태오 복음서에 있는 20장 1-16절에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를 한 번 읽어보시고 말씀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생각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또 다른 비유로 루카복음서 15장 11-32절에 '되찾은 아들의 비유' 또한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시고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 논리에 매우 익숙한 우리에게 ‘정당한 노동에 대한 대가’는 경제 정의의 기초이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나중에 와서 적게 일한 일꾼과 먼저 와서 종일 일한 일꾼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쥐어주는데, 이것은 우리 자본주의 사회에서 바라보았을 때 형평성에 매우 맞지 않은 것처럼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하늘나라는 무조건적으로 평등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공로와 신앙심에 비례해서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으십니다.
만약 우리가 하느님께 봉사하는 시간이나 양을 기준으로 은총을 받거나 구원이 주어진다면, 우리가 받을 상은 각자에 따라 크게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은총은 양으로 잴 수 있거나 차별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비하신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은총을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무상으로 베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중요한 포인트는 교우님께서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남들 못지않게 성실하게 했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살아있다면, 선한 사람이던 악한 사람이던 하느님의 사랑은 무한하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많은 교우분께선 성당에서 교우간의 공동체 중요성을 강조하시는데요.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으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당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양식을 얻고 한 주간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지..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함이 우선시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오 복음서 16, 23)
성당 사람들과 사이가 나빠졌다고 해서 성당에 다니는 것과 하느님의 은총마저 포기한다는 것.. 이것은 너무나도 안타까우면서도 인간적인 해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 또한 직장인이기에.. 교우님께 내세울 정도로 평일 미사에 나가거나 그러진 못합니다만, 주일 미사만큼은 항상 참석하려고 노력합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참석을 못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고해성사를 통해 회계를 하구요.
그리고 성당에 가면 복음서로부터 말씀의 지혜를 얻고, 이로 인해 한 주간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양식을 얻어간다는 생각으로 성당에 다닙니다.
성당에 자주 보이는 사람들과는.. 그냥 눈도장 찍는 정도로만 관계를 가집니다.
위에 잠깐 언급했던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더 사랑한 것은 성실하게 일한 맏형보다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아들이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들을 잘 털어내시고 신앙생활 잘 이어 나가셔서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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