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경(?)관련 문의

글쓴이 :  Taurinus36모바일에서 올림님이 2019-06-08 09:54:2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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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반갑습니다.

저가 개인이 운영하는 성경공부밴드에 가입하여 매일 한귀절씩 문자를 받는데 아래와 같은 내용이 왔습니다. 이상해서 문의 드립니다.
답변 부탁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멘
****************************
1.
그러면 왜 예배 참석, 헌금, 봉사, 선교 등의 선한 행위를 합니까?

그런 선한 행위는 저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공의로운 하느님께서는 구원 받은 이후에 행한 우리의 선한 행위에 대해 보상해 주십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16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2.
자신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주일 성수, 십일조와 헌금, 새벽기도, 금요 철야, 교회 봉사, 선한 행위 등 그 어떤 것도 우리의 구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원히 이루신 그 일 하나로 족합니다.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9 인간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기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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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선물모바일에서 올림 (2019/06/08 10: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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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그저께 분당성바오로 성당 피정에서 강론하신 마진우 신부님 말씀에 그 답이 어느정도 나와있는듯 합니다.
율법의 틀에 갖힌 신앙의 오류같은..
참고 하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ANQtzOl2DOs

그에 대한 또다른 말씀.

https://youtu.be/ZGX79eKB4Rc

(아..폰으로 작성을 해서 링크가 않걸리네요..ㅜㅜ
주소 복사하셔서 주소창에 넣으세요.
차후에 pc에서 링크로 수정하겠습니다)
  
잃어버린양 (2019/06/08 1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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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이야기이지만 개신교적인 해석으로 오해될 여지가 상당히 많네요.

제가 이야기 하는 개신교는 루터로부터 종교개혁을 시작할 당시의 개신교의 이야기를 이야기합니다.

지금 수없이 나눠진 종파가 그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비슷할 겁니다.

 

기본적으로 개신교와 가톨릭의 구원론에 대한 견해는 동등하게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을 은총으로 섭리하신다는 의견은 같습니다.

구원에 대해 온전히 하느님께서 다 섭리하시는 것은 같은 의견입니다.

 

그러나 차이점은 인간의 응답입니다.

개신교는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졌기에 인간은 하느님을 믿는 것 외에 할 것이 없다이며

반면 가톨릭은 인간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응답을 해야한다는 입장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포함해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실 때 그 창조 목적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하느님께 회개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복음을 믿으며 하느님께 열린 마음으로 살며

아버지와의 관계를 기반으로 아버지의 뜻을 살피며 그 뜻을 통해 살아가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우리 삶에서 섭리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주어진 창조목적을 하느님을 따라 살아가며 완성시켜 가는 삶을 살아

하느님의 창조 협력자로서의 창조 목적을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가톨릭 입장입니다.

 

 

1번의 경우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맞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반박이 있습니다.

 

"그런 선한 행위는 저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제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39항 찬양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을 기리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서 행하시는 일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기에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시기에 찬양함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구원을 명확하게 바라보아야합니다. 죄 중에서 구원된 것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관계를 통해 하느님과 인격적 친교를 이루며 하느님을 바라보아야할 것이지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구원을 유지하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행하신 구원 때문에 찬양하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하신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올라온 게으른 양 묵상글을 인용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바라볼 때, 또 많은 선조들이 하느님을 바라볼 때

그분의 업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업적을 통해서 그 업적이 나오도록 하는 그 본성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자르야의 기도에서 나오는“주님의 모든 업적들아 주님을 찬미하라”라는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업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하느님 그 자체를 바라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하느님은 그분의 업적으로 발견하게 되지만

결국에는 그분의 업적을 찬미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 그 자체를 찬미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하느님”의 모상들을 바라보아야합니다.

 

2번과 더불어 이야기하면 자신의 행위로 구원된다는 논리는 펠라지우스 이단입니다.

모든 선행행위가 구원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선행행위는 구원 이후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구원되어 그분과 인격적 친교를 이루는 그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선행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결과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시고 이웃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을 통해서 살아가면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펠라지우스 이단에 속아 우리가 사랑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만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은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통해 온 삶을 살아가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통해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1번에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선행을 하는 것은 교의에 맞지 않는 내용이고

2번에 왜 선행이 구원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지 구원과 선행의 관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이야기에서는 단순히 "선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할 필요가 없다" 라는

논리로 왜곡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k.Gaveriel (2019/06/08 23: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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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가톨릭교회법상으로 가톨릭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정상적인 개신교의 성경공부라하더라도 참여하시면 안 됩니다.

빨리 빠져나오셔서 가톨릭에서 하는 성경프로그램에 참여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배대호 미카엘 (2019/06/09 2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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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신교의 페해가 무엇인지 압니까? 지루하기 짝이 없는 설교를 예배 시간 내내 한다는것입니다.예수님께서 세운 거룩한 보편교회에 주어진 칠성사 중에 갖고 있는것은 세례 성사와 말씀의 전례밖에 없다는것! 고백성사 없지 견진 성사 없지 성체성사 없지 병자 성사도 없지 한시간 설교로 예배 시간을 도배한다는것입니다.목사들의 설교를 듣고 즉 천당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정말 궁금합니다.설교로 유명하다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지금 이 시점에서 들어본다면 별 내용의 뼈대도 없는것이라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을 겁니다.옥한음 목사같은 분은 인성이 휼륭합니다.젊은 사람의 감수성을 이해할줄도 압니다.배타적인것이 별로 없습니다.설교도 정말 잘 하십니다.그런데 그런분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설교로 시작해서 설교로 끝나는 한시간 예배 시간이 정말 아깝지 않겠습니까.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도 모자라는 판에! 순명으로 시작해서 순명으로 끝나도 부족한 판에!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예배 시간을 통해 얻는것이 무엇인지 솔찍히 찝찝합니다.말은 마귀나 하라고 내어주십시요.마귀도 말로는 누구에게 꿀리는것이 없는 말의 달인이니까요.거짓말이라는 흠이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성덕으로 시작해서 성덕으로 끝나도 모자라는것이 아닙니까? 예를 들어 비오 신부님의 마사시간에는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합니다.거기에 거룩함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겠습니까.그 중에는 대죄인들도 무수하게 섞여 있었을겁니다.다 회심의 은총을 입지 않았습니까.양복만 잘 차려입고 구두만 비까번쩍하게 닦아 신으면 하느님의 대리인 노릇 하는것입닌까? 지옥에 가려면 혼자나 가지! 비오 신부님의 미사에 참석해서 지옥에 갔다는 사람이 있다고 나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습니다.미사가 거룩했고 그걸 집전하는 신부님도 거룩했으니까요.미사의 시작이 거룩에서 거룩으로 끝나는것처럼(내 바램이기는 하지만) 예배시간이 그렇다고 한다면 정말 많은 영혼을 구제하게 될지 모릅니다.지금처럼 설교로 시작해서 설교로 끝나는 내실없는 예배라면 가망이 없을 겁니다.말씀 하나 하나를 두고 한시간 풀타임으로 늘려 귀에 듣기 좋은 말로 부풀려 뭐 하겠다는것인지! 우리에게 부족한것은 성덕과 사랑 아닙니까.한시간 풀타임으로 늘려 듣기 좋은 말로 들어주는 설교는 집어치우라고 해도 모자라는것이 아닙니까.
  
Veda (2019/06/10 09: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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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위에 잃어버린 양께서 설명을 잘 해주셨는데... 일단은 그 성경공부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을 뿐더러

오히려 님에게 오류를 범하는 폐를 끼칠뿐입니다.

성경공부는 성당에서도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개신교는 이미 개인 해석에 따라 300종파가 넘게 갈려져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갈라지고 있습니다.

올바르지 못한 성경해석은 왜곡을 낳고 사이비 종교를 양산합니다.

제발 벗어나시고 성당에서 하는 단체에서 공부하십시오.

성당에서는 절대 개인별 해석을 금지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수 많은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그 틀을 마련한 가운데 오류를 최소화해서 해석합니다.

거기에 따라야만 잘못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즉 성경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올바른 해석이 되어야만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걸어주지 말라고 하셨듯이

성경은 소중하게 다루어져야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주어져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폄하하고 있지만 성경은 불변이고 진리 그 자체입니다.

세상이 종말을 고해도 성경은 그대로 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경을 별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자기식대로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 주셨지만 그에 대한 우리의 응답- 선행, 사랑,믿음,경외등-

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다는 것은 생각으로만이 아니고 행동이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 너희는 나를 따라야 한다. 내 행동을 배워라, 실천해라 그러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다"

개신교에서 믿는다고 하면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합니까?

교회를 다닌다고 그것이 증표입니까?

아닙니다. 성당에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예배에 아무리 열심히 참석해도 실천이 없는 믿음은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때에 비로서 예수님이 희생하여 얻어진 구원을

얻게됩니다.

잘못된 선택이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입니다. 영원한 지옥은 상상만해도 두렵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머리에서 마음까지 내려가는데 70년이 걸렸다구요. 이것이 손끝으로

내려가는데 또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손끝으로 "라는 의미는 행동을 말합니다. 생전에 실천하지 못했음을 고백하시면서 후회스러움을

부끄러워 했습니다.

빈민촌에서 하룻밤을 함께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러가지 핑계를 대면서 말입니다.

그것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게서는 그런 행동을 요구하시고 그런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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