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여름신앙학교를 강원도 바닷가로 갔습니다.
아이들만큼이나 저도 무척 설레였습니다.
교사들과 함께 며칠동안을 밤 낮으로 준비하면서 시원한 여름바다를 상상했지요. 시골이라 인심들이 좋아서 2박3일동안 먹거리들을 어른들이 풍성히 준비해주셔서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 본당신부님의 엄격한 점호아래 70여명이 버스 두대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아이들은 시작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노래방 기계를 들어서 신나게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숙소와 바다는 조금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군대식 프로그램에 몸을 맡기면서도 재미있어했지요. 고등학생부터 유치부까지 한팀을 엮어주니, 참 보기도 좋았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큰아이들이 작은아이들을 잘 돌보더군요. 힘든 산행코스도 업고 다니면서 자기팀을 잘 돌보는 모습이 기특해보였습니다. 둘쨋날은 새벽 6시에 바닷가에서 미사를 드리기로 되어있었습니다. 제가 머무는 숙소는 아이들 숙소와는 좀 떨어져 있었기에, 저는 그래도 믿음직한 교사에게 미사가방 꼭 챙기고, 새벽에 나를 데리고 가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전 바닷가가 어딘지 잘 몰랐거든요.)
다음날 새벽 5시 20분, 부랴부랴 아이들 숙소로 가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신부님보다 먼저가서 미사준비를 해야하는데.. 미사가방만 가지고 이 교사가 가버린 것입니다. 아이들도 아침부터 구보를 하면서 바다까지 간 모양이었습니다. 난감한 저는 교사들 텐트주위를 맴돌다 사람의 인기척을 발견하고 안을 보니 전례분과장님이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서둘러 분과장님을 깨우곤
분과장님이 몰고온 커다란 트럭을 타고 바닷가로 갔지요.
근데 바닷가 입구엔 기찻길이 가로 놓여있어, 도저히 트럭이 지나갈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저 혼자 내려서 열심히 뛰었습니다.
늦었다는 생각과 날 기다려주지 않은 교사를 원망하며 내리막길을 내딛는 순간 왼쪽 다리가 삐긋하면서 넘어졌습니다. 그것도 내리막길에서... 무릎도 다 까졌고, 신고 있던 스타킹도 구멍이 나고,, 그보다 난감한건 아이들이 보지 않았을까 하는 민망함...
다행히 아무도 안 본것 같았습니다. 나보다 늦게 일어나신 신부님은 어느새 여유있게 바닷가에 오고 계셨지요.
아픈것도 잊고, 열심히 미사준비를 끝내고 미사가 시작되었는데 다리가 서서히 부어오면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절면서 영성체를 하고, 절뚝거리면서 미사도구를 챙기자 같이 치워주시던 신부님과 학사님이 안스럽게 쳐다보셨습니다. 이 새벽에 수녀가 다리를 삐었으니.. 그것도 강원도까지 가서..
아이들을 돌보지도 못하고, 저는 전례분과장님과 함께 생전 처음 간 강릉시내를 다 돌아서 겨우 한방병원을 찾았고, 침을 맞고, 붕대로 퉁퉁 감은채 숙소로 돌아왔고, 2박3일의 남은 2일은 그렇게 절뚝거리면서 앉아서 보낼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사들한테는 잘된 일이겠지요. 제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니..
그때 묵상한 것이 참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성격이 완벽한 성격이라 이것 저것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다리를 삐고 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모든걸 교사들과 자모회장님께 맡길 수 밖에..
아니 하느님께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안전사고 없이 잘 다녀왔고, 저만 상이용사가 되어 돌아왔지요.
지금까지 삔다리로 약간 고생을 하지만.. 그날 바닷가에서 해돋이를 맞이하면서 봉헌했던 미사는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이었겠지요.
불완전한 인간을 당신의 완전한 사랑으로 돌보시는 하느님께 다시한번 머리를 숙이며 나 자신을 낮추라는 싸인을 하느님께서 햇살 속으로 속삭이시는 것 같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