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주님의 뜻대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와 교황'

글쓴이 :  나눔지기 님이 2002-05-25 14:22:23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90)
 
 
주님의 뜻대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와 교황'

얼마 전에 교수들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교황의 방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면서 로마 베드로 대성당과 그 광장의 웅장한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때 한 교수가 불쑥 이런 말을 했다. "신부님, 베드로고 광장에서 오벨리스크를 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필자는 그 교수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즉시 알아들었다. 오벨리스크를 옮겨 오고 세우기에 이른 어떤 정복자의 좋지 않은 모습을 상상하고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이 질문에 필자는 뭔가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쑥 이렇게 응답했다. "원래 천주교회는 돌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돌과 인연이 깊고, 그래서 돌 수집을 좋아한답니다."

이 대답이 그 교수에게 만족을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가톨릭 교회가 큰 돌, 즉 반석 위에 세워짐으로써 돌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돌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을 결코 가톨릭이 처음은 아니었다. 이미 인류는 선사시대부터 돌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오늘에 전해지는 무수한 비석, 오벨리스크, 피라밋, 돌멘, 선돌 등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것들은 기천년의 신비를 간직한 채 어떤 신성함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 같은 것과 무덤과 연결되어 일종의 성성(聖性)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서의 백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우상숭배에 대한 투쟁의 일환으로 높은 곳에 세워진 제단을 파괴하여 마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야훼만을 참된 바위로 믿었기 때문이다.

"내 바위시여, 내 성채시여, 내 피난처이신 우리 야훼님, 당신이 아니고서는 누가 내 바위오니까... 내 몸을 막아주는 큰 바위, 나를 살리는 굳은 성채되소서. 내 바위 내 성채는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시편18,27,30,70,77,80,93).

신약시대에 와서 나자렛의 예수는 구약에서 오직 야훼에게 주어졌던 특권을 자신의 것으로 주장하게 되었다. 베드로 사도는 유태인 법원에서 의원들에게 "예수는 집짓는 사람들, 곧 여러분에게 버림을 받았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사도4,11)고 하며 그들의 죄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실제로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다. 이집트에서 나와 약속된 복지로 가는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다고 불평했을 때 모세는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강물처럼 흐르게 했었다. 바울로 사도는 이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은 그들의 동반자인 영적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다는 말입니다. 그 바위는 곧 그리스도였습니다"(1고린10,4).

이런 근거에서 그리스도는 시몬에게 "너는 베드로(반석)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리스도는 자신이 바위였기 때문에 바위로서의 모퉁이 돌의 특성을 시몬에게 부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베드로에게 주어진 이 권한은 결코 베드로의 덕행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약하고 죄인인 베드로를 지탱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힘임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의 수난 때 세 번이나 배신한 베드로에게 그리스도는 벌을 주기는 고사하고 그의 허약에도 불구하고 그가 맡은 임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그에게 도움을 줄 것을 약속했다.

이제 용서받은 베드로는 진정한 참회자로서 겸허하게 이행할 수 있었다.

로마의 베드로 대성전을 참배하는 사람은 대성전 안의 소위 베드로의 무덤 위 둥근 지붕 밑의 처마에 라틴어 대문자로 새겨진 비문같은 것을 쉽게 발견할 것이다.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이것은 마태복음 16장 18절의 인용이었다.

이로써 베드로에게 특별한 직책이 위임되었다. 그후 복음의 이 구절은 가톨릭 교황 신자들의 확신의 근거가 되었고 오늘에 있어서도 그것은 가톨릭 교회를 위해 근본적으로 기초적인 복음으로 남는다.

베드로에게 위임된 직책은 그의 후계자들에게 이어져 오늘에 이른다. 이리하여 베드로란 이름은 고유명사인 동시에 보통명사가 되어 버렸다. 고(故) 교황 바오로 6세는 1969년 6월 10일 제네바의 세계교회 협의회 본부를 방문했을 때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나는 바오로라고 불리우며 이름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로부터 카롤 보이티야에 이르는 2천년의 교황직의 역사는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는 묵상의 대상이 되고 역사가에게는 숙고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교황직은 세계사에서 가장 오랜 제도이다.

이러한 지속성은 가톨릭 교회와 교황직을 반대하는 사람에게까지 놀라운 역사적 사실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많은 위정자들이 그것을 본보기로 삼으려 했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히틀러는 교회와 교황의 제도에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자신의 후계자를 위해 그와 비슷한 제도를 구상했었다고 한다. 무솔리니도 그의 파시즘 정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가톨릭교회와 교황직을 모델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필히 교황직이 인간이 만든 제도로 잘못 알았고, 하느님의 도움에 의해 그와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이 점이 중대한 것이고 그래서 신앙안에게 묵상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신앙인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시간 안에 뿌려진 영원한 싹의 동일한 발전이다.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 지옥문이 쳐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간 반대나 방해가 끊이지 않았다. 교회 밖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반박이 있었다. 때로는 크고 작은 스캔들도 있었다. 그러나 5천년의 영고성쇠를 거치면서 교황직은 베드로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을 확신하는 신도들의 신뢰를 배신한 적이 없다. 이런 확신을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했다. "베드로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 그렇다. 교황은 동시에 교회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변천하는 동안 십자가는 여전히 서 있다." 이것은 박해시대에 유래하는 값진 격언이다. 베드로 대성전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바로 이 격언을 상징하고자 서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단순한 오벨리스크가 아니다. 왜냐하면 오벨리스크 위에 십자가가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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