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성녀 필로메나 9일 기도로 요긴한 전구를 청해보세요. 다 들어 주실 것입니다.

글쓴이 :  짐카비젤님이 2019-04-18 11:42:4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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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필로메나의 신비스러운 계시와 9일 기도문과 호칭기도

 

  

    

  

  

 

1802년 5월 24일 로마 프리실라 카타콤바를 발굴할 때 바위를 파서 만든 한 지하 납골당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세 장의 테라코타 석판으로 막혀있었는데 그 위에는 붉은 글씨로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비문을 보면 석판의 순서가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순교자를 급히 매장해야 했기 때문에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석판을 바꿔놓자 하나의 뜻이 드러났다.

'필로메나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Pax tecum Filomena)'

 

성녀의 순교 표시는 희망을 나타내는 닻이었다.

두 개의 화살은 그녀가 순교했음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창과 순교자의 승리를 나타내는 빨마가지와 순결의 상징인 한 송이 백합 역시 그러하다.

이 무덤은 보물을 찾아 헤매던 고트족과 롬바르드족의 침입 시기에도 훼손되지 않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었다.

무덤에는 동정 성녀의 피를 담은 작은 유리 그릇과 필로메나 성녀의 유품이 보존되어 있었다.

피는 당연히 말라있었고 봉인된 나무로 된 관에는 유골이 있었다.

신학자와 내과, 외과 의사들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조사 결과 약 12, 13세 소녀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소녀 순교자의 신상에 대해서는 이무것도 알 수 없었다.

기이한 발현이 있기 전까지는.....

 

 

필로메나 성녀의 놀라운 이야기

 

세 명의 열렬한 영혼들이 성녀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들은 각기 다른 나라에 살았고 서로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의 보고는 서로 일치하였고 한 권의 책을 통해 발표되었다.

그 책은 1833년 12월 21일 교황성청(오늘날의 신앙 교리성)의 허가를 받았다.

다음은 필로메나 성녀가 '통고의 성모 수녀회'의 총장 마리아 루이제 수녀에게 발현한 내용이다.

 

"사랑하올 수녀님, 나는 그리스의 작은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의 딸입니다.

나의 어머니 역시 귀족 가문 출신입니다.

우상 숭배자이셨던 부모님은 자식이 없었기에 끊임없이 당신들의 우상에게 기도와 희생 제사를 바쳤습니다.

그러던 중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푸블리우스라는 로마의 의사가 나의 부모님께 우리의 신앙을 얘기하고,

그리스도교로 회심하면 자식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나의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이 말씀의 은총은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을 밝게 비추었습니다.

부모님은 심사숙고한 끝에 마침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초에 내가 태어났습니다.

내가 태어나자 부모님은 나를 '루메나'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내가 신앙의 빛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은 아주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던 날 부모님은 내 세례명을 '필로메나'라고 지었습니다.

'빛의 친구'라는 의미로서 이 세례성사의 은총이 내 영혼을 비추도록..."

 

성녀는 자신의 짧은 생애에 대해 이 수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를 매우 사랑해서 항상 곁에 두었다.

그래서 그녀의 아버지는 로마 군대에 점렴당할 위기에 처한 자신의 영지에 대한 청을 하기 위해 로마 황제에게 갈 때에도 그녀를 함께 데리고 갔다.

필로메나는 자신의 부모가 오만하고 거친 디오클레시아누스를 방문할 때 동행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열세 살이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음에 틀림없다.

그녀의 아버지가 청을 하는 동안 황제는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황제는 영주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 걱정 마시오. 어디서고 소요는 없으리라고 확신해도 좋소.

당신의 아름다운 딸, 필로메나를 준다면 당신을 공격하는 대신 제국의 막강한 권력을 당신께 주겠소."

부모는 황제의 청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자 필로메나는 매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들은 로마의 황후로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필로메나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열한 살 때 순결 서약을 하고 그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살아왔음을 밝혔다.

아버지는 그렇게 큰일을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계속 그녀를 설득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황제는 필로메나를 데려오라고 지시했고, 영주는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필로메나가 길을 떠나기 전에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녀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자신들과 자신들의 나라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필로메나는 뜻을 굽히지 않고 말했다.

"제가 예수님께 봉헌한 순결이 그 무엇보다도 우선입니다.

부모님보다도 우리 조국보다도 제 왕국은 하늘나라입니다!"

깊은 절망감 속에서 부모는 자신들의 딸을 황제에게 데려가야 했다.

 

황제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세력 하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약속도 감언이설도 협박도 그 어떤 것도 필로메나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했던 디오클레시아누스는 몹시 화가 났다.

그는 '사악한 악마에 사로잡혀' 필로메나를 궁전 감옥에 집어넣고 그녀를 사슬로 묶었다.

하지만 디오클레시아누스는 이 고귀한 사람을 보기 위해 매일 감옥에 찾아갔다.

그는 사슬을 풀게 하고 빵과 물을 주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필로메나는 여전히 그녀의 신랑인 예수님께 충실했고 주님의 티없으신 어머니께 의탁했다.

 

감금 생활은 37일 동안 계속 되었다.

그 동안 '하늘나라의 빛 속에서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으신'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셨다.

"나의 딸아, 사흘만 더 갇혀있으면, 그래서 40일간의 이 감옥 생활이 끝나면 너는 이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다."

"나의 가슴은 이 소식을 듣고 기쁨으로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나 그때 천사들의 모후께서는 내게 끔찍한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내 기쁨은 곧 심한 두려움으로 변했습니다.

나는 그가 나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황제는 기둥에 묶인 소녀를 채찍질하게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고집이 세고,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인 황제 이래 백성을 황제보다 더 좋아하므로 그에 상당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녀는 채찍질을 당해 온몸이 찢어졌다.

그는 그녀를 도로 감옥에 집어넣고 그곳에서 죽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빛나는 두 천사가 나타나 그녀의 상처에 천상의 기름을 발라주었고 그 즉시 그녀는 치유되었다.

또한 많은 로마인들이 회심했다.

황제는 이 기적에 대해 쥬피터 신에게 감사하면 황후의 왕관을 약속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필로메나가 계속 거절하자 그는 그녀의 목에 쇠로 만든 닻을 달아 테베강에 던져 넣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두 천사가 가죽끈을 끊고 필로메나를 강기슭에 내려 놓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디오클레시아누스는 필로메나를 마녀로 선언하고 화살을 쏘아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녀는 다시 심한 상처를 입고 감옥에 갇혔다.

그곳에서 그녀는 깊은 잠에 빠졌고 전보다 더 아름다워졌다.

디오클레시아누스의 명령에 따라 이러한 고문은 필로메나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또 새로운 기적이 일어났다.

궁사들이 필로메나에게 쏜 화살이 그녀가 쳐다보자 다 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감옥에 갇힌 그녀가 궁사들을 쳐다보자 그들 중 6명이 죽어 버렸다.

디오클레시아누스는 마술이라고 악을 썼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필로메나가 믿는 신을 믿게 되었다.

분노한 폭군은 계속해서 일어나는 많은 기적을 보고 감동한 군중들이 변할까봐 두려워 그녀의 목을 자르라고 명령했다.

필로메나는 어느 금요일 오후 세 시에 참수되었다.

그날은 8월 10일이었다. 그녀의 축일은 8월 11일에 지낸다.

왜냐면 8월 10일은 다른 순교자, 라우렌시오 성인의 축이기 때문이다.

 

 

필로메나 성녀에 대한 공경

 

필로메나 동정 순교 성녀를 열렬히 공경하는 신자들의 선두에는 6명의 교황이 있다.

그레고리오 16세, 레오 12세, 비오 9세, 성 비오 10세, 베네딕토 15세가 그들이다.

이 교황들은 그들의 권위로 필로메나가 성녀이며 동정이었고, 순교자이며 기적을 일이키는 분이라는 것을 거듭 선언했다.

 

교황 레오 12세는 그녀에게 제단과 경당을 봉헌하는 것을 허락했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마리 폴랭 쟈리코에게 일어난 치유의 기적에 대한 증인이었다.

쟈리코는 병에 걸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상태였으니 필로메나 성며의 유해가 보존되어 있는 무냐노를 순례하고 난 직후 완치되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필로메나 성녀를 "19세기의 위대한 기적의 성녀" 라고 명명했다.

 

교황 비오 9세는 이몰라의 대주교였을 때 자신이 열렬히 공경하던 필로메나 성녀의 전구를 통해 중병에서 회복되었다.

교황이 된 그는 자신에게 기적을 베풀어준 성녀의 성지인 무냐노를 순례했다.

그곳에는 성녀의 유골이 원래의 관 속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그는 필로메나 성녀를 "나폴리의 수호성인"으로 선언하고,

1849년에는 "성모마리아의 자녀들의 수호성녀"로 명명했다.

 

레오 13세 교황이 되기 전 무냐노에 두 번이나 순례를 갔었다.

그는 '성녀 필로메나회'를 허락하고 힘 있는 전대사를 줄 수 있는 최상급 교회 수도회로 승격시켰다.

 

성 비오 10세 교황도 또한 성녀를 열렬히 공공경했다.

그는 황금 반지와 선물들을 무냐노에 보냈다.

 

교황들의 이런 공경은 그 어떤 것보다도 확실하고 뛰어난 후원이 아닐 수 없다.

무덤을 발견한 후에 더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로메나 성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연구했다.

그들은 모두 이 유해가 진짜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밖에도 수많은 놀라운 기적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이 성녀가 실존인물일 뿐만 아니라

강력한 기적을 일으키는 성녀라를 것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후원

 

특히 아르스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가 필로메나 성녀에게 바쳤던 열렬한 공경은

이 성녀의 존재와 그 능력을 의심하던 사람들의 주저하던 태도를 날려버렸다.

그는 이 성녀를 "나의 사랑하올 어린 성녀" 라고 불렀다.

이 존경하올 신부는 가까운 벗이었던 마리아 플랭 쟈리코를 통해 필로메나 성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생명의 묵주기도 운동을 설립한 사람이다.

성녀가 무냐노에서 행한 치유의 기적에 대한 보고와 쟈리코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와의 교제는 성 비안네 신부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마리 폴랭 쟈리코는 자신이 가져온 성녀의 유해 한 조각을 그에게 보냈다.

비안네 신부는 즉시 자신의 성당에 필로메나 성녀를 기리는 경당을 세웠다.

그 경당은 곧 많은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가 되었다.

그곳에서는 많은 회심자들이 생겨났다.

성인 신부는 곧 그녀를 하늘나라에 있는 자신의 거룩한 수호성녀로 모셨다.

프랑스와 그 외 지역에서도 높은 공경을 받고 있는 아르스의 성인 신부를 통해 필로메나 성녀에 대한 공경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랑스의 모든 교구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 기적의 성녀에게 제단과 경당과 성당을 봉헌했다.

신부 자신도 1843년 5월, 종부성사를 받고 난 후 중병에서 치유되었다.

그는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던 날 아침,

사람들에게 자신이 "사랑하올 어린 성녀"의 제단에서 자신을 위해 미사를 올려달라고 청했었다.

이 미사가 행해지는 동안 성녀가 그에게 나타났으리라.

어쨌든 분명한 것은 미사가 끝났을 때 성인이 치유되었다는 것이다.

('Maria heute, 2003'에서)

 

 

 

성녀 필로메나에게 바치는 9일 기도 1

 

오, 신심깊은 동정녀, 영광스런 순교자, 가난한 이들과

슬픔에 지친 이들을 위하여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긍련히 여기소서. 당신은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오니,

위대한 성녀 필로메나여, 비천한 와중에 큰 희망을 품고 당신 발 앞에

엎드린 저를 굽어 보사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지금 당신 앞에 겸손되이 구하는 제 기도를 인자로이 들어주시어,

천주께 제가 청하는 바를 허락해 주시도록 간절히 빌어주소서.

(자신이 청하는 은총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당신께서 참아 받으신 모든 모욕과 고통과 죽음의 공로를

당신의 정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공로와 합하여 천주께 바치며 간구하오니,

당신께 애원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성인들 가운데 흠숭을 받으시는 천주를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성녀 필로메나에게 바치는 9일 기도 2

 

오 위대한 성인이신 필로메나여,

영광스러운 동정녀이며 순교자이고

우리 시대에 위대한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여,

우리를 위하여 영적, 육적인 순결과 마음과 욕망의 순결,

생각과 애정의 순결의 은총을 전구해 주소서.

 

무수한 고통 중에 보여주셨던 당신의 인내를 통해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서 친히 보내주시는 모든 고통들을

겸손되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은총을 전구해주시고,

당신께서 박해자의 명령으로 던져졌던 티베르 강물 속에서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하느님의 섭리로 기적적으로 구출되었듯이

우리도 현세의 온갖 환란의 와중에서 우리 영혼에 어떠한 해도 입음 없이

벗어날 수 있도록 전구해 주소서.

 

이러한 은총과 더불어,

예수님의 믿음직스러운 신부(新婦)인 성녀 필로메나여,

제가 지금 이 순간 간절히 전구를 청하는 특별한 지향이

(잠시 침묵 중에 청하는 바를 생각한다)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오 순결한 동정녀이며 거룩한 순교자이신 성녀여

당신께 충실한 우리들을 천국에서 굽어보시고,

고통 중에 위로하여 주시며, 위험 중에 도와주시고

무엇보다도 죽을 때에 도우러 오소서.

 

또한 하느님의 거룩한 성교회에 요긴한 일들을 돌보아주시고,

성교회의 영광과 번영, 신앙의 확장, 교황과 사제들을 위하여 빌어주시며,

의인들에게는 항구한 덕과, 죄인들의 회개, 그리고 연옥 영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저와 가까웠던 연옥영혼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오 위대한 성인이시여,

지상교회에서 당신의 천국으로의 개선을 경축하면서 간구(懇求)하오니,

우리들도 언젠가는 천국에서 당신이 받으신 영광의 관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여주시며,

이 짧은 현세의 삶 동안에 당신(하느님)을 위하여 참아낸 고통들을

영원한 행복으로 후하게 갚아주시는 하느님을

영원토록 찬양할 수 있도록 전구(轉求)하여 주소서. 아멘.

 

- 성녀 필로메나 현양회 소식지 제2호 -

 

 

성녀 필로메나에게 바치는 기도

 

 

성녀 필로메나에게 바치는 묵주기도

 

성녀 필로메나의 작은 왕관, 또는 화관이라 불리는 이 묵주는

성녀의 순교를 나타내는 붉은 구슬과 성녀의 동정과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릐 구슬로 이루어져 있다.

이 묵주기도는 성녀께 기도를 드리는 가장 단순한 방법들 중의 하나로써,

먼저 묵주의 십자가 또는 성녀 필로메나의 메달을 쥐고 믿음을 주시기를

청하며 사도 신경을 바친다.

각각의 흰구슬에서는 복되신 천주 성삼께서 거룩한 동정녀 필로메나에게

내려주신 은총과 영광에 감사드리며 주의 기도 1번씩 총 세 번을 바치고,

나머지 13개의 붉은 구슬(지상에서 성녀께서 사셨던 13년의 세월을 상징

함)에서는 아래의 기도를 각 1번씩 총 13번을 바친다.

 

“ 오, 거룩한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의 보호자시여, 네게 하례하나이다.

당신의 거룩하신 정배와 함께 우리를 보호하시며,

이제와 우리 죽을때에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사랑스런 딸이신 성녀 필로메나여,

당신께 의탁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

 

위의 기도 대신 13번의 성모송을 바치고,

끝에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기도해도 된다.

 

 

성녀 필로메나께 바치는 호칭기도(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 지음)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늘에 계신 천주 성부이시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천주 성자이시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천주 성령이시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동정녀들의 모후이신 거룩하신 마리아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나실때부터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마리아를 충실히 닮으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동정의 모범이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지극히 겸손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천주의 영광을 위한 열정으로 자신을 불사르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예수님께 대한 사랑으로 희생 제물이 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용기와 인내의 모범이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무적의 승리자이신 순결한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지극히 영웅적인 덕행의 거울이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고문중에도 굳세고 용맹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당신의 정배처럼 채찍질을 당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무수한 화살을 맞으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사슬에 묶여 성모님의 위로를 받으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치유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고문중에 천사들의 위로를 받으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화려한 옥좌보다 고문과 죽음을 더 좋아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당신의 순교를 목격한 자들을 회개하게 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광포한 사형집행인을 견뎌내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무죄한 이들을 보호해 주시는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젊은이들을 보호해 주시는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불운한 이들의 피난처이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병약한 이들을 치유해 주시는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세상의 악과 싸우는 교회의 새로운 빛이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사악한 세상을 물리쳐 이기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신자들의 믿음과 용기를 북돋워주시는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천국의 영광이시며 지옥의 두려움이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지극히 놀라운 기적으로 이름을 떨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천주께 대한 강력한 중재자이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영광안에 다스리시는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 우리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어주소서.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계: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응: 그리스도께서 언약하신 바를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오, 주님, 탁월한 순결과 온갖 덕행의 실천으로

당신께 지극한 기쁨을 안겨드린 동정 순교자 성녀 필로메나의 전구를 통하

여 당신께 간절히 구하오니,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

든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각자가 바라는 특별한 은총을 말해도 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성녀 필로메나에게 바치는 9일 기도

 

오, 신심깊은 동정녀, 영광스런 순교자, 가난한 이들과

슬픔에 지친 이들을 위하여 수많은 기적을 행하신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긍련히 여기소서. 당신은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시오니,

위대한 성녀 필로메나여, 비천한 와중에 큰 희망을 품고 당신 발 앞에

엎드린 저를 굽어 보사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지금 당신 앞에 겸손되이 구하는 제 기도를 인자로이 들어주시어,

천주께 제가 청하는 바를 허락해 주시도록 간절히 빌어주소서.

(각자가 청하는 은총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당신께서 참아 받으신 모든 모욕과 고통과 죽음의 공로를

당신의 정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공로와 합하여 천주께 바치며 간구하오니,

당신께 애원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성인들 가운데 흠숭을 받으시는 천주를 찬미하게 하소서.

아멘.

 

 

성녀를 열심히 공경한 위인들

 

교황 레오 12세는 성녀 필로메나를 18세기의 위대한 기적의 성녀로 선포하셨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성녀를 생명의 묵주기도 운동의 수호자로 선포하셨으며, 성녀께 대한 전 세계적인 공경을 승인하셨습니다.

 

교황 비오 9세는 성녀의 전구로 기적적으로 병이 치유되셨으며,

훗날 교황이 되신 후에 1849년 11월 7일 성녀의 성지에 순례 여행을 다녀오셨습니다.

 

교황 레오 13세는 추기경 재임 중에 두 번이나 성녀의 성지에 다녀가셨으며,

성지의 주임 사제에게 매우 아름다운 십자가를 보내주셨습니다.

 

성 비오 10세 교황은 1912년 5월 21일 성녀 필로메나 회를 전 세계적인 교단으로 승격시키셨으며,

성녀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들으시고 성녀의 성지에 다양한 선물들을 보내셨습니다.

이 선물 중에는 커다란 보석이 박힌 훌륭한 금반지도 있습니다.

 

천주의 종 수녀회의 예수의 마리아 루이제 수녀님은 성녀를 열렬히 공경하셨으며, 나폴리에서 통고의 성모와 성녀 필로메나 수녀회를 창설하셨습니다.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 엮시 성녀 필로메나를 대단히 공경하셨으며,

프랑스 전역에 성녀께 대한 기도를 보급시키셨습니다.

생명의 묵주기도 및 선교회의 창설자 벤 폴랭 제리코는 1835년 9월 10일

성녀 필로메나의 전구로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으며, 성녀를 선교 사제들

의 보호자로 선포하셨습니다.

 

이외에도 성녀를 공경한 성인들로는 성 베드로 쥴리언 에이마르,

성 베드로 샤넬,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성녀 마들린느 소피 바랫,

성녀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 성 프란치스코 사비에르 사브리니,

성 요한 네포묵 뉴먼, 축복받은 안나 마리아 타이지 등이 있습니다.

 

 

성녀 필로메나를 기리는 신심 행위들

 

성녀 필로메나의 끈 (The Cord of Saint Philomena))

 

성녀를 공경하는 신자를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탄생한 이 신심 행위는

1883년 9월 15일 교황청 전례 성성(Congregation of Rites)의 승인을 받았

습니다. 그 후 1884년 4월 4일 교황 레오 13세께서 거기에 귀중한 은사를

내려주시어 이 신심을 장려해주셨습니다. 성녀 필로메나의 동정과 순결을

상징하는 흰색과 붉은색으로 된 모직, 또는 린넨이나 면으로 된 끈을 몸에

묶고 다니는 이 신심 행위는 매우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특히 이태리

외곽지역에서 영육간의 은총을 얻기 위해 행해졌습니다. 이 끈을 몸에 두

른 사람은 아래의 기도를 의무적으로 바쳐야 했습니다.

 

"동정 순교자,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당신의 강력한 전구로 천주께 대한 완전한 사랑에 이르는

영혼과 마음의 순결을 얻게 하소서. 아멘."

 

성녀 필로메나의 기름 (The Oil of Saint Phliomena)

 

이 신심은 아주 단순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성녀 필로메나의 유해가 무냐노에 도착한지 8일째 되던 날,

열심한 신자였던 아벨라에서 온 한 부인이 성녀의 제단 앞에 타오르던

램프의 기름에 손가락을 담가 맹인이었던 자신의 자녀의 눈꺼풀에 바르자,

모든 이들이 놀랍게도 그 아이가 즉시 시력을 얻었습니다.

 

성녀 필로메나의 묵주기도

 

아르스의 성자 비안네 신부가 지은 이 기도는 사도신경 1번과 ,

복되신 천주 성삼을 흠숭하는 세 번의 주의 기도(흰 구슬),

그리고 이 어린 성녀의 나이를 상징하는 13번의 성녀 필로메나께 바치는 기도

또는 성모송과 그 뒤에 성녀 필로메나여,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붉은 구슬)라는 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더 많은 정보는 얻고자 하시는 분은 아래의 주소로 연락해 주십시오.

 

SANTUARIO SANTA FILOMENA

83027 - Mugnano del Cardinale - (Avellino) ITALY

email : SantaFilomena@philomena.it - Tel. /fax: 0039-081-825-7204

 

 

 

 

 

 

<복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 수녀(이하 복녀 에머리히)가 받은 계시에 따른 백인대장 성 크테시폰(아브나달)과 성 론지누스의 감동적인 이야기>

 

성 론지누스

 

1821년 3월 15일 복녀 에머리히는 그 전날 밤 보았던 성 론지누스에 관한 환시 이야기를 내게(시인 브렌타노, 옮긴이 주1 참조) 들려주었다. 그날은 마침 성 론지누스의 축일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론지누스는 내가 알기로는 원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옮긴이 주2 참조) 빌라도 집안에서 공적인 업무와 군사적인 업무 두 가지를 맡고 있었는데 빌라도 총독은 그에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감독하는 일과 또 그러한 일들을 자신에게 소상히 보고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는 신뢰할만하고 기꺼이 일한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격적으로 몹시 우유부단하고 심지가 곧지 못했다. 그는 매사에 극도로 충동적으로 일처리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는 사팔뜨기(옮긴이 주3 참조)였고 양쪽 눈의 시력이 좋지 않아서 동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놀림감이 되었다. 내가 오늘 밤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환시를 보는 중에 동시에 그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환시를 보게 되었다.

’론지누스는 지휘관의 신분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았던 모든 일들에 대해 빌라도에게 보고해야 했다. 예수님께서 가야파의 법정에 끌려가시던 그날 밤에 그는 병사들 무리에 섞여서 바깥마당에 있으면서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하였다. 베드로가 모닥불을 쬐고 있던 하녀의 말에 흠칫 놀랐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한 사람이 바로 론지누스였다: ‘당신도 이 사람(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요한 18:12-27 참조)’

‘예수님께서 갈바리아로 끌려가실 때, 론지누스는 빌라도의 명령으로 그분 뒤를 바짝 따랐는데, 그때 우리 주님께서 그를 쳐다보시며 그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키셨다. 이후에 나는 그가 다른 병사들과 함께 골고타 언덕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말을 타고 있었으며 창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가 우리 주님께서 숨을 거두신 이후에 빌라도의 관저에서 예수님의 다리를 부러트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즉시 갈바리아로 돌아왔다. 그의 창은 여러 부분들이 결합되어 있는 형태로서 창을 뺄 때 원래 크기보다 세 배로 늘어나게 되도록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 주님의 옆구리를 찌르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것은 갑자기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갈바리아 산에서 회개하게 되었으며 얼마 안 있어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음을 확신하며 고백하게 된다. 니코데모스가 빌라도에게 론지누스의 창을 자신에게 달라고 간청하였으며 나는 이 창에 대한 그 후의 역사와 연관된 많은 것들을 보았다. 론지누스는 회심한 이후에 군대를 떠나서 제자들 무리에 합류하였다. 십자가 아래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그와 동료 병사 두 명은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세례를 받은 첫 번째 무리에 속한다.

’나는 론지누스와 이들 두 사람이 긴 흰옷을 입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척박하고 습한 땅에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곳은 사십 명의 순교자들이 나온 곳이었다. 론지누스는 사제는 아니었고 부제였으며 힘닿는 데까지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그분의 수난과 부활의 산 증인으로서 그 사실들을 전하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으며 자신이 지니고 다니던, 거룩한 창의 일부분인 유물에 병자들이 접촉하게 함으로써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였다. 유대인들은 그와 두 동료들이 다니는 곳곳마다 예수님의 부활의 진리를 전하고 그분의 원수들의 잔인함과 기만성을 폭로하는 것에 몹시 분개하였다. 그들의 부추김을 받아서 로마 군인 몇 명이 그들을 체포하도록 파견되었다. 그들의 혐의는 허락 없이 군대를 떠난 것과 공공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론지누스는 밭을 갈고 있었는데 그는 그들을 보자 집으로 초대하여 환대하였다. 로마 군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론지누스에게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설명하자, 그는 자신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서 운수자처럼 살고 있던 동료 두 명을 조용히 불러들이고는 병사들에게 그들이 찾고 있던 이들이 바로 자신들이라고 말해주었다. 이와 같은 일이 거룩한 정원사였던 포카스에게도 일어난 적이 있다. 그 군인들은 그 말을 듣고 론지누스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몹시 괴로워하였다. 나는 론지누스가 동료 둘과 함께 이웃한 작은 마을로 끌려가서 심문받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거기에서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으며 마음대로 다닐 수는 있었다. 단 어깨 위에 어떤 표식을 달고 다닌다는 조건 하에서였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론지누스와 그 작은 마을 사이에 있던, 어떤 언덕 위에서 참수당하였으며 거기에 묻혔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임무를 달성했던 증거로 삼고자 론지누스의 머리를 창끝에 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내 기억으로는 이러한 일이 우리 주님께서 돌아가신 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후에 나는 그와 관련해 일어난 어떤 일들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 성 론지누스와 동향이었던 어는 맹인이었던 여인이 아들과 함께 론지누스의 두 눈이 치유받았던,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눈도 치유받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성지순례를 갔다. 그녀는 아들의 인도를 받으며 순례를 떠났지만 도중에 아들이 죽고 말았다. 그녀는 홀로 남게 되어 무척 상심하게 된다. 그때 성 론지누스가 그녀에게 환시 중에 나타나 그녀가 유대인들이 자신의 머리를 던져버렸던 하수구에서 자신의 머리를 꺼내준다면 그녀의 시력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하수구는 벽돌로 둘러싸인 깊은 우물 같은 곳이었는데 이곳으로 여러 개의 관을 통해서 도시의 온갖 오물과 폐수들이 흘러들었다. 나는 어떤 이들이 그 가련한 여인을 그곳으로 데려다주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 하수구 아래로 자신의 목 높이까지 가서는 내려가서는 그 거룩한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때 그녀는 눈을 뜨게 되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그녀의 벗들이 론지누스 성인의 머리를 보존하였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없다.’

 

주1) 본명은 Clemens Brentano로서 독일의 저명한 시인이요, 소설가, 극작가로 독일 낭만주의의 제 2단계인 하이델베르크 낭만파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말년에 카톨릭에 귀의하여 복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 수녀의 환시들을 받아적고 편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주2) 론지누스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잘 알려져 있는 이 성인은 복녀의 환시에서는 카시우스(Cassius)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BC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음모 세력의 주모자 중에 Gaiuss Cassius Longinus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론지누스 성인은 카시우스 론지누스라는 가문과 관련이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주3) 보통 론지누스 성인은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던 인물로 알려져 왔으나 복녀 에머리히의 계시를 통해서 보면 사팔뜨기였다고 하며, 그가 빌라도 밑에서 맡았던 역할을 고려하면 애꾸눈이었다기보다는 사팔뜨기였다는 것이 설득력이 높다고 여겨진다.

 

 

 

 

 

 

성 크테시폰(아브나달)

 

1823년 4월 1일 복녀 에머리히는 그날이 바로 성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때 현장에 있었던 백인대장(옮긴이 주1 참조)인, 성 크테시폰의 축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그의 생애와 관련해서 매우 여러 가지 특별한 일들에 대해서 환시로 보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외적으로 방해하는 일들과 더불어 몹시 고통을 겪기도 했었으며 이로 인해 자신이 환시 중에 보았던 상당 부분을 잊어버리게 되었다고도 했다. 복녀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아브나달은 후일 크테시폰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원래 아라비아 펠릭스의, 바빌론과 이집트의 사이에 위치한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욥이 인생 후반기를 살던 곳의 오른쪽이었다. 사각형 모양을 하고 지붕이 낮은 집들이 약간 오르막 한 곳에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작은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으며 향료와 향유가 채취되었다. 나는 환시 중에 아브나달의 집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그의 집은 부잣집이라고 여겨질 만큼 넓고 큼지막 했지만 이 집 역시 높이는 매우 낮았다. 이곳의 집들이 이렇게 지어진 데에는 아마도 바람 때문이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그곳 지형은 주변 환경에 너무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나달은 예루살렘에 있는 안토니아 요새의 수비대에 자원입대 하였다. 그는 학식이 있던 사람으로 자신의 예술 연구를 더 수월하게 할 요량으로 로마 군대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확고한 성격이었으며 체구는 땅딸막했으며 피부는 검었다.

’아브나달은 일찍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과 자신이 직접 본, 그분의 기적(옮긴이 주2 참조)을 통해서 구원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으며 모세의 율법에 복종하고 있었다. 비록 그는 아직은 우리 주님의 제자가 아니었지만, 예수님께 대해 어떠한 악의도 품고 있지 않았으며 그분의 인격을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진중하였으며 병력을 교대시키려고 골고타로 왔을 때 주변의 질서를 유지하였으며 모든 이로 하여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할 것을 명했으며 마침내 진리에 그가 굴복하게 되는 순간까지 그렇게 하였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신성을 공적으로 증언하기에 이른다. 사실 부유한 사람이었고 군대도 자원해서 입대하였던 터라 그가 그 즉시 백인대장의 자리를 사임하는 것이 그에게는 전혀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성시를 내릴 때 그리고 그분을 무덤에 안장해드릴 때에 곁에서 거들었다. 이로 인해 그는 예수님의 벗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벳사이다 연못에서 세례를 받은 최초의 무리들 가운데 하나게 되었다. 그때 그는 크테시폰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그에게는 아라비아에 살고 있던 형제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크테시폰에게서 그 모든 기적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구원의 길로 초대받고서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캐실리우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이들 형제들은 새롭게 형성된 그리스도교 초대 공동체에서 부제들을 도와주는 소임이 맡겨지게 되었다.

‘크테시폰은 대 야고보와 동행하여 스페인까지 갔다가 함께 돌아왔다. 이후로 그는 사도들에 의해 스페인으로 파견되었는데 그때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가는 임무가 맡겨졌다. 그는 후일 주교가 되어 방문하기도 했던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일종의 섬 혹은 반도 같은 곳에서 주로 머물렀다. 그가 살았던 지명은 베르구이(Vergui)로 기억되는데 이곳은 나중에 홍수로 인해 황폐해지게 된다. 나는 크테시폰이 순교를 당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책들을 여러 권 집필하였는데, 오늘날 어떤 책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가 썼던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며, 반면에 실제로 그가 쓴 책들은 다른 이들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로마에서는 이러한 책들을 배척하고 있는데 그 상당 부분이 위경으로 판단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들 중에는 실제로 그가 쓴 것들이 일부나마 포함되어 있다. 우리 주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 중에 유대인들의 뇌물에 넘어가지 않았던 병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크테시폰의 동향인이자 친구였다. 그의 이름은 술레(Sulei)가 또는 술레이(Suleii) 비슷한 것이었다. 그는 한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서 시나이 산의 한 동굴로 들어가 칠 년 동안 살았다. 하느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많은 특은을 베풀어주셨으며 그는 아레오파고스 회의의 디오니시오 양식에 따른, 매우 박식한 책들을 썼다. 다른 작가도 그의 저작들을 활용하였으며 이런 식으로 해서 다른 저자들의 책에서 인용된 그의 글들의 일부가 우리에게 전해져 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 모두와 함께 그 책의 이름도 내게 계시되었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크테시폰의 이 동향 사람은 후일 그를 따라 스페인으로 갔다. 크테시폰의 동향인들 가운데에는 그의 형제인 캐실리우스를 포함해서 인탈레시우스, 헤시시우스와 유프라시우스가 있다.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 때 개종한 아랍 사람으로는 술리마라는 사람이 있으며, 크테시폰의 동향인이었던 술렌시스는 후일 부제들의 시기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주1) 통상적으로 복음서의 수난 이야기에 나오는 백인대장을 론지누스 성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복녀 에머리히 수녀의 계시를 통해서 그 백인대장은 아브나달이었으며 론지누스와는 분명 다른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혼동하게 된 배경에는 복녀가 받은 방대한 계시 중에 그리스도의 수난 부분에 상세히 나오지만 아브나달(성 크페시폰)이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임종 직후 전적으로 회개하게 되면서 주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즉시 지휘권을 론지누스에게 넘겨주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이후의 그의 역할은 일시적으로나마 론지누스가 맡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혼란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주2) 루카 복음 7장 6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에 보면 믿음 깊은 백인대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복녀 에머리히 수녀의 계시에 따르면 그때 자신의 믿음을 보시고 자신의 종을 치유해주신 예수님께로부터 칭찬받은 백인대장이 바로 아브나달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적이란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종을 치유해주신 것을 뜻하는 것이리라.

 

번역: 공동구속자 성모회 차 요아킴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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