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한 짧은 단상 20100425

별지기 2010/04/24 오후 11:59 (505)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7-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나에게 주신 내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도 위대하시어, 아무도 그들을 내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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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 듣는다."

  

처음 그분을 보았을 때, 분명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십자가에 달려 있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사람의 고통을 아직 잘 모를 때, 나무만 보이던 곳에 달린 사람을 보며 한참을 멍하게 있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제는 헐리고 없는 성당 뒷편 기둥 뒤에서 앉아도 일어서도 그저 그런 키의 아이는 예수님을 그렇게 만났습니다.

 
집을 유난히 좋아했던 아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과 가족 어딜 둘러봐도 다른 이들보다 하나도 좋을 것 없는 집이란 걸 어느 집 친구들보다도 더 빨리 알았고, 어머니가 일 나가신 집에 아프기만 하시는 아버지에게 글을 배우고 공부를 배우는 누나의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공부의 전부였던 아이.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 집도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것을 고마워하며 살아야 하고, 뇌성마비 누나의 손을 잡고 성당을 다니며 쳐다보고 놀리며 돌을 던지는 이들이 바로 내 친구라는 사실에 사람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던 아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처지에서도 다른 이들에게 단 한 번 싫은 소리, 나쁜 행동을 하지 않는 부모님과 시키지 않아도 가족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가족들 사이에 집안에 귀찮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유일한 좌우명이었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살았습니다.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모든 조건에서 남들보다 뒤 떨어진 아이에게 미래라는 것은 그저 사고 안치고 남 안괴롭히고 남들처럼 평범하면 그것이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같은 세상에 있으면서도 나는 다른 아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어린 눈에 들어온 세상과 나는 정말 그랬습니다.

  

그런 아이의 눈에 비친 예수님은 궁금한 분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분의 부활에 찾아간 성당에서 그 주인공이 여전히 죽어 있는 모습을 보았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눈길을 그분에게서 느꼈습니다. 그분의 고통이 아니라 그분이 그렇게 사랑하셨다는 말이 너무 좋았습니다.

 어린이라 불리던 시절에 성당에서 만나는 예수님은 세상에서 내가 따를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이에게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행동은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당의 선생님도 친구들도 내 이름을 모르던, 그 어린 시절의 짧은 교리 시간이 그렇게 예수님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곁에 사는 사람들을 천사로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돌아가신 아버지, 병원 문턱도 못넘고 가신 아버지는 가족마저 버린 가운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기도 속에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아버지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손에서 나온 정성으로 아버지는 천국 이전에 세상의 보금자리를 얻었습니다. 나에겐 아버지의 마지막 생애에 선택하신 하느님에게서 나온 묵주과 손에 쥐어졌고, 그 묵주를 함께 지닌 사람들을 보며 이제 아버지는 다시는 아프지 않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확신을 가졌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노래를 부르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어렵사리 세례를 받고 복사단을 하며 레지오도 하면서 나도 하느님께 무엇인가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에서 나오는 인사 한번, 좋은 말 한번, 화를 참고, 욕을 하지 않는 것, 길의 쓰레기를 줍는 것,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곁을 찾아가며 하느님께서 좋아하시는 것, 그리고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는지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며 싸우지 않고, 이기지 않고 사는 방법을 알았고,  그렇게 새로운 친구들도, 가족들도 생겼습니다.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이들과도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자존심 하나를 지키기 위해 내 자존심이 아니라 생각하는 모든 경쟁과 싸움의 것에서 물러났고, 그 때문에 너무나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르쳐준 것이 하느님이셨습니다. 신부님, 수녀님, 선생님, 어머니에게서 들은 하느님에 관한 이야기들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모든 이들 곁에 계시는 예수님이셨습니다.

 그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정말 우리를 좋아하시는구나. 사람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능력으로 쳐다보고 우러러도 예수님은 그것 때문에 우리를 좋아하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신부님이 되겠다는 것, 처음엔 정말 훌륭한 옷 한 벌 입는 것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처럼 살면 좋겠다는 생각에 뜻을 품고 시작을 했습니다. 신부님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의 대리인이라는 말 한 마디가 나타내는 것이 그 뜻이라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초등학교.
그 때 나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고, 알았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 밖에 없었던 행복한 아이.
그래서 오늘 예수님의 목소리는 저에겐 너무 기쁜 추억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나를 신부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신부입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지.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소주일. 남들 부른 이야기 하듯
그렇게 강론하고 해설하고
젊은이들을 초대하는 요즘.

 

왜 나의 그 행복한 이야기는 꺼내질 못하는 것일까요? 
신부로 사는 것이 바로 그 길이라 생각하고 달려 왔고 
모든 불가능한 조건을 넘어 허락해 주셨는데도, 
나는 왜 이런 행복한 목소리와 삶을 남들 이야기처럼 
전혀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바늘구멍 같은 기회를 허락하는 것처럼 
그렇게 이야기하고 사는 것일까요?

 

채 10살이 되기 전,
나를 찾으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기억합니다. 
그 진리를 꺼내가며 살아가는 것으로 연명하는 삶입니다.

 

이젠 다시 그분의 목소리로 살아야겠습니다.  
후회가 더 쌓이더라도 그분의 목소리는, 사랑은 여전하지만 
제가 더뎌질까 걱정이어서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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