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예수님이 주교와 사제에게 - '교회의 주된 규율들을 구(救)합시다!'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 / 가톨릭출판사)

글쓴이 :  예수.kr 관리자님이 2020-11-22 08:59:2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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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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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옷타비오 신부를 통해 사제에게 주신 예수님의 메시지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라!"에서/ 1999.10.30 교회인가/ 가톨릭출판사)

 

 

 

 

 

 

"교회의 주된 규율들을 구(救)합시다!"

 

내 지상 대리자인 요한 바오로 1세가 최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집'(요한 14,2 - 역주)으로 올라가기 전에 "교회의 주된 규율들을 구(救)합시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며칠 전 요한 바오로 2세도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온 교회에 보낸 이 호소 - 그야말로 위기를 경고하는 외침이 이 고뇌에 찬 호소를 통하여 그들이 하고자 한 말의 의미는 무엇이겠느냐?

사람들은 파괴될 위험에 처해 있거나 부분적으로 파괴된 것을 구해보려고 애쓴다. 불이 붙은 집을 구해 보려고 애쓰고, 그럴 경우 건질 수 있는 것은 어떻게든 건져 보려고 도움을 찾거나 청하는 것이다....

 

아들아, 내 교회가 불타고 있다. 불길이 교회의 지극히 아름다운 구조를 파괴하고 있다. 그 아름다운 구조로 내가 교회를 세웠는데 말이다.

내가 교회 주위를 에워싸게 한 영적 보루들과 교회 내부에도 군데군데에 배치한 모든 보루들이 불길에 휩싸여 있다. 모두가 위기에 처해 있다!

 

머지 않아 참된 불길이 덮쳐 파괴를 완성할 것이고, 그러면 이 교회가 완전히 새롭게 변모될 것이다.

다른 경우에도 네게 말했음에 틀림없지만, 각종 수도원과 공동체들이 그 수효만큼 이 화재와 위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잿더미 속에서 오래도록 타고 있었던 불씨가 불길을 이루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불길이 이리저리 번지며 서로 만나서 내 교회를 휩쓰는 큰 화재가 되었으니, 극도의 위기에 처한 교회가 이제는 온통 불타고 있는 것이다!

 

신앙 및 내적 생활의 위기에서 오는 혼란

 

교구와 본당과 신학교와 그 외 다른 기구들 모두가 많건 적건 오직 하나의 원인에서 유래하는 심각한 불안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원인은 참된 내적 생활의 위기와 다를 바 없는 신앙의 위기이다. 이런 이유로 내 신비체 전체에서 외적 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네가 이미 알고 있으므로 여기서 다시 상기시킬 일은 아닌 것 같다.

 

내 교회는 현재 혼란에 싸여 있지만, 사람들은 이 혼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의 주된 원인이며 따라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특히 더 그렇다.

성직자들의 옷 입는 방식에도 혼란이 있다. 법을 만드는 사람은 그것을 존중하게 할 의무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법을 만들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데 법을 만들고서 그 법을 지키게 할 아무 조처도 취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겠느냐? 이는 무책임한 행위가 아니겠느냐?

전례와 성사 집전에도 혼란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번 메시지에서 내가 말한 것을 생각해 보는 것으로 족하다. 사제들이 내 '구속'의 결실인 성사의 거룩한 특성을 망각한 채, 일상적인 잡일을 하듯이 거행하는 경우가 매우 많은 것이다. 나는 이 독성적인 모욕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낱낱이 밝히지는 않겠지만, 하느님의 일에 아주 둔감한 신자들마저 눈쌀을 찌푸리게 할 정도이다! 교회에 대한 관계에도 혼란이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는지!.... 수많은 사제들이 마르크스주의적인 신문 잡지를 구독하고..... 무신론과 부도덕을 교묘하게 주입시키는 신문들을 읽고.... 평신도에게도 금지된 영화관을 자주 들락거리곤 한다!.....

주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간섭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대관절 어찌된 일이냐? 만일 이를 모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양떼를 돌보아야 할 사제들을 위협하는 상황과 위험에 대해서 조금도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이제 정의의 때가 시작되었으니,

사람이 하느님을 배반하고서도

징벌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들아, 네가 걱정하고 있구나..... 오, 그러지 말아라. 나 예수가 당부하는 말이다. 나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도 너에 대해서 어떤 짓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가 여러 번 안심시켜 주지 않았느냐? 게다가 네가 고통을 받도록 허락하는 것도 오로지 나의 더 큰 영광과 영혼들의 선익을 위해서일 뿐이다.

 

아들아, 밭에 잡초가 무성해지면, 제초 작업에 힘을 쏟아 완전히 뽑아 버리거나 아니면 밭이 불모 상태가 되도록 방치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기 마련인데)..... 오늘날 내 교회가 바로 그런 처지에 있다!

철저한 정화 작업이 이미 시작되었으니, 이것이 내 교회를 새롭고 아름답게 해 줄 것이다..... 너는 (이 말을)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비웃고 있다고 말하고 싶겠지? (사실) 그들은 비웃고 있다. 그 불신자은 사탄 교회의 신봉자여서 그들의 두목과 마찬가지로 불신에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도 생각을 바꾸어 회개하고 싶어질 때가 올터인데. (그때에는 이미) 그럴 겨를이 없을 것이다!

나와 내 신비체를 배반한 그들에게 한 번 더 상기시키거니와, 내가 참고 또 참으면 자비를 드러낸 것은 종전까지만 해도 '자비'의 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들아, 이제 '정의'의 때가 시작되었으니, 사람이 하느님을 배반하고서도 징벌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와 함께 내 어머니와 성 요셉도 네게 강복하신다, 나를 사랑하여라. 그러나 결코 두려워하지 말아라!

(1978년 11월 18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그러면 누가 더 강하단 말인가?"

 

아들아, 써라. 나는 현재의 사실들과 대혼란을 인류와 특히 내 교회에 비추어 보면서 이야기를 계속하고자 하는 예수이다.

지난 메시지들에서 네게 마귀들의 보이지 않는 세계가 어떤 방법과 무기를 써서 교회와 뭇 민족을 굴복시키는 데 성공했는지를 말한 바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사태가 그렇게 돌아가고 말았다니 "그러면 누가 더 강하단 말인가?"라고 자문하는 많은 이들의 반발을 미리 막고자 한다.

너는 누가 더 강한지를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아는 사람이 사실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이 메시지들을 주는 이유는,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이 퍼지게 하기 위함이요, 그리하여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막이 떨어지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이성의 빛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데다 신앙의 빛은 더욱더 사용하지 않아서 진보도 하기 전에 그 빛이 꺼져 버리고 마는, 지각없고 의지박약한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막을 말한다. 그렇게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위대하고 숭고한 실재들 속에 잠겨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고, 거기에서 유익을 끌어낼 줄도 몰랐던 것이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도..... 안쪽만은 못 보는 사람들

 

그들은 뒤쫓는 자들에게서 간신히 벗어나서, 굶주리고 지친 채 어떤 큰 집에 이르러 피신하고 있는 사람과도 같다. 그는 아마도 원수의 손아귀에서는 잠시 벗어났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허기와 갈증에 시달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지만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발견할 수가 없다. 밖으로 나가자니 또 쫓길 것이 분명하고, 안에 있자니 굶어죽겠고...... 그러니 그의 처지는 여간 불안하지 않다..... 그런데 그는 그토록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도 주방 옆, 식품이 가득 저장되어 있는 방의 안쪽만은 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믿음이 없는 이 세기의 사람들과 뭇 민족들도 그와 같다. 그들은 그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기 위하여 사방을 뒤지며 찾아다닌다. 정치적 이데올로기, 과학, 새로운 철학, 발견, 여행, 쾌락, 혁명 및 전쟁까지 찾고 뒤지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이 세상 피신처 속에 하나밖에 없는 방의 안쪽을 못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초자연적인 방이요, 그들이 시달리고 있는 내적 허기와 갈증을 채워 줄 온갖 좋은 것이 가득한 참된 방인데 말이다.

 

발견과 뜻밖의 발견물과 발명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오직 여기서만 그들의 행복과 참된 자유와 정의와 사랑에 대한 크나큰 열망을 채우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퍼낼수 있건마는!

뭇 민족과 각 개인은 빛을 찾았으나 오히려 갈수록 더 짙어지는 어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오늘날의 모든 사람과 교회가 질투와 공포라는 극히 짙은 어둠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찾았으나 증오를 만났고, 평화를 찾았으나 전쟁과 혁명을 만났으며, 정의를 찾았으나 더없이 흉측한 불의로 말미암아 굴욕을 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교만하게도 행복을 여는 놀라운 열쇠를 손에 쥐고 있다고 믿었지만, 반대로 불만과 불행 속에 잠겨 있음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전능하시고 전지하시며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을 멀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을 비웃으며 무신론자들과 결탁해서 하느님과 정면으로 대립함으로써 별 어려움 없이 자리에 대신 들어앉을 수 있다고 주장해 온 것이다.

 

온 인류가 정화에 연루되리라

 

이 대규모의 마르크스적 물질주의의 운동 속에서, 천지 창조 시초에 어둠의 음험한 세력과 '빛'의 세력 사이에 일어난 것과 같은 상반되는 입지(立地)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여간 분별없는 일이 아니다.

 

아들아, 이런 이유로 정화의 때는 인류 역사상 일찍이 유사한 것이 없었을 만큼 무서운 때가 되리라고 네게 말했던 것이다. 반역의 검은 천사들과 하느님께 충성스러운 빛의 천사들 사이에 언제나 진행중인 전투에 온 인류가 연루되리니,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인류뿐만 아니라 "온" 인류, 곧 구원되어 천국에 있거나 멸망하여 지옥에 떨어진 인류도 함께 연루될 것이다.

 

아들아, 우리는 가장 큰 위기의 절정에 와 있다. 그리고 외관상 문명과 진보의 "더할 나위 없는 극치"(nec plus ultra)로 보이는 것도 실상은 아주 딴판이다.

 

아들아, 교회의 정면 배후에 있는 것을 그대로 네게 보여 준다면 너는 그 때문에 즉시 죽고 말 것이라고 언젠가 네게 말한 적이 있지만, 오늘은 덧붙여 이렇게 말하겠다 : 세상을 가리고 있는 휘장 뒤에 감추어져 있는 것을 그대로 네게 보여 준다면 너는 한 순간도 더 살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사탄이 현대의 인류를 해치며 자행하는 속임수는 너무도 엄청나고 흉악한 것이어서 전례가 없을 정도이다. 다만 악의 거대한 구름이 인류를 뒤덮고 있어서 이 비극적인 현실을 깨닫지 못하게 할 따름이다.....

 

아들아, 너는 "모든 악의 뿌리"인 교만의 결과를 보고 익히 알고 있으며, 또한 성령의 말씀이 담긴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그러니 "모든 선의 뿌리"인 겸손이 네 안에 심화되도록 기도하여라.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그리고 너와 함께 하느님 앞에서 걷고 있는, 영이 겸손한 모든 이들에게도 강복한다. 네게 분명히 말하거니와,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 5,8 - 역주).

(1978년 11월 15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크나큰 겸손

 

너희는 악마가, 특히 광야에서 나를 유혹하는 상황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

그 때와 장소라는 상황을 유심히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의 영원한 '말씀'인 나는 지극히 숭고한 목적에서 나오지 않은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터이니 말이다. 내가 사탄으로 하여금 다가와서 나를 유혹하게 허락한 것은, 너희를 생각하고 미리 보면서, 악마와 그 위험한 군대와 과감히 맞서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

유혹이 닥친 것은 내가 광야에 머물러 있었던 시기의 끝에, 곧 단식이 끝났을 때였다.

사람이요 하느님인 나는 너희에게 이 싸움에 대해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를 알려 주면서 이렇게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 기도하고 속죄하여라. 많이 기도하고 많이 속죄하여라. 그렇게 할 때라야 비로서 싸움에서의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오늘날 온 세상을 쏘다니며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지옥의 세력들은, 갑옷으로 무장하고 제일선에서 그들과 교전해야 할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있다.

 

사명과의 불일치

 

언제나 그랬듯이 예외가 있긴 하지만, 지옥은 오늘날 주교나 사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교회의 근본 목적은 영혼 구원에 있다는 것, 그러니 영혼들을 멸망시키려는 자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도무지 꿰뚫어 보지 못하고 따라서 확신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영적 현실들과 나의 이 호소들 앞에서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부정적인 태도로 반응함으로써 그들의 치유할 길 없는 무분별과 사명과의 불일치를 확인케 할 따름이다. 그들의 사명은 영혼들의 선익을 위한 것이건만, 그들은 그 사명을 가지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곧 그들 자신의 교만을 채우고 있으니 말이다.

너희가 그렇게 반(反)사목적인 태도에 뿌리를 박고 있는 이상, 이제 거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크나큰 겸손의 행위가 필요하다. 착한 뜻을 가지고 이 행위를 한다면 아주 빨리 적절한 방법을 되찾게 될 것이다.

 

치명적인 병에는 극약 처방을 한다고 너희는 말한다. 나도 확실히 극약 처방이라고 할 수 있는 말을 하겠다. 즉, 극약 처방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일로 여겨지겠지만, 주교가 사제들을 자기 주위에 불러 모아서 이렇게 말할 결심을 하는 것이다 :

"여러분, 우리는 막강한 영적 원수들의 간계에 속아서 다소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원수들은 우리의 주의를 사목상 극히 중대한 문제에서 다른 데로 돌리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영혼들의 필요와 이익에 대해서 더욱 올바르고 더욱 현실적이며 더욱 관련이 깊은 통찰을 함으로써 그것을 우리의 행동 근거로 삼는 일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영혼들의 목자인 나는 지옥의 어두운 세력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더욱 가까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스승께서 모범과 말씀으로 가르쳐 주신 수단들을 쓰면서, 더욱더 깨어 내 양떼를 보호할 작정입니다."

 

겸손한 용기

 

아들아, 영혼들의 목자가 이 겸손의 행위를 하려면 얼마나 큰 투쟁을 해야 할지를 나는 잘 안다. 그러나 이 겸손의 행위로 그는 하느님 대전에 큰 사람이 될 것이고 교회 앞에서도 큰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강의나 강론 중에는 가끔 큰 겸손으로 위장하지만, 그 직후에는 누군가가 그들 자신이 한 말을 그들에게 하면 당장 반응이 야릇할 뿐더러 두고두고 적의를 드러내는 것을 너는 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언짢은 것이라면 도무지)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참된 아버지들은 그렇지 않건만!

 

아들아, 그렇게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비참과 한계를 고백하면서 취하는 위선적인 겸손과, 여행 중에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 성 프란치스코의 참된 겸손을 비교해 보도록 하여라 : "형제여, 우리가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문전(門前) 박대를 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더욱이 그런 가련한 처지에 있는 우리를 눈이 쌓인 땅바닥에 내던진다면, 그것은 참된 기쁨, 참된 환희가 될 것이오"

 

배반한 사도에게서 사랑의 입맞춤을 받아들인 사실 - 이것이 내게는 거짓 겸손이 아니라 참 겸손이었다.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의 모욕을, 그 매우 심한 모욕을 잊어 버린 것 역시 내게는 겉꾸민 위선이 아니었다.

내 생애 속에 들어 있는 이런 일화들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묵상한다면, 얼마나 많은 것이 변화되겠느냐!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1976년 6월 1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전례상의 대혼란

 

아들아, 또 대혼란에 대해서 말해 보자. 이번에는 전례상의 대혼란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내 아버지와 하나인 것처럼 오로지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서, 모든 일에서, 그리고 그들을 굳건하고 거룩하게 해 주는 모든 것에서 일치를 도모해야 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하나의 큰 가정 안에, 바로 하느님의 자녀들의 가정 안에 그들을 결합시키는 교회가 있고, 교회 안에는 이 일치를 더 확고하고 안전하게 하기 위해서 교구와 본당들이 있다. 교구와 본당들에서는 '전례'에 의해서 이 일치를 도모하고 바라며 유지한다. 전례는 '신비체'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호흡이다. 바로 이 수단에 의해서 신비체는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생명'인 은총을 낳는 성사들을 통하여 양육되는 것이다.

 

신비체는 그것 자체로 또 그것에 의해서 기묘한 것이니, 스스로를 보존하고 성장 발전시키면서 이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아쉬움이 없도록 영광과 풍부한 힘과 영적인 능력을 베풀기 때문이다...... 틀림없이 교회는 완전하다. 그러나 악한 세력의 훼방에서 면함을 받은 것은 아니다. 악의 세력은 대혼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것, 즉 무질서와 탈선과 악습과 시샘과 질투 및 다른 모든 악들을 어김없이 가져오기 때문에, 나의 '성전'에서 일치의 수단인 전례가 항상 "모든 악의 뿌리"(radix omnium malorum)인 교만의 영향으로 분열의 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자만과 반역

 

교회의 종파 분열은 다른 동기들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경우에도 전례상의 동기로 표면화되곤 한다.

전례위원회에서는 거룩한 전례 거행에 관한 지침을 공포하지만..... 모두가 그것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교회 일치의 한 부분인 전례상의 일치가 얼마나 깨어져 버렸는지를 보려면, 성사들이 집전되는 방식을 살펴보는 것으로 넉넉하다.

이에 대한 변명은 다른 이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것인데..... 그것은 마치 모든 사람이 자기 부모를 욕하면서 순종하지 않으니 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은 것이다...... 이는 '지혜'의 스승이 되어야 할 사람들로서는 말도 안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극히 짧은 시간에 집전되는 미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하겠느냐?...... 통상 8분만에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12분 내지 14분이면 끝낸다...... 가장 중요한 경신례를, 모든 전례 중에서 가장 장엄한 전례 행위를, 인간적인 어떤 행동보다 성의없이 해치우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께서 바라 마지않으시는 영적 일치의 실현에 아무 보탬이 되지 않는다...... 그런 사제는 예외이니 고려에 넣어선 안된다고 말하지 말아라. 예외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묵살할 수 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효력을 내는 언어의 전례

 

그러니 전례에도 대혼란이 있다....

오, 내 모든 사제가 이 세상 무엇과도 비할 데 없는 사제직의 위대함과 품위를 의식한다면, 훨씬 더 많은 내 자비로운 성심으로 데려오련마는!

 

전례는 신앙과 확신을 가지고 거행될 경우, 그 상징과 표지로써 참여자들의 마음에 효력을 내는 언어이다.

장엄한 전례가 거행될 때마다 항상 함께 있는 수많은 천사들은, 사제들의 냉담한 내적 성향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얼마나 자주 전율을 느끼는지 모른다! 믿음과 사랑으로 예식을 거행하지 않고 교활하고 야비한 위선으로 행동하는 사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 교회의 모습을 잠시 흘긋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교회가 허다한 악에 짓눌리면서도 그의 원수들이 준비 중인 무시무시하고 결정적인 공격에 대항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대항해야 할 판인데, 다수의 타락한 내 아들들은 분별없이 그 원수들에게 협력하는 배신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너에게 한 번 더 말하지만, 교회가 '아가'(雅歌)에 나오는 희고 깨끗한 "비둘기"처럼 다시 예수의 "신부"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이제 그만 하자,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그리고 네 곁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협력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너와 함께 강복한다......

(1978년 11월 17일 ②)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법에 있어서 대 혼란(3)


내 법에는 "도둑질하지 못한다!"(출애 20,15 - 역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오늘날 세상에서 행해지는 모든 거래에는 부정 행위들이 뒤얽혀 있다. 그래서 스스로 착하고 정직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양심의 가책없이 습관적으로 부정 행위를 저지른다. 게다가, 누구나 다 그렇게 하는데 뭘....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악이 그렇게 일반화될 정도로 퍼졌다면 더 큰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이유가 될 뿐, 자기 정당화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거듭되는 부정 행위는 정의를 거스르는 죄이다. 이는 그 성격상 부당하게 취득한 재산을 보상할 것을 요구하는 죄이니, 이 보상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신의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하는 매우 큰 위험 속에 있는 것이다.


악은 그 성격이 어떤 것이건 사회적 단체를 이루는 구성원들 사이의 질서를 교란시키고 어지럽힌다. 따라서 내 교회가 세상 속에 자리하면서 수행해야 할 바람직한 일은 바로 영혼들 사이에 올바른 균형을 재건하는 일이요, 영혼들을 깨우치고 보살피고 치유하는 일이다. 이렇게 할 때라야 비로소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물질주의는 모든 이단을 내포하는 이단이다

내 법에는 "간음하지 못한다!"(출애 20,14 - 역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점에 대해서는 혼란이 극에 달해 있어서 이제는 아무 장벽이 없을 지경이다. 이것이 넘쳐 흐르는 강물처럼 만연하여 온 인류 사회를 더럽히는 악이 되고 말아서, 진정 살아 있고 효과적인 신앙을 지닌 사람들만이 오염되지 않은 채 무사히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의 인류가 걸려 있는 이 모든 질병의 원인은 무엇이겠느냐?
물질주의 및 물질주의적인 인생관. 이는 모든 이단을 내포하는 이단이다. 지옥 세력이 인류를 유혹하기 위해서 이 이단을 활용했고, 분명히 성공을 거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교계의 책임이 크다. 영혼들에 대한 이 큰 위험, 이 대규모의 공작에 대해서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기울여 대처할 줄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둘러 민첩하게 무기를 들지 않았고, 필요한 만큼 힘차게 대응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현재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스도 교회의 다양한 (종파) 분열. 그래서 나는 먼젓번 메시지에서 현재적 위기의 뿌리는 지난 여러 세기에 걸쳐서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가정 공동체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하느님에게서 멀리 떼어 놓는 산업화 과정. 이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마르크스주의의 선전이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서서히 신앙을 소멸시켜 온 것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나 과거에 시작되어 오늘날 그 절정에 이른 이 큰 위기는 머지않아 이 땅의 표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오늘날 큰 지진을 만난 듯 혼란에 처한 하느님의 '법'은 영원히 한결같으신 하느님처럼 영구 불변하게 존속할 것이다!


사제의 사명은 종교적인 사명이다

하느님의 '법'에 대해 얼마나 큰 혼란이 일어났는지, 사람들과 선과 악을 분별할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다.
자식을 저버리는 부모들. 일체의 도덕성을 상실한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인다운 데가 조금도 없다.
상습화된 신성 모독적인 언사.
외설적인 언사.
흔히 잔인한 폭력으로 변하는 말다툼의 증가.
- 어린이들, 심지어 아주 어린 아이들도 읽을 수 있게 방치된 외설서적이나 잡지들
- 갈수록 거칠고 상스러워지는 말
- 흔히 상호 동의하에 수용되고 자행되는 부부의 불충실.... 이렇듯 선과 악에 대한 관념마저 아예 사라진 가정이 매우 많다.....


이 모든 것이 물질주의의 소산이다. 형태는 다르지만 항상 치명적인 해독을 지닌 이 물질주의가 교회 조직 속에도 침투하였다. 그래서 물질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젖은 사제들은 마치 사제적 성격에 변화가 생기기나 한 것처럼 처신한다. 사실, 그들은 누구의 무슨 죄에 대해서든지 더없이 쉽게 다 용서해 주는 것이다.

매우 많은 사제들에게는 사회적인 문제만이 중요하다. 이것이 다른 모든 문제들보다 월등 중요해서, 사제관(司祭觀)을, 곧 "사제로서 사는" 방식을 변질시키고 있다.
사제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나는 사제의 자격으로 지옥의 압제에서 영혼들을 구원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그러니 사제의 사명은 정치적이거나 노동조합 결성 따위의 사명이 아니라, 오로지 영혼들의 영적 선익을 지향하는 종교적인 사명이 아니겠느냐?
사제직을 버리고 떠난 사제들이 많은가 하면, 탈선한 사제들과 사제생활이 이미 마비 상태에 이른 사제들도 많다. 세상의 현실에 깊이 빠져듦으로써 그들 자신의 사제직과 그 소명의 진정한 동기를 볼 줄 아는 눈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살아 있고 효과적인 신앙과 진실한 공경심, 곧 내적 생활의 열매인 은총이 언제부터인지 그들에게 흘러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원천이 일단 말라 버리면 사제 생활의 모든 탈선과 변질이 일어난다는 것 - 이는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교회라는 사회에서 발생한, 법에 있어서의 대혼란의 몇 가지 결과이다. 마치 이 법이 말라 버려서 그 궁극 목적을 이룰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오늘 아침은 이쯤에서 그만 하자. 나를 사랑하여라. 네게 강복하니, 기도하고 보속하여라!

(1978년 11월 17일 ①)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법에 있어서 대 혼란(2)

 

아들아, 나는 네게 현 시대는 큰 재난의 시대이고, 지옥의 은밀한 세력들이 그 권세 - 이는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에 의해서 그들에게 허락된 권세이다 - 의 절정에 달했거나 달하고 있는 시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시대는 또한 크나큰 진리의 시대이기도 하다. 나는 모든 사람이 구원의 바른 길을 알게 되기를 원하기에, 그 길로 다시 들어서려는 착한 뜻을 가진 모든 사람을 도와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선택을 하기에 이상적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남이 있는 삶의 여정을 어느 방향으로 향하게 할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실, 오늘날 의심 때문에, 하고많은 의심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빛이라고 할 수도 없고 어둠이라고 할수도 없는 안개 속에 살고 있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의 빛이 (선택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의 불확실성은 언제나 그들만의 책임은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더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내 신비체의 곪은 상처들을 싸맨 붕대를 풀고 그 상처들을 드러내어야 할 때이다. 헐뜯기 위한 병적인 취미 때문이 아니라 치유하기 위해서이고,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깊은 구렁 속으로 당장이라도 빠질 위험이 있는 많은 영혼들이 그토록 역겨운 광경을 보고 정신을 차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사제다운 힘찬 내적 생활로 하느님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먼젓번 메시지에서 너로 하여금 내 신비체를 괴롭히는 곪은 상처 몇 가지를 일별(一瞥)하게 했는데, 가정과 같이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부분을 썩게 하는 상처들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도처에, 심지어 내게 봉헌한 사람들인 사제들 사이에도 퍼져 있는 부도덕을 살펴보고자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착하고 거룩한 몇몇 사제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사제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말하느라고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다. 또 사제의 품위와 권한에 대해서도 다시 말하지 않고 - 이에 대해서는 다른 메시지들 속에서 이미 말했으니까 - 오늘날의 사제가 벗어나지 못한 채 발버둥치고 있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말하겠다. 이는 사제로 하여금 신앙과 은총의 올바른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어려움들인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힘들이 그들에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옥의 어두운 세력에서 오는 내적 유혹. 아무도 이 어두운 세력을 피할 수 없지만 사제는 특히 그럴 수가 없다. 그가 받은 소명과 신적 사명의 성격상 자기 주위에 많은 영혼들을 끌어들이는 공적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주목의 대상이라는 점. 이는 물론 "하느님 없이 사는 자들"의 시각(視角)이다. 그들은 적의를 가지고 사제들을 주시하는 것이다.

-  자칭 착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도 사제는 이해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를 받는 표적(루가 2,34 - 역주)이 된다는 점. 그런 사람들은 바로 그들의 형식주의로 말미암아, 사제는 하느님의 것이 아니라 사탄의 것인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 때문에 사제는 오늘날, 힘찬 내적 생활로 하느님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인간적인 현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느냐 하는 양자 가운데서 그릇된 택일을 할 위험이 큰 것이다.

 

이토록 숱한 악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사제가 만일 인간적인 현실을 택한다면 점차 하느님에 대한 흥미를 잃고 아무 맛도 못 느끼는 상태가 되다가 급기야는 역겨움마저 느끼게 되고, 결국은 하느님을 배반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퇴양난의 궁지인 것이다.

인간적인 현실 속으로 빠져 들어갈수록 그는 점점 더 밑으로 떨어져서 신앙을 잃고 따라서 은총의 생명도 잃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하강(下降)이 타락으로 변질되므로 그는 결정적인 악으로, 따라서 영원한 멸망으로 끌려가고 만다.

그런데, 이토록 위험한 인간적 현실이란 어떤 것이겠느냐?

- (텔레비전, 영화, 신문과 잡지 따위) 위험하고 해로운 이데올로기에 젖은 현대의 사회 전달 수단들. 실상 출판물 대부분에 타락의 독기가 배어 있는 것이다.

- 흔히 여성들과 함께 기거하는 것. 사제도 다른 이들처럼 온갖 격정의 싹을 내부에 지닌 남성이므로, 신앙의 위기로 인한 공허 속에 있을 때면 필연적으로 사제 특유의 격렬한 욕정의 불길에 휩싸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위험을 좋아하는 자는 위험으로 망할 것이다...."(집회 3,26 참조 - 역주)

이 비탈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사제들이 얼마나 많은지! ..... 매우 많은 수의 사제들이 그만큼 많은 수의 영적 죽음의 중심부, 악한 표양과 타락의 중심부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들아, 이토록 숱한 악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목자들은 아무것도,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오, 그들은 자기네 양떼 속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모르지 않건만, 아무것도 모르는 체한다. 아무것도 못 본 체 못 들은 체한다..... 난처한 일을 겪거나, 떠안고 싶지 않은 큰 책임에 말려들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편이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아들아, 그럼에도 이것이 전체적인 면모도 아니다. 너로 하여금 단지 몇 가지만 언뜻 보게 했을 뿐이다. 전체를 다 보여 주면 네가 못 견딜 터이니 말이다!

(1978년 11월 16일 ③)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법에 있어서 대 혼란(1)

 

'법'에 있어서의 대혼란이라고 말했거니와, 과연 이만저만한 혼란이 아니다! 왜냐하면, '법'은 '신앙'에 의거하고 신앙은 '계시'에 의거하므로 계시와 신앙이 위기에 처하면 법도 위기에 처하게 되는 만큼, 법에 있어서의 대혼란은 교리상의 대혼란의 피할 수 없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설명은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나는 네 주 하느님이다. 너는 나 외의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출애 20,3 참조 - 역주)"고 한 첫째 계명으로 일체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차적이고 근본적인 법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겠느냐?

이 법은 법 전체의 기초로서 주어졌다. 법 전체의 기초는 사람에게 당신 자신을 이렇게 내보이시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나 홀로 너희의 하느님이다. 너희는 홀로 나만을 공경하여라. 나 외의 다른 신은 없다. 나 홀로 일차적이고 유일 절대한 '실재'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인간적이고 우주적인 만물이 이 실재로부터 나온다. 그러니 사람은 이 유일한 실재 앞에 엎드려야 한다. 이 유일한 실재에 복종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실재를 피해 달아나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징벌을, 따라서 영벌을 받게 될 무서운 반역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 자체로 가공할 사실이다. 어두운 지옥 세력의 반역의 소산이니, 하느님을 자신의 창조주 주님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인간에게는 끔찍한 운명이 되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하느님만 빼고 모든 것을 신(神)으로 삼았다

 

이 숭고한 실재로부터 당연한 결과로서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이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늘날 이 두려움을 짓밟고 물리친 후 하느님을 제거한 체계화를 도모해 왔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주님께 대한 존경심을 가진 사람은 소수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는 사람들이 흔히 일부러 입밖으로 내뱉거나 고의로 남들에게 가르치거나 칭찬하고 상을 주기까지 하면서 홍수같이 쏟아내는 신성 모독적인 말들을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어떤 기회에도 네게 말한 적이 있지만, 사람들은 하느님만 빼고 모든 것을 신(神)으로 삼았다. 돈, 더없이 추악한 정욕, 과학 따위 모든 것을! 그러니, 아들아, 이것이 대혼란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대혼란이라고 부를 수 있겠느냐?

또 다른 예를 들어 보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출애 20,8 -역주)고 했건만, 사람들이 오늘날 안식일을 어떤 모양으로 거룩하게 지키는지를 너는 알고 있다! 그들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고 특전미사를 생각해 내었다.... 주일(dies Domini).... 이 날은 과연 주님의 날이요,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인데......

 

그러나 이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영과 신앙의 가치, 만물과 만인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께 대한 충성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물질이 하느님을 대신해야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물질이 영보다 우세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주일이면 경기장이 만원이고, 해수욕장이나 산에도 도시처럼 사람들이 붐빈다. 그들은 즐겨야 하는 것이다. 쉬는 것이 아니라, 무슨 수를 쓰든지 재미있게 놀아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주일을 주신 것은 일상적인 일에서 손을 떼고 피곤을 풀며 쉬게 하시려는 것이었고,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그의 품위와 운명과 영원한 참 행복을 잊지 않고 휴식과 기도로 스스로를 성화시키며 하느님을 찬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님의 계획을 물질주의적인 것으로 축소시키는 과정을 통해 빚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의 짧은 메시지가 아니라 여러 권의 책을 쓸 수도 있을 터이니, 다른 말은 덧붙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고의로 죄의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내 교회를 에워싸고 있는 대대적인 공작에 대해서 너에게 했던 말은, 단지 사람들이 핑계를 대며 변명하는 내적이고 외적인 큰 파괴 공작 고유의 측면에 관한 것이었다. 그 쓸데없고 사소롭기까지 한 핑계는 영혼 속에 신앙이 질식된 이들에게만 먹혀들 뿐, 올바르고 위대한 신앙의 통찰력을 가진 이들에게는 도무지 먹혀들 수 없는 것이다. 이 통찰력은 물질과 시간을 초월하여 하느님의 한없는 '빛'에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아들아, 고의로 죄의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제대로) 보지를 못하고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교회의 또 다른 기초 단위인 가정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여기에도 대혼란이 있다. 사람이 위기에 처해 있으니, 한창 해체 과정에 있는 가정에도 위기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날은 가정이 하느님을 거역하는 방향으로 이해되고 수용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교국 국민이 이혼과 낙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에 대한 엄연한 확증이다......

가정이 한창 해체 과정에 있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현대의 가정에서 영성을 앗아 가기에 이른, 참으로 악마적인 계획을 살펴보아라. 영적인 해이로 말미암아 여러 세대 전부터 기도를, 특히 가족이 공동으로 바치는 기도를 소홀히 여기게 된 것이다.

 

어떤 생명도 양분을 받지 못하면 유지될 수가 없다. 은총의 생명도 양분을 받지 못하면 소멸한다.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 신자 가정이 이처럼 되고 말았다. 일단 은총의 생명이 사그라지자 죄가 들어온 것이다. 결혼이 흔히, 너무나 흔히, 쾌락의 방편으로 이해되고 있고, 그러니 모성을 거스르는 죄, 범죄 행위가 저질러지는 것이다....

악의 세력이 그들의 파렴치한 사업을 성취하려고 들어오기 위해서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신문 잡지며 영화나 텔레비전이 나머지 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제 그만 하자.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하느님께서는 어디든지 계시고, 악의 모든 세력보다 더 강하시다.

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보속하여라!

(1978년 11월 16일 ②)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교리상의 대혼란

 

교리상의 대혼란이라고 말했거니와, 과연 이만저만한 혼란이 아니다!

나는 또 너에게 성경의 진리를 부정하거나 잘못 해석하여, 계시된 진리를 개인적으로 자유로이 해석하는 프로테스탄트적 원칙이 이제는 거의 일반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데 대해서 몇 마디 언급한 적도 있다. 그래서 이제는 그리스도인이나 비그리스도인이나 그 머리 수만큼 교사가 있을 지경이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치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오히려 현재의 실정이 아니겠느냐?

 

묵인되고 있는  또 하나의 고약한 원칙은 '계시'를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민족마다 문화 수준에 따라 성격이 다양한 역사적 시기에 부합하는 요구가 있으니, '계시'를 그러한 요구에 맞추어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만 보아도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얼마나 엄청난 혼란을 일으키며 키워 갈 수 있는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영원한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주관적인 진리 - 죄로 말미암아 상처 입고, 그 자신의 격정에 좌지우지되며, 특히 지옥, 곧 거짓의 어두운 세력에 속아넘어가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내맡겨진 진리가 (판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일체가 뒤죽박죽이니....

 

'진리'를 변질시킨 결과에 대해서는 어떤 예증(例證)이나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 일체가 뒤죽박죽이고, 일체가 큰 혼란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실례(實例)를 들어 본다면 얼마든지 많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아담과 하와는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어서 실제로 (세상에) 살지 않았으며 하느님께 불순종의 무서운 죄를 범한 장본인도 아니라는 것,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이 만들어 낸 신화적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것의 결과는 어떤 인간 정신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큰 범위에 걸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사실, (그들을 그렇게 역사 속에서) 싹 지워 버리는 것은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것이다. 즉,

- 지극히 거룩하신 내 어머니의 '동정성'과 '원죄 없으신 잉태'를 부정하고,

- 나의 '신성' 자체를 의문에 붙여서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신성을 부정하면 구원의 성사인 교회도 동시에 부정하게 되고, 성서들을 통해서 참여하게 되는 하느님의 생명인 은총의 신비도 부정하게 된다. 성사들도 기껏해야 상징으로만 받아들이고, 마찬가지로 미사 성제도 상징이라고 일컫게 된다.

 

교리의 붕괴가 진행 중이니 그 내리닫는 속도가 계속 빨라지면서 하느님께서 인류를 위하여 친히 교회에 맡기신 거룩한 위탁물인 '계시'의 유산도 온통 그 추락 속에 휘말려 함께 떨어진다. 이 유산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아무리 감사해도 결코 충분치 않을 만큼 놀라운 선물이건마는!

 

사람마다 자기 자신을 교사라 여기면서 오직 홀로 참되고 위대한 '스승'인 나 예수의 진정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숱한 파멸은 어디서 오는 것이겠느냐? 그 근원은 언제나 같은 것이니, 바로 교만이다!

그런데 교만을 제어하며 굴복시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어루만지며 키운 사람들도 있다...... 그 때문에 신앙의 위기가 온 것이다. 어둠을 뜻하는 이 신앙의 위기는 내적이고 개인적인 사실로 머물러 있지 않고 외부로도 영향을 미쳐 다른 사람들도 말려들게 하는 것이다.

 

실상 성사들의 효과를 믿지 않는 사람은 고해성사를 받으러 가지 않게 되고,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께 직접 고백하면 충분하다고, 그러면 다 해결된다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이른바 "공동체의 고백"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상당한 간격을 두고 고해성사를 받으라고 권고할 지경이 되었다.... 이것이 현실이 되고 말아서, 견진이나 성체성사를 받을 준비를 하던 사람들이 첫 영성체를 하는 날에도 미리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 이 성사들을 받은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몇 년이나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서도 아무 거리낌없이 거룩한 성체를 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느냐? 또 몇 년이고 몇 년이고 고해성사를 받지 않고 지내는 사제들은 얼마나 많겠는냐?

오! 아들아, 이것이야말로 감추어져 있으나 실제적인 상처이다. 그런데 이 죄의 상처들과 다른 많은 악행들 앞에서 사람들은, 공적이건 사적이건 쇄신에 대해 언급한 '공의회' 문헌을 이용하면서 스스로를 변호한다..... 그러니 공의회가 말하는 교회 쇄신을 그런 식으로밖에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이 아니겠느냐?

 

진행되고 있는 교회 파괴 공작

 

새롭게 한다는 것은 다시 만든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수의 사람들이 볼 때, 교회 쇄신은 날마다 체계적으로 일사불란하게 모든 것을 파괴하는 작용이 되고 있다. 이 파괴를 계획하고 창안한 자는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터 있었던 자이다. 이와 같이 내 교회를 파괴하려고 진행되고 있는 공작(工作)이 한 번 더 증명된 것이다. 이 대대적인 공작에 추기경과 주교와 남녀 봉헌자들이 열성을 가지고 가담하고 있다. 그런데 외관상 진실해 보이는 그 열성이 사실은 거짓 열성인 것이다!

 

아들아, 하지만 내가 추기경과 주교와 사제 등에 대해서 말할 때에 그 모두를 일반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여라. 별도로 유보된 사람들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사실, 그 수가 항상 한정되어 있긴 하지만, 착한 사제들과 착한 주교와 추기경들이 없지 않은 것이다!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죄라는 눈사태가 멀리로 치워지도록 기도하고, 보상하여라. 그것이 온 인류를 휩쓸면서 내 성심과 나와 너희의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1978년 11월 6일)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

 

주님, 모든 연옥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특히 전세계로 퍼진 코르나19로 죽은 모든이에게 자비를 베풀어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의 한숨과 기도를 들어주시고, 국민들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지도자들이 회개하여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아멘.

성령의 불길이 한반도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길 기도드립니다. 아멘!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시편1,3) 

♥장한상요셉, 양점상마리아, 장가브리엘,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들 (성인의 통공)♥ 

♥안토니오 비오, 릿다, 미카엘,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성인의 통공) 

미사신청 : 11월 1일~3일, 11월 7일, 11월 9일,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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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kr 관리자 (2020/11/22 0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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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아,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써서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내 교회의 선익을 위해 필요하니 말이다. .........

이제 너에게 강복하마, 아들아. 두려워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받아써라!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을 테니, 걱정일랑은 떨쳐 버려라.

(1976년 12월 1일 ①)

 

이 메시지를 네 동료들에게 전하여라. 그리고 어떤 반응이 일어나건 염려하지 말아라. 씨 뿌리는 착한 사람처럼 네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 가운데서 단 한 톨만 좋은 땅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네 일과 고통이 허사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네 동료들에게는 훌륭한 봉사를, 수많은 고통의 타격에 싸여 있는 나에게는 적으나마 기쁨을 안겨 주게 될 것이니 말이다.

아들아, 네게 강복한다. 나를 사랑하여라!

(1975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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