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 최후의 만찬 (과월절 만찬)

글쓴이 :  예수.kr 관리자님이 2019-04-16 03:58:5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9)
    이 게시글이 좋아요(2) 싫어요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최후의 만찬 (과월절 만찬)]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 (원제 : Il Poema dell'Uome-Dio)]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발을 씻어 준 것을​) 다 끝내셨다. 수건을 치워버리시고, 깨끗한 물로 손을 씻으시고, 옷을 다시 입으신 후 당신 자리로 돌아가셔서 앉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제 너희는 깨끗해졌다. 그러나 모두 깨끗해지지는 않았다. 깨끗해지려는 뜻을 가졌던 사람들만 깨끗해졌다.”

  예수께서 가리옷의 유다를 뚫어지게 바라보시는데, 유다는 못들은 체하며 곁에 있는 마태오에게 그의 아버지가 어떻게 그를 예루살렘에 보내기로 결정하였는지를 설명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이 대화는 비록 대담하지만 마음이 거북할 것이 틀림없는 유다를 침착하게 하는 목적 외에는 쓸데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 번째로 공동의 잔에 포도주를 부으신다. 그것을 드시고 마시게 하신다. 그런 다음 노래를 시작하시고 다른 사람들이 합창을 한다.
  “주께서 내 기도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내게 귀를 기울이시기 때문에 나는 사랑한다. 나는 일평생 하느님께 기도드리겠다. 나는 죽음의 고통에 둘러싸여 있었다.”
  잠깐 쉬셨다가 다시 노래를 시작하신다. 
  “나는 믿음을 가졌었다. 그러므로 말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심한 모욕을 당하였다. 그래서 나는 불안 속에서 말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 라고.”
  예수께서는 유다를 뚫어지게 건너다보신다. 오늘 저녁에는 피곤한 내 예수님의 목소리가 “거룩한 이들의 죽음은 하느님 앞에 값진 것이다.” 라는 말과 “당신은 내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찬미의 제물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는 말을 외치실 때는 다시 힘있게 된다. 다시 한번 잠깐 노래를 끊으셨다가 다시 시작하신다. 
  “만민들아, 모두 주를 찬미하여라. 모든 백성들아, 주를 찬양하여라. 우리 위에 그분의 자비가 확고하여졌고 주의 진리가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이다.” 또 잠깐 쉰 다음 긴 찬가가 시작된다. “주는 선하시고 그분의 자비는 영원히 지속되니 주를 찬양하여라... ”
  가리옷의 유다가 어떻게나 음정이 틀리게 노래하는지 두 번이나 토마가 그 힘있는 바리톤 음성으로 음정을 다시 잡아주려고 뚫어지게 그를 바라다 볼 지경이다. 다른 사도들도 그를 바라다본다. 왜냐하면 보통은 그의 목소리가 음정이 바르고, 다른 것도 그렇지만 그것을 뽐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러나 오늘 저녁은! 그가 음정이 틀리게 노래할 정도로 어떤 귀절들이 그를 불안하게 하고, 또 어떤 귀절들을 강조하시는 예수의 시선도 마찬가지로 그를 당황하게 한다. 그 귀절들 중의 하나는 이렇다.
  “사람을 믿는 것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낫다.” 또 하나는 “떠밀려서 비틀거리고 넘어지려고 하였으나 주께서 나를 붙들어 주셨다”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주께서 하신 일을 이야기하리라.” 그리고 끝으로 내가 말하는 이 두 귀절은 배반자의 목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한다.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되었다” 하는 귀절과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하는 귀절이다.

 
  성시를 노래하는 것을 끝마친 다음 예수께서 어린 양을 자르시는 동안 마태오가 가리옷의 유다에게 “자네 몸이 불편한가?” 하고 묻는다.
  “아니, 가만 놔둬. 내 걱정하지 말고.”
마태오는 어깨를 들썩한다.
  말을 들은 요한이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도 몸이 좋지 않으셔. 예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선생님의 목소리를 병든 사람이나 많이 운 사람의 목소리같이 약하네요.” 그러면서 예수님의 가슴에 기댄 채 예수님을 꼭 껴안는다.
  “선생님은 말씀을 많이 하신 것 뿐이야, 내가 걸음을 많이 걷고 감기가 들린 것처럼 말이야” 하고 유다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그러니까 예수께서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요한에게 말씀하신다. “이제 너는 나를 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내가 피곤한지도 알고 있다...
  어린 양고기는 거의 다 먹었다. 각 잔에서 포도주를 한 모금씩만 마시시고, 반대로 열이 있는 사람처럼 물을 많이 마시며 아주 조금밖에 드시지 않으신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을 시작하신다.
  “내가 방금 한 일을 너희들이 이해하기를 바란다. 나는 제일 높은 사람이 제일 낮은 사람과 같다고 말했고, 또 육체의 음식이 아닌 음식을 너희에게 주겠다고 말하였다. 내가 너희 정신을 위하여 준 음식은 겸손의 음식이다. 너희는 나를 스승과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고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종이 주인보다 더 나을 수 없고 파견된 사람이 파견한 사람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이 일들을 알아듣도록 힘써라. 이것들을 알아듣고 그대로 실천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너희 모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나는 너희를 안다. 내가 누구를 뽑았는지를 안다. 나는 모두에 대해서 똑같이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진리이다. 한편 나에 대하여 쓰인 것은 이루어져야 한다. ‘나와 빵을 먹은 자가 나를 배반하였다.’ 내가 미리 이 일을 일러 주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 너희로 하여금 내게 대하여 의심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이 이루어진 다음에는 너희가 내가 나라는 것을 한층 더 믿게 될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 즉 하늘에 계신 거룩하신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내가 보낼 사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아버지와 같이 있고 너희가 나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는 의식을 끝마치자.”


  예수께서는 다시 공동의 잔에 포도주를 부으신 다음 일어나신다. 당신도 드시고 또 사도들에게도 마시게 하시기 전에 일어나시니 모두가 같이 일어난다. 그리고 아까 불렀던 성시 하나를 다시 부르신다. “나는 믿음을 가졌었고, 그래서 말을 하였다... ”
  그리고 또 하나를 부르시는데 그것은 끝이 없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 끝이 없다! 그 시작과 길이로 보아 나는 그 노래가 시편 제118편에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이렇게 노래부른다. 한 단장(斷章)을 모두가 부른 다음 돌아가며 각자가 한 귀절을 말하고,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한 단장을 노래하고, 이렇게 끝까지 계속한다. 끝에 가서는 그들이 목이 마른 것 같으니 지당하다.

 
  예수께서 앉으신다. 눕지 않으시고 우리처럼 앉은 채로 계시면서 말씀하신다. 
  이제 옛날 의식이 끝났으니 새 의식을 거행하겠다. 나는 너희들에게 사랑의 기적을 약속했다. 지금은 그 기적을 행할 시간이다. 이 때문에 내가 이 과월절을 원하였다. 이제부터는 이것이 영속적인 사랑의 의식으로 먹게 될 제물일 것이다. 사랑하는 내 벗들아, 나는 세상에서 산 내 일생 동안 너희를 사랑하였다. 내 아들들아, 나는 너희를 영원히 계속하려고 사랑하였다. 그리고 끝까지 너희를 사랑하기를 원한다. 이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나는 간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지금 행하는 기적 덕택으로 영원히 결합하여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직 온전한 빵 하나를 드시고 그것을 포도주가 가득한 잔 위에 놓으신다.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바치시고 나서 빵을 쪼개어 열 세 몫으로 만드시고 각 사도에게 주시며 말씀하신다.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나의 몸이다. 떠나는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여라.”
  예수께서는 잔을 주시며 말씀하신다.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너희 죄의 사함을 위하여, 또한 너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흘릴 내 피 속에서 내 피로써 이루어질 새로운 계약의 피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여라
.”


  예수께서는 매우 침울하시다. 일체의 미소, 빛과 빛깔의 흔적이 일체 그분에게서 가시었다. 그분은 벌써 임종하는 이의 얼굴이다. 사도들은 가슴 아파하며 예수를 쳐다본다. 
  예수께서는 “가만히들 있어라. 곧 돌아오마” 하고 말씀하시면서 일어나신다. 예수께서는 열 세째 빵조각과 잔을 드시고 만찬실에서 나가신다.
  “어머니를 찾아 가시는 거야” 하고 요한이 속삭인다.

  그러자 유다 타대오가 “가엾은 여인!” 하고 탄식한다.
  베드로가 가만히 묻는다. “어머니가 알고 계실까?”
  “어머니는 다 아셔. 언제나 다 아셨어.”
  그들은 모두가 죽은 사람 앞에서처럼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한다.
  “그렇지만 자네들은 정말 믿는가? ...” 하고 아직 믿기는 원치 않는 토마가 묻는다.
  “그래 자넨 의심하나? 선생님의 시간이 되었어” 하고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대답한다.
  “오! 나는...” 하고 베드로가 말하려고 한다. 그러나 엿듣고 있던 요한이 “쉬! 선생님이야”하고 말한다.
  예수께서 돌아오신다. 손에는 빈 잔을 들고 계시다. 잔 밑에는 겨우 포도주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샨데리아의 불빛을 받아 정말 피 같다.
  앞에 잔이 놓여 있는 가리옷의 유다는 그 잔을 홀린 듯이 들여다보다가 눈길을 딴 데로 돌린다. 예수께서 그를 살펴보시는데 몸을 떠신다. 예수의 가슴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요한이 그것을 느낀다. 
  “아니! 선생님 떠시네요.” 하고 요한이 부르짖는다.
  “아니다. 나는 열로 인해서 떠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에게 모든 것을 말하였고 모든 것을 주었다. 그 이상 더 줄 수가 없었다. 나 자신을 너희에게 주었다.
  예수께서는 부드러운 손짓을 하신다. 손이 처음에는 합장이 되어 있다가 지금은 떨어져서 벌어지며 그 동안 예수께서는 ‘이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해다오. 이렇게 되었다’ 하고 말씀하시려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신다.
  “너희에게 모든 것을 말했고 모든 것을 주었다. 그리고 되풀이 말한다. 새로운 의식이 행하여졌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여라. 내가 너희 발을 씻은 것은 너희 스승처럼 너희도 겸손하고 순결하기를 배우라고 그렇게 하였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제자들은 스승과 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여라. 너희가 높이 올라갔을 때에도 이것을 기억하여라.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수 없다. 내가 너희 발을 씻어 준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그렇게 하여라. 즉 서로 돕고 서로 존경하고 서로 모범이 되면서 형제같이 서로 사랑하여라. 그리고 깨끗하여라.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을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미워할 원수인 세상에서 이 빵으로 내 제자로 있을 힘을 너희 안에 가지기 위하여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 중 한 사람은 깨끗하지 못하다. 너희 중의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그것으로 내 정신이 매우 어지럽다... 나를 넘겨 줄 사람의 손이 나와 함께 이 식탁 위에 있는데, 내 사랑도 내 몸도 내 피도 내 말도 그를 되돌아오게 하지 못하고, 뉘우치게도 하지 못한다. 나는 그를 위하여도 죽으러 가면서 그를 용서할 것이다.”
  제자들은 무서워 떨며 서로 쳐다본다. 그들은 서로 의심하면서 유심히 살핀다. 베드로는 그의 의심이 모두 되살아나는 가운데 가리옷의 유다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유다 타대오도 갑자기 일어나 마태오 너머로 가리옷의 유다를 본다.
  그러나 가리옷의 유다는 자신만만하다! 그도 타대오를 의심하는 듯이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예수를 똑바로 쳐다보고 웃으면서 묻는다. 
  “혹 제가 그 사람입니까?”
  그는 자기의 정직에 가장 자신만만한 것같이 보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야기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러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몸짓을 되풀이하시며 말씀하신다. 
  “시몬의 유다야, 네가 그 말을 하는구나. 그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고 너다. 나는 네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왜 너 자신을 네가 스스로 책하느냐? 네 안에 있는 훈계자, 네 인간 양심, 하느님 아버지께서 네가 인간답게 행동하라고 주신 양심에게 물어보고, 그 양심이 너를 비난하는지를 알아차려라. 모든 사람보다 네가 먼저 그것을 알 것이다. 그러나 양심이 너를 안심시키면, 농담으로라도 그 말을 하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저주가 되는 그런 말을, 그런 생각을 하느냐?”

  예수께서는 침착하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어떤 학자가 그의 교실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제출된 논문을 증명하듯이 말씀하신다. 마음의 동요가 대단하다. 그러나 예수의 침착으로 그것이 가라앉는다.
  그러나 유다를 가장 의심하는 베드로가 - 아마 타대오도 의심을 하는 모양이지만 가리옷의 유다의 뻔뻔스러운 태도로 마음이 풀어진 만큼 그것이 덜 나타난다 - 요한의 소매를 잡아당긴다. 배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예수께 꼭 붙어 있던 요한이 고개를 돌리자, 베드로는 “그게 누군지 여쭈어보게” 하고 속삭인다.
  요한은 다시 이런 자세로 돌아가서 예수께 입맞춤하기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머리만을 들고 예수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선생님, 그게 누굽니까?”
  그러니까 예수께서도 매우 조용히 그의 머리에 입맞춤하시면서 말씀하신다. “내가 국물에 담근 빵조각을 주는 사람이다.”
  그러시면서 아직 온전하게 남아 있는 빵을 - 성체를 세우시는 데 쓰신 그 빵 나머지 말고 - 집으시어 커다란 한 입거리를 떼어서 큰 접시에 있는 어린 양고기 소스에 담가서 식탁 위로 팔을 뻗으시며 말씀하신다.
  “유다야, 받아라. 네가 이것을 좋아하지.”
  “선생님 고맙습니다. 예, 이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 한 입거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고 먹는다
. 그 동안 요한은 몹시 놀라서 가리옷의 유다가 고소하는 빵을 아귀아귀 먹는 동안 그의 소름끼치는 웃음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게 될 지경이다.
  “됐다! 이제 내가 너를 즐겁게 했으니 가거라” 하고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신다. “여기서는 (이 말은 많은 것을 나타낸다) 모든 것이 끝났으니, 시몬의 유다야, 다른 데 가서 해야 할 일을 빨리 하여라.”
  “선생님께 즉시 복종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게쎄마니로 선생님을 찾아 가겠습니다. 늘 그러신 것처럼 그리로 가시지요?”
  “늘 그러는 것처럼... 그리로 간다... 그래.”

  “저 사람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저 사람 혼자 갑니까?”
  “나는 어린애가 아닐세.” 하고 유다는 겉옷을 입으며 농담조로 말한다.
  “가게 내버려 두어라. 저 사람과 나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안다.”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예, 선생님.” 베드로는 입을 다문다. 어쩌면 동료를 의심하여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손으로 이마를 짚고 곰곰히 생각한다.
  예수께서는 요한을 가슴에 꼭 껴안으시고 그에게로 얼굴을 돌리시어 머리에다 속삭이신다. 
  “지금 당장은 베드로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쓸데없는 소란이나 벌어질 것이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 친구들, 잘 있게” 하고 유다가 인사한다.
  “잘 가거라” 하고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사람 잘 가게” 하고 말한다.
  요한은 머리를 거의 예수의 가슴에 파묻고 속삭인다. “사탄!” 예수만이 그 말을 들으시고 한숨지으신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를 불쌍히 여겨서 중단한다. 만찬의 끝장면은 다른 때에 보여 주겠다.”

 

 

(장면이 계속된다)

 

  몇 분 동안 절대적인 침묵이 흐른다. 
  예수께서는 요한의 금발머리를 기계적으로 쓰다듬으면서 머리를 갸우뚱하고 계시다.
  그러다가 몸을 흔드시며 머리를 드시고는 미소를 지으신다. 그 미소로 제자들은 기운이 다시 살아난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식탁에서 나가서 아버지 둘레에 앉은 아들들처럼 모두 나란히 앉자.”
   그들은 식탁 뒷편에 있던 침대 모양의 자리를 (예수, 요한, 야고보, 베드로, 시몬, 안드레아, 사촌형제 야고보의 자리) 들어 다른 쪽으로 옮겨간다.
  예수께서는 여전히 야고보와 요한 사이의 당신 자리에 앉으신다. 그러나 안드레아가 가리옷의 유다가 남기고 간 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는 “아니다, 거기엔 안된다” 하고 외치신다. 그분의 극도의 조심성도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적인 외침이다. 그런 다음 침착해지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렇게 많은 자리가 필요치 않다. 앉아 있으면서 여기 있는 자리만 가지고도 족하다. 나는 너희들이 아주 가까이 있기를 원한다.”
  제베대오의 야고보가 베드로를 부른다. 
  “여기 앉게. 나는 예수님 발 앞에 이 조그만 걸상에 앉겠네.”
  “하느님의 축복을 받게, 야고보! 난 그 자리를 몹시 원했었네”하고 베드로가 말하며 스승에게로 꼭 기댄다
. 예수께서는 이렇게 요한과 베드로 사이에 꼭 끼여 계시고, 그 발 앞에는 야고보가 있다.
  예수께서는 빙그레 웃으신다. “이전에 한 말이 행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겠구나. 착한 형제들은 서로 사랑한다. 야고보야, 나도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라’하고 말하겠다. 이 행동도 영원하신 분이 잊지 않으실 것이다. 그래서 너는 하늘 나라에서 그것을 얻어 만날 것이다.
  나는 내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너희들도 그것을 보았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자기를 사람의 양식으로 주도록 해 주시는 데에는 내 소원 하나로 충분하였다. 방금 일어난 일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다. 하느님의 벗들에게만 가능한 기적을 그가 행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기적이 크면 클수록 하느님의 이 우정도 더 확실하고 깊다. 이것은 그 형태로나 그 지속과 성질로나 그것이 미치는 범위와 한계로나 있을 수 있는 가장 힘있는 기적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이 기적은 너무도 강력하고 초자연적이고, 교만한 사람으로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을 이해해야 마땅한 것처럼,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적을 것이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업신여길 것이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할 것 같으냐? 그들을 단죄하는 말을 할 것 같으냐? 아니다. 나는 ‘딱하다!’하고 말하겠다.
  그러나 기적이 크면 클수록 그로 인하여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 돌아오는 영광이 더 크다. 하느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아라, 내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이 이것을 원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받았다. 그가 내 눈에 큰 총애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주었다.’ 그리고 여기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가 행한 기적이 무한한 것과 같이 그는 무한한 총애를 받고 있다.’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 하느님께로부터 영광이 돌아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적을 행한 사람에게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영광이 있다. 일체의 영적인 영광은 하느님에게서 와서 그 근원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은 무한하지만 그 성인들의 영광으로 점점 더 증가되고 빛난다. 그렇게 때문에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에 의하여 영광스럽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광도 사람의 아들에 의하여 나타난다고 내가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냈다.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으로 당신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곧 당신 아들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기뻐하여라. 네 자리로 돌아오는 너, 제2위의 신령한 본질! 기뻐하여라, 진흙 속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귀양살이 하다가 다시 올라갈 육체! 그런데 그것은 아담의 낙원이 아니라 네가 집으로 받게 될 아버지의 고귀한 낙원이다. 사람의 입으로 내려진 하느님의 명령에 놀라 태양이 걸음을 멈추었으니 천체들이 사람의 육체의 기적이 올라가 영광스럽게 된 그의 완전한 물질로 아버지 오른편에 자리잡는 것을 보면 그것들 가운데 어떤 일인들 일어나지 않겠느냐? 내 어린 아들들아, 내가 아직 잠깐 동안 너희와 같이 있다. 그런 다음에는 너희가 마치 고아들이 죽은 아버지를 찾듯이 나를 찾을 것이다. 그리고 울면서 그의 이야기를 하며 가서 말없는 그의 무덤을 헛되이 두드릴 것이고, 또 사랑으로 애타게 찾아 나선 너희 마음으로 파란 하늘의 문도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예수님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원합니다. 예수님이 안계시면 이제 세상에는 빛도 없고 기쁨도 사랑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에게 돌려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를 들어가게 내버려 두십시오. 우리는 예수님 계신 곳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갈 수 없다. 나는 유다인들에게도 그 말을 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찾을 것이오. 그러나 내가 가는 곳에 당신들은 가지 못합니다.’ 그 말을 너희에게도 하는 것이다.
  어머니를 생각하여라... 어머니도 내가 가는 곳에 못 가실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떠나 어머니께로 와서 흠 없는 그분의 태에서 예수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침범되지 않은 여인에게서 내 탄생의 빛나는 황홀 속에 세상에 왔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나는 젖이 된 어머니의 사랑으로 길러졌다. 마리아가 하늘에 사시는 완전한 사랑으로 수태한 그의 동정으로써 나를 기르셨기 때문에 나는 순결과 사랑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어머니에 의하여, 어머니께 많은 피로를 겪고 눈물을 흘리게 하면서 컸는데도 말이다... 내가 어머니에게 일찌기 행해진 일이 없는 그런 영웅적인 행위를, 그것에 비하면 유딧과 야헬의 영웅적 행위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그들의 경쟁자와 다투는 보잘 것 없는 여자들의 영웅적 행위 같은 것에 불과하다. 또한 나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어머니를 버려두고, 어머니가 오래 뒤에나 오시게 될 곳으로 간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명령, ‘너희들의 시간이 되었을 때 내게 올 수 있도록 해마다, 달마다, 날마다, 시간마다 거룩하게 되어라’하는 명령은 어머니를 위한 것은 아니다. 어머니에게 모든 은총과 모든 성덕이 있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받으시고 모든 것을 주신 피조물이다. 보탤 것이나 떼어낼 것이 아무것도 없다.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하실 수 있는 것에 대한 지극히 거룩한 증언이시다.
  그러나 너희가 나 있는 곳으로 올 수 있고 너희 예수와 이별하는 슬픔의 고통을 잊을 능력이 너희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하여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그것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사람들은 이것으로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 것이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많이 두었을 때, 무엇을 보고 사람들이 그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알아보겠느냐? 육체의 외양으로보다는 - 왜냐하면 혈족이나 동족의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른 사람과 닮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 오히려 가족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고 그들 사이에 있는 공통적인 사랑으로 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훌륭한 가족은 해체되지 않는다. 그것은 같은 피가 있는데, 그 피는 항상 아버지의 씨에서 오는 피이기 때문이며,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그 피는 죽음조차도 풀지 못하는 끈을 맺어준다. 그래서 내가 너희를 떠난 뒤에도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아들이고, 따라서 내 제자이며. 오직 한 아버지만을 모신 형제 사이라고 알아볼 것이다.”
  “주 예수님, 그런데 어디로 가시는 것입니까?” 하고 베드로가 묻는다.
  “지금 당장은 네가 따라오지 못할 곳으로 간다. 그러나 이 다음에는 네가 나를 따라올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은 못따라갑니까? 저는 선생님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때부터 항상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저는 미련없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생님을 위해 얼마 안되는 제 재산을 버렸는데, 선생님은 제 전부이신 선생님 없이 저만 남겨 놓으시고 가엾은 시몬을 안데리고 가시면. 그것은 선생님 편으로 보아 옳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선생님이 죽음을 향해 가십니까? 좋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갑니다. 같이 저 세상으로 가십시다. 그렇지만 그 전에 저는 선생님을 지킬 것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위해 목숨을 바칠 용의가 있습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지금? 지금은 안된다. 정말 내 말을 잘 들어라.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지금은 아직 초경이다. 이 다음에는 이경이 올 것이고... 다음에는 삼경이 올 것이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네 주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선생님!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선생님 말씀은 다 믿습니다만, 이것만은 믿지 않습니다. 저는 자신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네가 자신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직 너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그런데 조금 있으면 강생하신 하느님이 붙잡힐 것이고 너희는 하느님을 모시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탄이 이미 너희를 둔하게 한 다음 - 네 자신 자체가 사탄의 술책이고 너를 무겁게 하기 위한 짐이다 - 너희를 겁나게 할 것이다. 사탄은 ‘하느님은 없고, 나는 존재한다’ 하는 암시를 줄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너희 정신이 공포로 인하여 무분별하게 되기는 하겠지만 너희는 그대로 이치를 따질 것이고, 그래서 사탄이 순간의 주인이 되면 선은 죽고 악이 행동하며 정신은 쓰러지고 인간적인 것이 승리를 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 때에는 너희들이 적에게 쫓기는 지휘관 없는 병사같이 되어 있어서, 패배자로서의 너희 공포 속에서 승리자 앞에 허리를 굽힐 것이고, 죽지 않기 위하여 쓰러진 영웅을 모른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제발 너희 마음이 불안해지지 않기 바란다. 하느님을 믿고 나를 믿어라. 겉으로 드러나는 모든 것과 반대로 나를 믿어라. 남아 있는 사람이나 도망치는 사람이나 모두 내 자비와 아버지의 자비를 믿어라. 입을 다물고 있는 사람도, 입을 벌려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하고 말하는 사람도 믿어라. 
  내 용서도 믿어라. 그리고 장차 선과 내 가르침에 있어서, 따라서 내 교회 안에서의 너희 행동들이 어떠하던간에 너희에게 하늘에서 같은 자리를 주리라는 것을 믿으라
.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가 많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에게 그 말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려고 먼저 가기 때문이다. 착한 아버지들이 그들의 작은 가족을 딴 데로 데리고 가야할 때에 이렇게 하지 않느냐? 그들은 먼저 가서 집과 세간과 식량을 마련하고는 가장 사랑하는 자녀들을 데리러 온다. 그들은 어린것들이 새 마을에서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고 고통을 당하지 말라고 사랑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도 그와 같이 하고 같은 동기로 그렇게 한다.
  이제 나는 간다. 그리고 하늘의 예루살렘에 각자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해 놓고 다시 와서 너희를 데리고 가서 내가 있는 곳에, 죽음도 슬픔도 눈물도 부르짖음도 굶주림도 고통도 암흑도 불도 없고 다만 빛과 평화와 지복(至福)과 노래 만이 있는 곳에 나와 같이 있게 할 것이다. 오! 뽑힌 열두 명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열두 족장(族長)과 같이 옥좌에 앉을 때, 그리고 지복의 바다 위에 서서 영적인 사랑의 불의 열기 속에서 천사의 무리의 알렐루야가 영원한 화음의 반복이 될 영원한 찬가를 노래할 때에 지극히 높은 하늘에 울려 퍼질 노래 ... 나는 너희들이 나 있는 곳에 있기를 원한다. 그런데 너희들은 내가 어디를 가는지를 알고 그 길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주님! 저희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를 말씀하지 않으시는데, 저희가 주님께로 가고 기다리는 시간을 짧게 하기 위해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하고 토마가 말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너희들은 내가 이 말을 하고 설명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그리고 참말이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던 어떤 사람들이 길로, 내 길로 나아가서 벌써 너희들보다 앞섰다. 오! 길을 잃었다가 내가 양의 우리로 다시 데려온 하느님의 양, 지금 어디 있느냐? 영혼이 다시 살아난 너는 지금 어디 있느냐?”
  “누구 말씀입니까? 누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라자로의 마리아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마리아는 곁에 선생님의 어머니와 함께 있습니다. 마리아를 원하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요안나를 원하십니까? 요안나는 분명히 저택에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원하시면 저희가 부르러 가겠습니다...”
  “아니다. 그 여자들이 아니다. 나는 천국에서나 드러날 그 여자와 ... 포띠나이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여자들은 나를 발견하였고 내 길을 떠나지 않았다. 한 여자에게는 아버지를 참 하느님으로, 성령을 저 개인적인 예배를 하는 레위지파 사람으로 보여 주었다. 자기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던 또 한 여자에게는 내가 이렇게 말하였다. ‘내 이름은 구세주이다. 나는 자기를 구원할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을 구원한다. 나는 타락한 사람들에게 생명과 진리와 순결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찾는 사람이다. 나를 찾는 사람은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두 여자가 다 하느님을 찾아냈다... 나는 너희들에게 강복한다. 유딧보다 더 강하게 된 약하던 하와들... 나는 간다. 너희들이 있는 곳으로 내가 간다... 너희가 나를 위로하는구나... 축복을 받아라!...”
  “주님, 저희들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그러면 그 여자들과 같이 되겠습니다.” 하고  필립보가 말한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아직 모른단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게 되지 못한단 말이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계시는 아버지께서 내가 하는 일을 몸소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느냐? 너희들을 믿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그러나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적어도 내가 하는 일들을 보고 믿어라.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제 아버지께 가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가 이루어 주겠다. 내 이름을 실제 그대로 아는 분은 나와 나를 낳으신 아버지와 우리의 사랑에서 나오신 성령 뿐이다. 그리고 이 이름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사랑을 가지고 내 이름을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고, 청하는 것을 얻는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참된 사랑을 가지기 위하여는 내 계명을 지켜야 한다. 행동이야말로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의 이름으로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또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항상 너희와 함께 계시게 할 것이다. 그분은 사탄과 세상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분이시고, 세상이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도 없는 진리의 성령이시다. 그러나 그분은 너무도 높이 계셔서 업신여김이 그분에게까지 미치지 못할 것이지만, 그분은 지나칠 정도로 관대하시어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이 가난하고 약하더라도 항상 그와 같이 계실 것이다. 그분이 이미 너희와 함께 계시고 멀지 않아 너희 안에 계시겠기 때문에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내가 이미 너희에게 말했듯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그러나 내 나라에 가기 위하여 너희들을 데리러 올 시간이 되기 전에 오겠다. 내가 너희들에게로 돌아오겠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내가 살아 있고 너희들도 살아 있기 때문에 나를 보고 있고, 또 내가 살아 있고 너희들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에 장차 너희가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너희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과연 내 계명을 받아들이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고 하느님을 차지할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안에서 하느님을 뵙겠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여, 내 사랑과 내 지혜와 내 강생한 천주성의 비밀 속에서 나를 알게 하겠다. 비록 약하고 적개심을 가지기까지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들들에게로 나는 이렇게 돌아오겠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약하기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강하게 하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일어나거라’ 하고, ‘밖으로 오너라’ 하고 말하겠다. ‘나를 따라라’하고 말하겠다. ‘내 말을 들어라’ 하고 말하겠다. ‘써라’ 하고 말하겠다... 그런데 너희는 이 사람들 가운데 있을 것이다.”


  “주님, 주님께서는 왜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시지 않으시고 저희에게만 나타내 보이시려고 하십니까?” 하고 유다 타대오가 묻는다.
  “너희는 나를 사랑하고 내 말을 지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그의 안에서 살 것이다. 그런데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고 육체와 세속에 따라서 행동한다. 이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이 나자렛의 예수의 말이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라. 나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와 같이 이렇게 말하면서 이 말들을 한 것은 너희가 진리와 지혜를 완전히 차지하도록 나 자신이 준비시켜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아직 알아듣고 기억하고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위로자이신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그 때에는 너희가 알아들을 것이고, 그분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되새기게 하실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내 평화를 남겨둔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나는 평화를 세상이 주는 것처럼 주지 않고 내가 지금까지 너희에게 준 것 같이도 주지 않는다. 축복받은 사람들에게 주는 축복받은 사람의 축복받은 인사이다. 지금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화는 더 심오한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내 몸과 내 피를 전해 준 것과 마찬가지로 이 작별인사에서 나 자신과 내 평화의 정신을 너희에게 전하여 주는 것은 임박한 싸움에서 너희에게 힘이 남아 있으라고 그러는 것이다. 사탄과 세상이 너희 예수에게 대하여 싸움을 폭발시킬 참이다. 지금은 그들의 시간이다. 나는 평화의 왕이니 너희 안에 평화를, 평화의 정신인 내 정신을 가져라. 너무 버림을 받지 않게 평화를 가져라. 자기 안에 하느님의 평화를 가지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고통을 당하기는 하지만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당한다.
  울지들 말아라. 너희들은 내가 ‘아버지께로 갔다가 다시 오겠다’하고 말하는 것을 분명히 들었다. 만일 너희가 육체에 의한 것 이상으로 나를 사랑하면, 내가 이렇게도 오랫동안 귀양살이를 한 후에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에 기뻐할 것이다. 나는 나보다 더 위대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분에게로 간다. 그것을 당하러 가기 전에 구속자의 모든 고통을 너희에게 말한 것과 같이 이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지금 말한 것은, 모든 것이 이루어졌을 때 너희가 나를 점점 더 믿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불안해 하지 말아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 마음에는 평형이 필요하다... 너희에게 말할 시간이 얼마 없다. 그런데 할 말이 대단히 많다! 내 복음 전파의 종말에 왔는데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고, 아직 할 일이 너무 많이 남은 것 같다. 너희들의 상태로 이 느낌이 더해진다.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느냐! 내가 의무를 소홀히 하였다고 하겠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의 마음이 하도 둔해서 아무 소용도 없었다고 하겠느냐! 내가 의심을 하게 되겠느냐! 아니다. 나는 하느님을 믿고, 내 지극히 사랑하는 벗들인 너희를 그분께 맡긴다. 하느님께서 당신 말씀의 사업을 완성하실 것이다. 나는 인간적인 빛 말고 다른 빛을 가지지 못한 채 죽는 아버지와 같지 않다. 나는 하느님께 바란다. 그래서 너희들에게 필요한 것을 아는 모든 권고가 내 안에 밀려드는 것을 느끼면서도 안심하고 내 운명을 향하여 나아간다. 나는 너희 안에 떨어진 씨앗에 이슬이 내려 모두 싹트게 할 것이며, 그 다음에는 위로자의 태양이 와서 튼튼한 나무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이 세상의 왕이 올 터이지만 나는 그와 아무 상관도 없다. 그리고 구속의 목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었더라면 그가 내게 대하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내가 죽음을 당하도록 순종할 만큼 아버지를 사랑하고 내가 아버지께서 명하신 일을 한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 일어나거라. 그리고 마지막 말을 들어라.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전지(剪枝)하신다. 너희는 이미 내 말로 깨끗하게 되었다. 포도나무와 가지로 계속 있도록 나에게 머물러 있어라. 나도 너희에게 머물러 있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게 결합하여 있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누가 내게서 떨어져 나가면 마른 가지가 되어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나와 결합하여 있지 않으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안에 머물러 있어라. 그리고 내 말을 간직해 두어라. 그러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청하면 너희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더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항상 그만큼 더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너희는 구원하는 사랑 속에 머물러 있어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순종하는 것이 될 것이고, 순종은 서로간의 사랑을 자라게 한다. 내가 한 말을 되풀이해 말한다고 하지 말아라. 나는 너희가 약함을 안다. 그리고 너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 내가 이 말들을 한 것은 내가 너희에게 주기를 원한 기쁨이 너희들에게 있고 또 완전하기 위해서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내 새 계명이다. 너희 각자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서로 사랑하여라. 벗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사람의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너희는 내 벗들이며, 나는 너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고 명하는 것을 행하여라. 내가 이제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데, 너희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너희는 내게 대하여 무엇이든지 안다. 나는 나 자신만을 너희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고 아버지와 위로자도 드러내보였고, 하느님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 주었다. 너희들이 스스로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였다. 내가 너희를 선택한 것은 너희가 백성들한테 가서 너희들 안에, 그리고 복음을 들을 사람들의 마음에 언제까지나 썩지 않는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이고 또 아버지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다 들어 주시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우리를 택하셨으면 왜 배반자를 택하셨습니까? 선생님이 모든 것을 아시면 왜 이런 일을 하셨습니까?’ 하고 말하지 말아라. 또 배반자가 누구일까 하고 생각해보지도 말아라. 그는 사람이 아니고 사탄이다. 나는 이 말을 충실한 벗에게 했고 사랑하는 아들이 그 말을 하게 내버려두었다. 만일 하느님을 영원히 흉내내는 자인 사탄이 죽을 몸을 취하여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마귀들린 자가 예수의 내 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귀들린 자' 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아니고, 그보다 훨씬 더 심하다. 그는 사탄 안에 사라져버렸다.”

  “마귀들을 쫓아내신 선생님이 왜 그를 구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묻는다.
  “너는 네가 그가 아닌가 하고 염려해서 너를 위한 사랑으로 그렇게 물어보느냐? 그런 염려는 하지 말아라.”
  “그럼 저는요?”
  “저는요?”
  “저는요?”
  “입들 다물어라. 나는 그 이름은 대지 않겠다. 내가 자비를 행하니,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그렇지만 선생님은 왜 그를 이기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하실 수가 없었습니까?”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탄이 나를 죽이기 위하여 사람이 되는 것을 막으려면 구속 전에 인류를 전멸시켜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엇을 구속했겠느냐?”
  “말씀해 주십시오. 주님, 말씀해 주세요!” 하고 베드로가 어느새 무릎을 꿇고 마치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것처럼 열광적으로 예수를 흔들면서 말한다. “접니까? 저요?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제가 선생님을 모른다고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이 떨립니다... 오! 만일 제가 그 사람이라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
  “아니다. 요나의 시몬아, 너는 아니다!”
  “왜 ‘베드로’라는 저 이름을 없애셨습니까? 그러면 제가 다시 시몬이 되었단 말씀입니까? 선생님은 그것을 아십니까? 그것을 말씀하시니! ...저로군요! 그렇지만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자네들 말해 보게... 자네들이 말해 보라구... 내가 언제 배반자가 될 수 있었느냐 말이야! ... 시몬... 요한... 말 좀 하라구! ...”
  “베드로야, 베드로야, 베드로야! 내가 너를 시몬이라고 부르는 것은 네가 시몬이었을 때 우리가 처음 만난 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네가 처음 순간부터 항상 신의있었는지를 생각한다. 너는 아니다. 진리인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럼 누구입니까?”
  “그야 가리옷의 유다이지! 자넨 아직 그걸 깨닫지 못했나?” 하고 타대오가 더 참을 수 없어서 외친다.
  “왜 그 말을 진작 안해 줬나? 왜?” 하고 베드로도 외친다.
  “조용히 해라. 그 사람은 사탄이다. 다른 이름이 없다. 어디 가느냐 베드로야?”
  “그 자를 찾으러 갑니다.”
  “즉시 그 겉옷과 그 무기를 내려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너를 내쫓고 저주해야 한다.”
  “안됩니다, 안돼요! 오! 주님! 그렇지만 저는... 그렇지만 저는... 제가 혹 정신착란이라도 일으켰습니까? 오! 오!”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서 방바닥에 엎디어 운다.
  “나는 너희에게 서로 사랑하고 또 용서하라는 계명을 준다. 알아 들었느냐? 세상에는 미움도 있지만, 너희 사이에 사랑만이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너희가 가는 길에서 얼마나 많은 배반자를 만날지 모른다! 그러나 너희는 미워해서 안되고 악을 악으로 갚아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너희를 미워하실 것이다. 너희들보다 내가 먼저 미움을 받았고 배반당하였다. 그렇지만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미워하지 않는다. 세상은 저와 같지 않은 것은 사랑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세상은 너희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면 세상이 너희를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냈기 때문에 너희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미움을 받는 것이다.
  종이 주인보다 더 나을 수가 없다고 너희에게 말하였다. 그들이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들었으면 너희 말도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고 알기를 원치도 않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내 이름 때문에 할 것이다. 내가 와서 그들에게 일러 주지 않았던들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자기 죄를 변명할 길이 없게 되었다. 그들은 내가 한 일들을 보고 내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를 미워했고, 나와 함께 아버지도 미워하였다. 아버지와 나는 사랑과 더불어 일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까닭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하는 말이 씌어 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서 발하는 진리의 성령이신 위로자가 오시면, 그분이 내게 대하여 증언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내게 대하여 증언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낙담하지 말고 분개하지 말라고 그러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쫓아내고, 너희를 죽이는 사람이 그런 짓을 하면서 오히려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할 때가 올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도 나도 알지 못하였다. 이것이 그들의 변명이다. 내가 전에는 이런 말을 지금처럼 부연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희가 갓난아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어머니가 너희를 떠난다. 내가 가는 것이다. 너희는 다른 음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나는 너희가 그 음식을 알기를 원한다.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싸이월드에서 공유하기

예수.kr 관리자 (2019/04/16 04:01:27)
 이 댓글이 좋아요 싫어요
예수께서는 아직 온전한 빵 하나를 드시고 그것을 포도주가 가득한 잔 위에 놓으신다. 예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바치시고 나서 빵을 쪼개어 열 세 몫으로 만드시고 각 사도에게 주시며 말씀하신다.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나의 몸이다. 떠나는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여라.”
  예수께서는 잔을 주시며 말씀하신다.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너희 죄의 사함을 위하여, 또한 너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하여 흘릴 내 피 속에서 내 피로써 이루어질 새로운 계약의 피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여라
.”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마리아사랑넷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19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