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 뒤에 숨은 인간 내면의 전달...범죄도구로까지
이메일이 처음 등장한 국내 영화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듯, 97년 최고 히트작 ‘접속’입니다. 당시 천리안·하이텔· 나우누리가 선점하고 있는 PC통신 시장에 유니텔이 진입하면서 PC통신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메일은 여자 주인공 수현이 남자 주인공 동현에게 채팅으로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을 전하는 수단입니다. 비록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신뢰가 있었습니다.
이 때 한국의 인터넷 인구는 100만명. 최근 한국 인터넷정보센터의 자료를 보니 한국의 인터넷 이용인구가 1640만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이메일 이용자수를 바탕으로 추정한 것인데, 한국인 4명 중 1명이 이메일 주소를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이메일이 처음 등장한 것은 27년 전입니다. 인터넷에 대한 관심이 한창 고조된 1973년, 미국과 영국에선 두 나라를 임시 네트워크로 연결하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이 실험의 연구자였던 ‘랜 캘린락’이라는 사람은 영국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했다 동료들보다 하루 앞서 귀국하면서 아끼던 면도기를 놓고 왔습니다.
국제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아 영국으로 ‘내 면도기를 찾아달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메일이 처음 바다를 건넌 사건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메일이 처음 등장한 건 1982년입니다. 미국이 군사적 이유에서 86년까지 전용회선 접속을 불허하는 바람에 연구자들은 국내 온라인망만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연구자들은 서울대학교 전자계산학과와 한국전자기술연구소를 연결한 네트워크망을 통해 국제전화를 걸어 이메일을 이용했다고 합니다.
접속이 통신에 대한 환상을 심어줬다면 최근 이메일을 소재로 한 대표적 영화 ‘해변으로 가다’는 통신의 맹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PC통신 동호회를 통해 처음 만난 7명의 남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습니다. 2개의 ID를 이용해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는 주인공은 이메일을 살인 예고의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실명을 감춘 채 ‘보내는 이’라는 ID를 이용해 친구들을 농락합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인터넷의 익명성을 여지없이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또한 휴대전화를 중요한 의사소통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심지어 여자 주인공이 살인마의 머리를 치는 ‘둔기’로도 사용합니다.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 역시 발신자 번호를 남기지 않은 채 익명으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도구입니다. ‘즐거운 마지막 여행이 되길 바래’라는 으슥한 살인 예고가 그것입니다.
이메일 탄생 27주년, 군사적 용도에서 애정표현의 메신저로, 이제는 범죄도구로 이용되는 이메일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겪을지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