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우 정

글쓴이 :  구름처럼님이 2004-02-14 00:59:1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69)
첨부파일1 :   david__and__jonadan.jpg (91.5 KB)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Rembrandt. Departing of David and Jonathan. 1642. Oil on panel. The Hermitage, St. Petersburg, Russia


사무엘상 20장에는 사나이들의 깊은 우정을 다룬 아름다운 두 친구의 작별이 장면이 있다. 친구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아버지 사울 왕의 눈을 피해 다윗의 친구 요나단은 에셀 바위 곁에 화살을 쏘아 다윗에게 도망하라고 외친다. 헤어지기 전 그들은 서로 껴안고 입맞추고 울었는데, 다윗이 더욱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1사무 20:41).

요나단의 우정

요나단은 왕자이기에 당연히 가져야 할 자신의 왕국과 권세와, 왕으로서의 지위를 하느님의 택한 사람, 친구 다윗을 위해 포기한다. 또한 이익관계에 있어서 가장 적대시 할 수도 있었던 이 일개 목동의 신변과 안전을 염려하여 아버지 사울이 그를 죽이려 할 때마다 그에게 피할 길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훗날, 광야에서 도피 중인 다윗과의 재회를 가진 요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다윗, 네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야 해, 네가 첫째가 되어야 해, 그리고 나는 네 다음이 될거야."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 지속될 수 있었던 실제적인 이유는 당연히 그의 소유였던 것을 친구를 위해 포기한 요나단의 희생적 삶 때문이었으리라. 유감스럽지만, 이 문제에서 혹은 사소한 자존심으로 인해 무너지는 우정의 예를 우리는 너무나 자주 목도한다.

다윗의 우정

자신을 위해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친구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그를 위한 애도의 시를 지으며, " 나의 형, 요나단, 형 생각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오. 형은 나를 즐겁게 해 주더니. 형의 그 남다른 사랑, 어느 여인의 사랑도 따를 수 없었는데 (2사무1:26)" 라고 목놓아 울부짖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다윗의 시를 훗날 활의 노래, 화살의 노래라고 불렀다. 그러한 시의 제목은 아마도 에셀 바위 옆에 화살을 쏘아 친구의 생명을 구하며, 우정을 지키려 했던 그들을 기리기 위해서였으리라. 다윗은 이후 죽은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어쩌면 또 다른 반역의 중심이 될 수도 있는 무너진 왕가의 왕자 므비보셋을 찾아 그의 식탁에 초대하여 왕자들과 함께 식사하도록 배려하고 잃어버린 그의 자리를 회복시켜준다. 그 친구에 그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불멸의 우정

그러나 아름다운 그들의 우정이 계속 유지되며, 존속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의 단서는 그들이 에셀바위 곁에서 헤어질 때 나누었던 그들의 맹세 속에서 발견되어진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 입맞추며, 눈물을 흘리며 영원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친구와의 작별을 앞두고 이렇게 이야기 한다. "가 보게. 잘 되기를 빌겠네. 우리는 서로 야훼의 이름으로 맹세한 몸이 아닌가! 그러니 야훼께서 자네와 나, 자네 후손과 내 후손 사이에 언제까지나 서 주실 것일세. (1사무 20:42)"

이는 참으로 놀라운 맹세이다. 그들은 그들의 우정을 근거를 그들의 결심이나 감정 위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일상의 사람들과 달리, 그들의 우정을 하느님의 언약 아래 두었다. 우리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함으로 그의 맹세를 배신했던 베드로를 너무나도 잘 안다. 우리 역시도 베드로처럼 여러가지 모습으로 우리의 우정을 치장하지만, 여전히 친구와의 신의를 저 버릴 수 있는 별수 없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와 나 사이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그와 나 사이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우리의 우정은 단순히 지상의 것을 넘어선 천상의, 신적인 차원으로 변모한다. 그것은 우리의 우정이 여러가지 어려운 현실에 의해 위협받을 때 우리로 일어나 친구와의 신의를 지키도록 하는 궁극적인 힘이 된다. 사랑하는 친구가 외로이 홀로 하느님의 진리와 정의와 양심을 외칠 때, 때때로 내 속에 있는 두려움과 비겁함이 나로 물러나 친구 곁에 서지 못하도록 유혹하려 할 때, 그와의 신의를 저 버리려 할 때, 그와 나 사이에 계신 하느님이, 내 가운데 계신 하느님이 나의 비겁과 움추림을 물리치고, 진리를 외치는 사랑하는 친구 곁에 가서 서라고, 신의를 지키도록 말씀하시며, 명령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와의 우정 속에서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보며, "이제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고 나의 친구라 하겠다"고 요한복음 15장에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의 친구 예수는 그의 친구, 제자들을 위하여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그의 목숨을 버린다. 자기를 위하여 목숨을 버린 친구와의 우정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의 친구 제자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국 그들의 우정은 무력함과 비겁함으로 끝나고 만다. 그러나 그들 속에 진리이신 하느님의 성령의 영이 가득했을 때(사도1:8), 그들은 그들 속에 있는 비겁과 움츠림을 박차고 일어나 온 세계로 나아가 자기를 위해 대신 죽은 친구 예수의 이름을 외치며, 예수와의 우정 속에서 그의 친구로 죽어간다.

진정한 우정은 우리의 객기나 자만이나 단순한 자신감으로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며, 비겁하기 때문이다(로마 3:10,23). 그러나 내 속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그와 나 사이에 하느님이 계신다면, 우리는 우리 속의 연약함과 비겁을 뚫고 일어나 내 속에서 명령하시는 성령 하느님의 거룩한 명령을 따라 사랑하는 친구와의 우정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나는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우정이 그와 나 사이에 계신 예수와의 우정 속에서 더 많은 풍성함으로 가득하길 기도한다.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싸이)C공감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마리아사랑넷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17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