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말이 씨 된다"

글쓴이 :  구름처럼님이 2004-02-11 15:46:3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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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YS, Jan, David and Bathsheba, 1562, Oil on wood, 162 x 197 cm, Musée du Louvre, Paris


SALVIATI, Cecchino del, Bathsheba Goes to King David, 1552-5, Fresco, Palazzo Sacchetti, Rome



다윗과 부메랑(2사무12:1-6)

I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격언이 있다. "말이 씨 된다"는 격언도 있다. 이것들은 다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들이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으며, 말 한 마디로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있고 격분시킬 수도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엄청난 현실적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세 치 혀'라고 한다. 세 치 '혀끝'에서 나온 무고(誣告)나 참소(讒訴)가 한 인간의 생사여탈(生死與奪)을 좌우하는 치명적 결정으로 이어진 경우를 어렵잖게 찾아 볼 수 있다. 혀끝에서 떨어지는 '말'은 '씨앗'처럼 사람의 마음 밭에 떨어져 싹을 틔운다고 한다. "말이 씨 된다" 하지 않는가. 그러니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말을 가려서 할 것이다. 특히,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고 상대방의 잘못이나 허물만을 보고 큰소리를 치거나 비난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그것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와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다. 언젠가 내 입술을 떠난 부메랑의 말이 지금쯤 방향을 바꿔 나를 표적물로 삼아 날아오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윗이 던진 부메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II

고대 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는 왕은 다름 아닌 다윗이다. 그러나, 성군(聖君)의 원조(元祖)로 평가되고 있는 다윗 역시 한 인간으로서 여러 가지 허물과 실수를 범했다. 사무엘서에 기록되어 있는 다윗의 행적을 추적해보면 그는 이세(Jesse)의 막내아들로서 본래는 양치기 소년이었다. 그러나, 사울 왕의 눈에 띄어 왕실과 인연을 맺게 되고, 청년시절을 보내면서 사울 왕의 사위가 되고 사울의 경쟁자의 위치에 세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양치기 소년에서 왕이 되기까지의 다윗의 전반부 생애는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오른 승승장군 바로 그것이었다. 왕이 된 그는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행정을 정비하였으며, 상비군(常備軍) 체제를 구축한 후 헷(힛타이트) 사람 우리야를 군사고문관에 임명하기까지 하였다. 참으로 눈부신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 직접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구축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와 같은 성취의 정점(頂點)에 서는 순간 다윗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예전 같으면 봄철이면 영토확장을 위해 직접 전쟁터에 나가 병사들과 함께 지내며 전쟁을 지휘할 텐데 모든 것이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안정되자 그는 왕궁에 머물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순간, 긴장이 풀리고, 이제 남부러울 것 없이 되었다고 스스로 자위하고 만족하며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난 다윗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였던 것이다. 사람이 지나치게 바빠도 건전한 판단을 유지하기 어렵지만 지나치게 한가하여도 마음이 풀어지고 망상에 잠기기 쉬우며 유혹을 받기 쉬운가 보다. 다윗도 그랬다. 그는 바쎄바를 범하고 충직한 신하이자 바쎄바의 남편인 우리야를 억울하게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처럼 상승세를 타던 다윗의 생애는 급격히 내리막길로 치닫기 시작한다.
  
무서운 죄를 범하고도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태연하게 지내는 다윗에게 어느 날 예언자 나단이 나타나 한 비유를 들여준다. 어느 고을에 양과 소가 많은 부자가 손님이 찾아오자 대접하기 위해 이웃에 사는 가난한 사람의 자식같이 여기는 한 마리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하였다고 말을 한다. 그러자 다윗은 그 부자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 분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런 죽일 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  그런 인정머리 없는 짓을 한 놈을 그냥 둘 수는 없다. 그 양 한 마리를 네 배로 갚게 하리라." (2사무12:5-6).

악한 부자가 받아야 할 죽음과 네 배의 보상에 관한 다윗의 이 말을 기점으로 다윗의 생애는 서서히 내리막길로 들어서며 좋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이후 전개되는 다윗 생애의 후반부를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이야기이다. 이 핵심 내용은 '죽음'과 '네 배의 보상'이다. 이 둘을 합하여 하나의 내용으로 뽑아보면 '죽음에 의한 네 배의 보상'이 된다. 다윗은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을 착취한 악하고 부유한 사람에 관한 나단의 비유를 듣고 그 사람은 '죽음에 의한 네 배의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 것이다. 여기서 '네 배의 보상'을 해야 한다고 한 것은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소 한 마리에는 다섯 마리로, 양 한 마리에는 양 네 마리로 갚아야 한다는(출애21:37) 배상법에 따른 것이다. 다윗은 왕권을 이용하여 바쎄바라는 한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고 그의 남편 우리야를 죽음의 구덩이로 몰아넣은 자신의 행위를 나단이 알리 만무하다는 생각에서, 또는 자신의 행위를 더욱 더 깊숙이 은폐시키기 위해서 반대로 더 강하게 비난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또는 왕은 어떤 행동을 해도 부끄럽지 않다는 '제왕무치'(帝王無恥)의 통치철학에서 쉽게 '죽음에 의한 네 배의 보상'을 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생각에서든 간에 다윗의 말은 다 하느님의 뜻에 거슬리는 것이다. 첫 번째 생각에서라면, 그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위이며, 두 번째 생각에서라면 그것은 더없이 사악하고 가증한 행위이며, 세 번째 생각에서라면 그것은 인간을 왕으로 기름 부은 하느님의 주권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다윗이 그 악한 부자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다만, 나단이 비유를 들었을 때 다윗이 취했어야 할 최선의 행동은 얼른 자신의 잘못과 허물을 깨닫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실토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왕으로서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면 그저 묵묵부답하든지, 말꼬리를 돌리든지, 못들은 척하고 다른 말을 꺼내든지 했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만이 아는 일말의 가책에 대한 최소한의 표현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으로 네 배의 보상을 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다윗은 자신이 바로 그 악한 부자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부메랑을 날린 것이다. 이 부메랑이 표적물을 향해 날아가다가 방향을 바꾸어 자신을 향하는 순간 다윗은 스스로 죽음에 의한 네 배의 보상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니……

III

다윗에게 날아온 첫 번째 부메랑은 바쎄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이의 죽음이다. 아이가 몹시 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다윗은 직접 바쎄바 집으로 달려가 아이를 살려달라고 금식기도를 하였으며, 왕궁으로 돌아온 후에도 맨 땅에서 자며 식음을 전폐하였다(2사무12:15b-17). 다윗의 이러한 행동은 그가 얼마나 그 아이를 사랑했는가를 말해준다. 예언자 나단으로부터 무서운 책망과 머지 않아 닥칠 재앙의 예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12:9-12) 다윗이 죽어 가는 아이를 살려달라고 그처럼 하느님께 매달려던 것은 그만큼 마음 고생하면서 얻은 자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나단이 예언한 재앙의 시작을 막아보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윗이 왕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병든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처럼 몸부림쳤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몇 칠 후에 죽고 만다. 이것은 다윗이 스스로 말한 바 '죽음에 의한 네 배의 보상' 중 첫 번 째 보상에 해당한다.
  
다윗에게 날아온 두 번째 부메랑은 자식들간의 살인사건이다. 동생인 압살롬이 배다른 형인 암논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지는데(13:23-33), 이 사건의 발단은 누이동생인 다말을 암논이 병적으로 짝사랑한데서 비롯된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황태자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자 배다른 여동생인 다말을 짝사랑한 나머지 몸이 아프다고 위장하여 다말이 자신의 방으로 문병 오게 한 후 겁탈하고는 버린 사건이 벌어진다(13:1-20). 암논이 누이동생을 범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압살롬은 조금도 분노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매우 침착하게 계획을 세워 암논을 죽여 복수하고 만다(2사무13:23-33). 압살롬이 배다른 형이자 황태자인 암논을 죽인 것은 표면적으로는 짓밟힌 동생의 인생에 대한 복수의 의미를 갖지만 그 심층을 들여다보면 압살롬은 동생의 불행을 이용하여 왕위계승서열 1위에 있는 암논을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세게된다.
  
다윗에게 날아온 세 번 째 부메랑은 압살롬의 죽음이다.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것을,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정당한 복수라는 명분을 갖춘, '왕자의 난'으로 해석한 다윗의 심복 요압장군은 어쩔 수 없이 이제 왕위계승서열 1위는 압살롬이라고 판단하고 드고아의 여인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다윗과 압살롬을 화해시켜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계속되는 불명예스러운 일들로 인해 왕으로서의 다윗의 권위가 실추되고 민심이 이반(離叛)하는 듯 하자 눈치 빠르고 왕이 되려는 야심을 가진 압살롬이 결국 아버지를 향해 반역을 일으킨다. 이로 인해 다윗은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며, 예루살렘을 버리고 요단 동쪽으로 쫓겨가는 신세가 되고, 그리고 마침내 압살롬의 군대와 다윗의 군대가 맞붙어 한 바탕 전투를 치루는 참극이 벌어지는데 결국 압살롬은 요압의 손에 죽고 만다. 다윗은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 위의 다락방에 올라가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에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18:33)라고 울부짖는다.
  
다윗에게 날아온 네 번째 부메랑은 아들 아도니야의 죽음이다. 다윗이 늙고 눈이 어두워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자 왕위계승이 문제가 되는데,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와 바쎄바의 아들 솔로몬 사이에 왕위쟁탈전이 벌어진다. 아도니야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7년 동안 통치할 때(2사무2:11) 낳은 아들이며, 솔로몬은 예루살렘으로 수도를 옮긴 후에 낳은 아들이다. 왕위 계승서열이나 정통성으로 볼 때는 솔로몬보다는 아도니야가 우선이나 결정적인 순간에 예언자 나단의 지원을 받는 바쎄바의 활약으로 솔로몬이 왕위되고 만다. 다윗이 말년에 몸이 차고 건강이 좋지 않자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신하들이 아리따운 수넴 처녀 아비삭을 데리고 자도록 한 적이 있는데, 다윗은 아비삭의 시중은 받았지만 관계를 하지 않아 아비삭은 처녀의 몸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아도나야가 왕위 쟁탈전에서 패한 후 바쎄바를 통해 솔로몬에게 아비삭을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청을 한다. 고대 사회에서 왕의 시중을 들었던 사람을 요구하는 것은 곧 왕권을 요구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아도니야의 요청을 전해들은 솔로몬은 '차리리 임금자리를 달라고 하지 그러느냐'고 분노하며 브나야를 시켜 아도니야를 죽이고 만다.
                                            
IV

다윗이 바쎄바를 범하고도 자신의 허물은 숨긴 채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인 악한 부자에게 서슴없이 "죽어 마땅하고, 네 배로 갚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단순히 '혀의 실수'(a slip of the tongue) 때문이라면 그에게 되돌아온 부메랑은 너무 가혹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혀의 실수'가 아니라 '마음의 거짓'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께 다윗은 자신의 중심을 속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말대로 '말 값'을 치룬 것이다. 자신의 중심을 속이는 것은 곧 중심을 보시는 하느님을 속이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중심을 속이고 타인을 향해 내뱉는 말은 부메랑의 언어가 되어 언젠가는 자신에게 되돌아와 자신을 타격의 표적물로 삼을 것이다. 내게는 한번도 부메랑의 언어가 되돌아온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있는 사람은 명심할 일이다. 지금 그대가 던진 부메랑이 그대를 향해 날아오고 있음을!

  "지혜롭게 되는 데 늦은 시간이란 없다"고 철학자 칸트는 말한 바 있다. 아직 괜찮다고 말하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지금 무릎 꿇고 하느님께 그대의 중심을 보이라. 다윗의 피눈물나는 참회의 시(시51)를 읽으며!

하느님, 선한 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어지신 분이여, 내 죄를 없애 주소서.
허물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잘못을 깨끗이 없애 주소서.
내 죄 내가 알고 있사오며
내 잘못 항상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당신께, 오로지 당신께만 죄를 얻은 몸,
당신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한 이 몸,
벌을 내리신들 할 말이 있으리이까?
당신께서 내리신 선고 천번 만번 옳사옵니다.
이 몸은 죄 중에 태어났고,
모태에 있을 때부터 이미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니
지혜의 심오함을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정화수를 나에게 뿌리소서, 이 몸이 깨끗해지리이다.
나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게 되리이다.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를 들려 주소서.
꺾여진 내 뼈들이 춤을 추리이다.
당신의 눈을 나의 죄에서 돌리시고
내 모든 허물을 없애 주소서.

하느님, 깨끗한 마음을 새로 지어 주시고
꿋꿋한 뜻을 새로 세워 주소서.
당신 앞에서 나를 쫓아 내지 마시고
당신의 거룩한 뜻을 거두지 마소서.
그 구원의 기쁨을 나에게 도로 주시고
변치 않는 마음 내 안에 굳혀 주소서.
죄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리니
빗나갔던 자들이 당신께로 되돌아 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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