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영웅을 지킨 여인

글쓴이 :  구름처럼님이 2004-02-03 16:18:05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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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Paul Rubens, The Meeting of David and Abigail, c. 1630


(1사무 25,1-42)

영웅을 지킨 여인(아비가일의 영성과 지혜)


다윗은 하느님의 눈길로 온 세상을 보았던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모습이 두 얼굴의 사나이처럼 변했습니다. 분노로 치를 떨고, 머리끝까지 악의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칼을 뽑아들고 살기 어린 눈빛으로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나발과 그의 남자들을 다 잡아죽이려고 달려갑니다(13절). 무법 천지인 황무지에서 다윗의 사람들이 나발의 목자들 주위에 있으면서 우연히 그들의 방패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양털깍는 계절에 사람을 보내어 겸손히 자선을 청했다가 모욕을 당한 것이 화근이 되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분노에 사로잡혀 칼을 뽑고 달려가는 사람의 진로를 막아 설 수 있겠습니까? (23절). 한 여인의 아름다운 겸손과 지혜와 영성이 이 일을 이룹니다. 다윗을 분노의 불구덩이에서 건져내고, 그에게서 잃었던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고, 자신의 사명과 하느님의 꿈을 다시 찾아 바라보게 만들어 줍니다. 이 여인이야말로 영웅을 구원한 진정한 영웅입니다.

1. 이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을 느끼라(1사무 25,23-25)

나발은 정치적인 힘의 흐름에 민감합니다. 다윗의 줄을 설 것인가 사울 편에 설 것인가? 요즘 대선후보 아래서의 정치인들처럼 갈등을 했을 것 같습니다. 나발은 인간적인 세력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후원자이며 기름을 부어 주었던 사무엘은 이미 죽었고(1절), 놉땅의 제사장들과 그 족속 전체가 다윗에게 떡 몇 덩이 준 것 때문에 몰살당한 소식을 다른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나발도 다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23장). 이런 상황에서 나발이 보기에 다윗의 편을 드는 것은 희망이 없는 미련한 짓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힘의 흐름을 보기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힘의 구도를 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쓸데없이 과격한 말까지 내뱉게 됩니다. 교만이 화를 자초합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독립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역사의 흐름을 판단하고 자신의 신앙의 양심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아비가일은 하느님의 섭리를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근본도 없는 사람이라고 나발이 멸시했던 다윗을 지극히 존귀한 사람처럼 대했습니다. 자신을 여종처럼 다윗 앞에서 낮추었습니다. 지금 다윗은 왕이 아니고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는 신세임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녀는 부자였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윗 발 앞에 납작 엎드리며 땅에 얼굴을 댔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자기의 남편에 대해서도 사실 그대로 부족한 면을 시인했습니다. 부인으로서 자기의 남편이라고 특별히 편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이 일을 생각하면 이렇게 반응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시각으로 만사를 바라보면 부족한 면은 그대로 자기의 이익과 무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런 아비가일의 하느님 중심의 선택이 나발의 목숨을 당장에 구원한 일이 되었습니다. 진정으로 남편을 위하는 길이 남편의 편만 드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시인하고 겸비해지는 것이 살길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삶의 현실에서 어떤 힘을 더 실제적으로 느끼며 선택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갑니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권세를 두려워해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보다 당신들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겠는지 한번 판단해 보시오. "(사도 4,19).  

2. 사적인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에 힘쓰라 (1사무 25,26-28)

아비가일이 다윗을 결정적으로 바르게 인도한 것은 사적인 복수심과 하느님의 싸움을 구별하게 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사적인 일 때문에 사명감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감정에 사로잡히면 그렇습니다. 자기를 멸시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나발의 미련함이 다윗의 야만성을 자극시켰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무리하게 자기를 죽이려 할 때도, 그에게 하느님의 기름 부으심을 생각하고 생명을 소중히 여겼던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멸시한 그 한 가지만으로 잔인한 살기를 발동하고 칼을 쳐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열심히 잘하다가도 무례한 대접을 받고 기분 나쁘면 다 집어치우기 쉬운 것이 우리 인간들입니다. 사적인 일이 중심이 되고, 자기 감정이 하느님의 일보다 앞서기 쉬운 것이 다윗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영웅 다윗도 그랬는데 우리야 오죽 하겠습니까? 아비가일의 탁월한 점은 다만 하느님의 역사의 진행을 읽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녀의 담대함은 하느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나리께서는 홧김에 기어이 피를 보려고 하시지만 야훼께서 그런 일이 없도록 막아 주셔서 나리께서 손수 원수를 갚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26절).

아비가일의 이 말은 지혜롭고 영적인 통찰력이 있는 말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윗이 친히 피를 흘려 복수를 꿈꾸는 것을 막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을 자기를 통해서 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잘 다스리고 있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사명감 즉 하느님께서 택하신 다윗을 온전하게 인도하는 일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야훼께서 앞장서시는 싸움을 나리께서 싸우셨으니 야훼께서 나리의 집안을 정녕 튼튼히 세워 주실 것입니다. 나리께서는 한평생 어떤 재난도 겪지 않으실 것입니다.“(28절).

그녀는 다윗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다윗 개인의 복수전이 아니라, 하느님의 싸움을 싸우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야훼의 싸움을 싸우기에 다윗을 하느님께서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실 것이라고 언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와 영성이 탁월한 설득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큰 실수를 지적하되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느님의 뜻과 연관시켜 드러냅니다. 다윗의 치졸한 복수심을 하느님의 나라의 거룩한 과업으로 거듭나게 관심을 돌려놓습니다. 이런 경험이 나중에 다윗을 성숙하게 했습니다. 아비가일이 준 이 교훈 세상적인 왕으로 성공뿐 아니라 하느님의 택한 왕으로 성공하기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3. 하느님의 할 일과 자기의 할 일을 분별하라 (1사무 29-31절)

아비가일이 다윗의 마음을 돌릴 수 있었던 아주 중요한 요점의 하나는 하느님의 하실 일과 자신의 할 일을 분별하게 해준 것에 있습니다. 아비가일의 놀라운 믿음의 특징은 보복을 하느님의 몫으로 돌린 점입니다.

“나리를 쫓아 다니며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 하여도 나리의 하느님 야훼께서 나리 목숨을 보물처럼 감싸 주시고 그 대신 원수의 목숨은 팔매돌처럼 팽개치실 것입니다.“(29절).

하느님께서 다윗의 생명과 명예를 보자기로 싸서 지켜 주시는데, 나발의 미련한 행동에 왜 격분하고 마치 회복해야 할 만큼 무슨 큰 손실이나 당한 것처럼 날뛰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의 보자기에 싸여있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명예는 하느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야훼께서 약속하신 온갖 복된 일을 이루시어 나리를 이스라엘의 수령으로 세우실 터인데, 이런 실수를 해서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손수 원수를 갚느라고 공연히 피 흘리는 일은 없도록 하십시오. 야훼께서 나리의 운을 터 주시는 날 이 계집종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30-31절).

다윗은 지난 시간의 분노에 사로잡혀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약속하신 명예로운 미래를 망각하고 경고 망동했습니다. 오히려 아비가일은 다윗의 먼 장래의 일들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하느님의 언약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알았습니다. 아비가일은 사람이 무엇에 초점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나중에 하느님께서 축복하실 때 후회하지 않을지 알았습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주어라. 그것은 그의 얼굴에 모닥불을 피워 주는 셈이니, 야훼께서 너에게 갚아 주시리라."(잠언 25,21-22). 하느님께서 주실 영광스런 미래를 바라보고 그 시점에서 오늘을 바라보아야지 당장의 복수심에 초점을 맞추면 영광스런 미래가 비극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만약 다윗이 여기서 복수를 행했다면 다윗의 무리는 조직폭력배나 다를 바 없는 범죄 조직으로 백성들 사이에 인식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실 그 일을 친히 내 손으로 복수하려고 하는 것처럼 나중에 존귀하게 된 후에 후회되는 일이 없을 것을 아비가일은 알았습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정확한 표현을 하였습니다. “복수를 꿈꾸는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아물지 못하게 한다.” 아니 만약 다윗이 여기서 복수를 결행했다면 그는 결코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인정해줄 리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도 사울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듯이 다윗을 멸하셨을지 모릅니다. 이 아비가일의 충고는 대단히 중요한 시야를 다윗에게 열어주었습니다. 나중에 다윗은 자기의 원수였지만, 사울 왕의 죽음을 깊이 애도함으로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게 됩니다. 백성의 마음을 사게 되는 것이 원수를 사랑으로 갚았기 때문입니다.  

결론

미련하고 악한 사람들이 들끓는 이 세상에 살다보면 누구나 다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의 길에서 탈선할 위기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거룩한 사랑을 잃어버리면 비참해 집니다. 우리를 불끈하게 하는 일을 당하면 의분으로 무장하고 스스로 하느님이나 되는 것처럼 심판자리로 올라가기 마련입니다. 다윗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윗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여전히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한 여인의 영적이며 지혜로운 시각 때문입니다. 만약 아비가일을 하느님께서 다윗을 위해 보내시지 않았다면 다윗의 무리는 포악한 잡배들로 전락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쓰시려고 이렇게 한 여인의 신앙을 통해 지켜 주신 것입니다. 한 여인의 외모와 내면의 아름다움이 그 사람 다윗 속에 있는 분노와 복수심을 다스리시게 한 것입니다. 거룩한 아름다움은 칼날 보다 힘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순수하게 만듭니다. 복수심에 갇혀 있던 영웅의 마음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을 다시 깨닫게 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이 여인의 용기와 지혜로 회복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보자기에 하느님과 함께 싸여있는 존재로서의 당당함을 되찾게 해줍니다. 힘도 없고, 정치적 지위도 없고, 칼도 잡을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 이런 강력한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이런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하느님의 역사는 이렇게 신앙과 지혜가 있는 사람을 통해 진행됩니다. 부디 하느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 위해 세상 사람들의 힘보다 하느님의 힘을 느끼며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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