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잃은 이들 - 부활 제5주간 월요일

서하.님 2025-05-19 10:17 ... 조회(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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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간 월요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 ?(요한 14.21)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신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이 아버지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눈을 감고 떠올려 보았습니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한 14, 24)

 

예수님은 아버지와 하나였습니다.

이 깊은 일치는 예수님의 말과 행동을 이끄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이나 종교 전통에 얽매이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마음과 뜻에 온전히 일치되어

선포해야 할 말씀을 선포하시고,

살려야 할 사람을 살리며, 고쳐야 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 죄인이라 불리는 이들과 함께 식탁을 나누신 그 모든 순간은

아버지께 대한 사랑의 응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길이시기에

나는 그분을 통해 아버지께 가고자 합니다.

삼위일체의 친교 안에 깊이 머물게 될 때,

나도 움직이게 되겠지요.

세상의 이목이ㅣ나 손익을 따지지 않고

해야 할 말을 하고,

피하고 싶은 일도 감당할 수 있으며,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절제하고

그 여유를 가난한 이들과 나누며,

나의 시간과 마음을 다른 이들에게 내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욕구를 잠시 내려놓고, 내 뜻을 접을 수 있겠지요.

심지어 그것이 죽음의 길이라 해도,

그 길이 사랑의 길이라면 따를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했던 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마더 데레사에게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

소화 데레사에게는 작고 평범한 일상 안에서,

돈 보스코에게는 버려진 아이들 안에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지금 내가

내 곁의 이웃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내 입술이 고백하는 '사랑'의 진실성을 되묻게 됩니다.

내가 삼위일체 친교를 정말로 체험하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겠습니다.

 

이웃에게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십자가 앞에서 미소 지으며 사랑을 고백한다면

그 고백은 감상에 젖은 말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 배운 사랑은

감상적인 말이 아니라

가까이 머무는 것

기꺼이 함께 고통받는 것,

함께 살아내는 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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