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에 -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기념일

서하. 2025/12/03 오후 01:29 (190)
이 게시글이 좋아요(1) 싫어요

내 곁에

배고파도

떠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리

그분 곁

말 못 하는 이가 말하게 되고,

걸을 수 없는 이가 걷게 되고,

보지 못하는 이가 보게 되는 자리.

빵보다 더 깊은 충만

‘배고픔’을 잊을 만큼

내 존재가 다시 살아나는 자리.

사흘 —

하느님이 일하시는 시간.

나는 그 사흘을

그분 곁에 머물렀네.

그리고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

굶겨서 보내기 싫다는

그분의 마음이

내 배도 살피시는구나.

다시 기다림

기다림은

내가 가진 작은 것을

그분 손에 올려놓는 일

그리고 그분 손에 올려진 것이

‘충만함’으로 바뀌는 놀라움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

by 서하


여 백 - 시의 뒤편에 남겨 둔 작은 공간에서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길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 그들을 굶겨서 돌려보내고 싶지 않다.

마태오 15장 32절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저는 32절 말씀에 좀 오래 머물렀습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이 한 문장 안에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사흘 동안 당신 곁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그 시선.

그들이 배고프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배고픔 보다 먼저, '당신 곁에 있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보고 계신 분.

저는 이 시를 쓰며

그 군중 속 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사흘 동안 그분 곁에 있으면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말 못 하는 이가 말하게 되고, 걷지 못하는 이가 걷게 되는 장면들.

그 기적들 속에서 어느새 나 자신의 배고픔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흘"이라는 시간이 특별했습니다.

요나의 사흘, 예수님 부활의 사흘.

하느님이 일하시는 시간은 언제나 '사흘'이었습니다.

군중도, 나도, 그 거룩한 시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제 돌아가야 할 그들을 "굶겨서 보내기 싫다"라고 하십니다.

영혼만 배불리 채우신 것이 아니라, 몸의 배고픔까지 살피시는 분.

이 구체성이 저를 울렸습니다.

마지막 연은 오병이어 기적을 묵상하며 쓴 것입니다.

기적은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그분 손에 올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충만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 그것이 바로 기다림이고, 믿음이고,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곁에"라는 제목은 이중적입니다.

군중이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동시에 예수님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 상호적 현존 안에서 기적은 일어납니다.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목록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 마리아사랑넷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6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