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저는 32절 말씀에 좀 오래 머물렀습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이 한 문장 안에 모든 것이 있었습니다.
사흘 동안 당신 곁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그 시선.
그들이 배고프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배고픔 보다 먼저, '당신 곁에 있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을 보고 계신 분.
저는 이 시를 쓰며
그 군중 속 한 사람이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사흘 동안 그분 곁에 있으면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말 못 하는 이가 말하게 되고, 걷지 못하는 이가 걷게 되는 장면들.
그 기적들 속에서 어느새 나 자신의 배고픔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사흘"이라는 시간이 특별했습니다.
요나의 사흘, 예수님 부활의 사흘.
하느님이 일하시는 시간은 언제나 '사흘'이었습니다.
군중도, 나도, 그 거룩한 시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제 돌아가야 할 그들을 "굶겨서 보내기 싫다"라고 하십니다.
영혼만 배불리 채우신 것이 아니라, 몸의 배고픔까지 살피시는 분.
이 구체성이 저를 울렸습니다.
마지막 연은 오병이어 기적을 묵상하며 쓴 것입니다.
기적은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그분 손에 올려놓을 때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충만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 — 그것이 바로 기다림이고, 믿음이고,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곁에"라는 제목은 이중적입니다.
군중이 예수님 곁에 있었지만, 동시에 예수님도 우리 곁에 계십니다.
그 상호적 현존 안에서 기적은 일어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