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기억의 저편으로… / 수필

글쓴이 :  하늘의 시민님이 2015-07-15 14:27:29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86)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기억의 저편으로…

                                                                                                  강헌모

 

35년전으로 돌아가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본다.

가세가 기울어지자 우리집은 보은에서 청주로 이사 나와서 송정동이라는 곳에 머물게 되었다. 거기서 어느정도 살다가 복대동으로 이사 나왔다. 그때는 내가 고등학교를 마칠때인 1980년도이다. 졸업을 했으니 하숙집에서 짐을 싣고 청주로 오게 되었다. 충남대학교를 지원했지만 합격에 실패했다. 그래서 80년에 대학을 가지 못하고, 1년 뒤에 충북대학교 공과대학을 지망해서 들어갔다. 내 딴에는 서강대학교나 경희대학을 가려고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때 중간정도의 성적이어서 그런 학교에 가기는 좀 무리일 것 같았지만 하고자 하는 열성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서울로 갔을텐데 아쉽게 되었다. 중간정도밖에 못한 것이 아파서라면 핑계일까?

1년을 집에 있다보니 그냥 놀다시피하다 예비고사를 봤는데, 340점 만점에 202점을 받고 대학 발표날에 학교가서 게시판을 보니 내 이름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충북에서 제일 좋다는 충북대학교에 들어가자는 심산이었다. 학과니, 전망이니. 그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학교만 보고 들어갔다. 나는 이공계에 들어갔지만 수학과 관련된 과목들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차라리 철학이나 영어같은 과목이 공부하기에 수월했다. 고등학교때 수학시간에 다른과목의 책을 본 기억이 나는 것 같다. 언제부터 수학을 하기 싫었는지 알 수 없다. 희미한 기억으로 아마 중3때부터 이미 수학에 흥미를 잃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그냥 예비고사에서 넉넉한 점수를 받지 못했으니 충북대 아무과라도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40만 3천원 내고 입학했다. 즐겁지도 않았고, 학교를 왔다갔다하고 이 강의실 저 강의실 들락날락 거린것하고 대학의 큰 도서관에 몇 번 갔던 것들 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다.

우리집은 식당하나와 단칸방에서 살았다. 대학을 다니는데 신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대학생’ 이란 말처럼 가방만 들고 왔다갔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집안 형편이 안좋아서 또는 내가 패기가 없어서인지 모르겠다.

대학생활에서 좀처럼 재미있던 기억이 없지만, 그나마 봐줄만했던 것은 공설운동장에서 전국체육대회 티켓을 따기 위해 청주대학교와 우리학교의 축구 경기를 재미나게 본 일이었고, 오리엔데이션날인가, 마치고서인가. 우리과의 애들이 중국집에 가서 음식을 먹었는데, 어떤 남자애가 나 보라는 듯이 2홉들이 소주 한 병을 따서 입에서 한번도 떼지 않고 그대로 들이켜댔다. 마시고 나서는 안주도 먹지 않고 입만 한번 싹 닦더라. 그것을 쳐다보는 애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스릴있다고 좋아라 날뛰였을까. 놀랍다고 생각했을까. 왜 저래 했을까.

그러고 나와같이 다녔던 남자 3명하고만 그럭저럭 같이 다니고 했다. 그들은 어려울 때 나를 도와 주었고, 그들중에 한명의 시골집에 가서 지냈던 일도 떠오른다. 그애들이 세월이 지나 내 결혼식에 온 기억등 뿐이었다.

군대갈 때가 되어 나는 그 학교를 다니다 말고 입대했다. 군대를 어렵게 제대하고 대구로 내려갔다. 집이 대구로 이사갔기에 그렇다. 대구에서도 우리집은 또 식당을 했다.거기서 있다가 공무원시험 본다고 공부를 하곤 했었다. 서울에 가서 어느 학교의 고사장에 가서 법원서기보에 응시했다. 아버지께서 동행해 주셨다. 아버지는 시험끝날때까지 밖에서 기다리셨다가 마치고서 점심을 함께 먹은 기억을 하고 있다. 나는 시험을 치루고 나서 합격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잘 보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그래서 다시 공부해서 이듬해 시험을 보았으나 마찬가지로 되지 않았다. 된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뿐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고, 되려면 만점을 받든가 그에 아주 근접한 점수여야 어느정도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험문제는 숫자만 빼놓고 다 한자로 된 것이지만 읽어 내려가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후 청주 3공단에 있는 롯데햄이라는 곳에 들어가 일하면서 지방공무원 시험을 치루어서 다니고 있는 중이다. 재직하면서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중간고사와 학기말 시험을 치루려면 충북대학교를 가야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출석수업도 들어야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공부를 못해서 짧지않은 기간을 질리고 질리도록 다녀 졸업을 했다. 후회는 하지 않지만, 젊다고 할 수 있는 시절을 공부로 허비했다는 생각을 하면 서글퍼진다. 그래서 나는 학번이 3개나 되는 사람이다. 일반공학, 법학, 행정학 해서 나는 학력에 자신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 학과들은 내 마음에 드는 학과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20대의 생각과 50대의 생각의 차이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것도 학교라고? 공부라고? 하느냐!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할 말을 잃을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동문들이 있을테니 말이다. 잘못하면 욕먹기 안성맞춤일테고.

내가 다니다 만 학교를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막내딸이 들어갈 수 있을까? 요즈음은 충북대학교에 입학하기도 만만치 않다. 중요한일이란 학과를 잘 선택해야 할 일이다.

 

2015. 7. 15. 씀.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구글+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마리아사랑넷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2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