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어느 복음서가 맞는 건가요?

글쓴이 :  은총댁님이 2019-01-05 08:55:34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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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복음서가 맞는 건가요? 

 

1. 마태 27,44 :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2. 마르 15,32 :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3. 루카 23,39-43 :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 않느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3개의 복음 중 루카만이 두 명의 죄수 중 한 죄수는 예수님을 칭송하였습니다. 그런데 마태오와 마르코는 두 죄수 모두 예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어느 복음서가 맞는 건가요? 

 

+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성경은 많은 부분 형제님께서 궁금하시는 내용과 비슷한 내용들이 아주 많습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창세기부터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이야기가 하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창세기 1장과 창세기 2장의 창조 이야기는 서로 다른 창조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창조 이야기가 맞는 걸까요? 

 

사실 성경에 관한 질문은 맞고 틀리고를 묻는다면 성경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찾아내실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이해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특별하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있는데 그러한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발견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실에 입각해서 변하지 않는, 또는 변할 수 없는 어떤 한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 각도에서 재조명하고 자기가 발견한 어떤 내용들을 가지고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고 이해하시면 좋으실 것입니다. 

 

사실 열왕기와 역대기는 같은 내용을 가지고 어느 부분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부분도 있곤 합니다. 왜 그러한 충돌이 일어날까요? 성경 저자들에게 있어서 하느님에 관하여 변하지 않는, 또는 변할 수 없는 진리는 그대로 두고 소위 곁가지는 자신의 생각 등을 넣어 손질했다고 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설명드리면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바다에 코끼리 상을 한 바위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코끼리 모양을 한 바위도 보는 방향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위는 단 하나입니니다. 그러나 그 바위를 동쪽에서 봤을 때와 서쪽에서 봤을 때,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 봤을 때의 그 바위 모습들은 정말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성경 저자들이 성경을 쓴 어떤 내용도 이와 비슷하게 이해해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성경 저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바다에 있는 코끼리 모양을 한 바위가 주제입니다. 그 주제는 변할 수도 없고 변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건이 바로 바다에 있는 어떤 코끼리 모양의 바위라고 보시면 되고, 각 복음사가들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그 바위를 보고 자기가 본 어떤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다고 이해해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바다에 서 있는 어떤 바위는 사실이고 진실이고 변하지 않는 어떤 예수님의 행적들이라면, 각 복음서 저자들은 자신이 서 있는 방향에서 그 바위를 보고 복음서를 썼다고 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복음서가 맞는 것이냐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성경 저자가 왜 한 사건을 가지고 이런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 그 이야기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자 하시는지를 묵상하고 발견해 나가시는 것이 성경을 잘 일고, 잘 묵상하는 길이라는 점입니다. 이해에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해에 도움이 되시라고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서 각주 한 곳을 발췌해 드리겠습니다. 

 

발췌시작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아홉 시(이스라엘 시간 3시)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고, 열두 시(이스라엘 시간 6시)부터 온 땅이 어두워지고, 오후 세 시(이스라엘 시간 9시)에 예수님은 돌아가셨다. 이처럼 세 시간마다 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서술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경륜에 따라 수난하고 운명하셨다는 점을 강조하려를 것이다. 요한 19,14에 의하면 열두 시경에 빌라도가 사형을 언도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역사적 신빙성이 있겠다. 두 강도 가운데 하나는 예수를 모욕하고 또 하나는 그분을 변호했다고 루카는 고쳤다(23,39-43)."● 발췌 끝.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오랜 시간 공부가 필요합니다. 왜 교회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서 충돌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분명히 아시면서도 4복음서를 정경으로 인정하셨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먼저 물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이 성령의 감도로 쓰여진 책이라면 형제님처럼 서로 충돌하는 내용을 가지고 어느 것이 맞는 것이냐고 분명 물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왜 우리에게 4복음서를 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은총의 풍부함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주시고자 하시는 풍성한 은총을 우리에게 모두 전달해 주시기 위해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4복음서가 서로 충돌하는 내용을 전한다고 해서 복음서 저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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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댁 (2019/01/05 18: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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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예수님!

우리가 소공동체 등을 통해서 성경 묵상 나눔을 할 때에 보시면, 같은 구절을 가지고도 각 사람마다 다양한 묵상을 나눔을 하고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다양한 나눔을 우리는 누구 것은 맞고 누구 것은 틀렸다 하지 않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이해해 보실 수도 있으십니다. 같은 예수님의 복음을 읽으면서도 그것을 읽고 묵상하고 나누는 내용은 모두 다릅니다.

아무튼 각 복음서 저자는 자신이 속해 있는 공동체에 꼭 필요한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기 위해서 성령의 감도로 각 복음서를 저술했다는 점을 이해하시면 좋으실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요즘 시대처럼 뉴스를 전하는 스타일로 복음서를 쓰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양데레사모바일에서 올림 (2019/01/06 06:2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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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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