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부활 제5주일-서로 사랑하여라-신 대원 신부

글쓴이 :  산내들.님이 2019-05-25 13:59:1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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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여라."

부활 제5주일이며 4월 마지막 주일이다. 어떤 시인은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자연에는 한없는 풍요로움이 시작되는 달이지만, 물질에 점점 노예가 되고 정신마저 황폐해져 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아니겠는가?

산과 들의 생명 있는 온갖 것들이 하느님 은총에 힘입어 날마다 푸른빛을 더해 간다. 하지만 '꽃보다 아름답다'는 우리네 인간은 생명의 빛을 점점 잃어가고 어느덧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못된 욕심의 그물에 갇혀 노예로 전락해 가고 있다. '아생연후살타'는 약점을 살피지 않고 무모하게 상대의 돌을 공격하다가는 오히려 해를 입는다는 바둑 격언이다. 그러고 보면 4월이 잔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못된 심보가 점점 잔인해져 가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잔인함은 무자비한 것이다. 무자비함은 인정도 사정도 없다는 뜻이다. 인정과 사정이 없다면 거기에는 일말의 믿음도 없게 된다. 믿음이 없다면 사랑도 없을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정의와 평화도 없다. 정의와 평화가 없다면 희망도 없어지게 된다. 결국 믿음과 사랑과 희망이 없어져 가는 곳엔 잔인함만 남게 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점점 잔인하게 돼가고 마침내 황폐해져 갈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신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부활이시고 생명이시고 희망이신 분이 점점 잔악해져 가는 사람들에게 건네시는 새 계명은 곧 '사랑'이다. 흔히 인간이 만든 수많은 언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말이 있다면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상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이나 또는 그런 관계나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마음을 베푸는 일'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정의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물만 좋아하고 아낄 뿐, 여전히 잔인함이나 무자비함 등을 극복해낼 수는 없다. 좋아하거나 아낌이 없는 사각지대에는 여전히 무자비한 어둠이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건네주시는 "서로 사랑하여라"는 계명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사랑이란 무엇인가? 주님께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3 이하)라고 하시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2,34)하고 이르신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에 관한 정의에 대해서는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1서에서 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사랑은 불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기뻐합니다"(1코린 13,6).

요즘 사람은 흔히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고 말한다. 불꽃처럼 타오르다가 곧 사그라지고 말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사랑은 인간이 만들어 낸 언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말이 아니라 가장 어설프고 추잡스런 언어유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실 사랑은 영원해야 하며, 그것이 하느님과 인간 관계는 물론이고 남녀 관계에서도 영원해야 한다. 영원하지 않다면 더는 사랑이 아니다. 사람들은 욕심에 의해 마음이 굳어져 가고 정신이 황폐해져가고 있는 것을 두고 '사랑은 영원하지 않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하다. 왜냐하면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느님이 곧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 안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1요한 4,16-17)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순간 그 사랑의 약속은 절대로 깨어지지 않고 영원하게 된다. 다만 깨어지고 부러지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의 나약한 마음이다. 그의 양심은 나약하고 못된 욕심 때문에 가려져 버리고 무뎌버렸을 따름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오히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낸다(1요한 4,18).

지금 우리는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참된 사랑을 모른다. 사랑을 말하면서도 사랑의 삶을 살기를 주저한다. 그래서 날마다 늘어나는 것은 이기적 욕심과 질투, 시기, 증오, 교만 같은 못된 마음이다. 이는 물질주의와 황금만능주의, 학벌과 재벌과 권력과 명예를 사랑보다 더 중시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결국 사랑을 모르니 믿음이 사라진다. 믿음이 사라져가니 희망은 점점 절망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랑의 자리에 전쟁, 불신, 불목 등이 자리하게 되니, 참된 의미의 정의와 평화는 퇴색된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궁극적 행복을 찾아내기란 점점 어려워진다. 사랑이시면서 사랑을 위해 돌아가시고 사랑으로 부활하신 분이 건네주신 그 사랑을 회복하는 길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길이다.

그 사랑의 길을 우선 그분을 믿는 이들이 먼저 살아야 한다. 사랑의 삶이야말로 이 땅에서 참으로 부활을 사는 삶이다.


말씀자료 : -신 대원 신부- [편집 : 원근식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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