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부활 제2주일/예수 부활은 신화인가/배 광하 신부

글쓴이 :  산내들.님이 2019-04-27 06:55:0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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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예수부활은 신화(神話)인가?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에서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에서의 믿음의 의미는 전혀 다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앞 문장에서 사용한 믿음의 의미는 사실 믿음이라기보다는 단지 ‘사실을 인정하는 행위’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토마스 사도처럼 실제로 못 자국이 있는 예수님의 손바닥과 상처 난 옆구리를 눈으로 직접 보고서 부활하신 주님을 확인한 경우에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확인’하였거나 ‘알아차린’것이라고 할 수 있을 따름이지, 결코 믿게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식의 결과일 뿐이지 믿음의 결과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에서의 믿음이란 진정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의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때의 믿음은 감각과 지각의 영역을 넘어선 순수한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이때의 부활은 순수한 믿음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쩌면 오늘날 주님께서 오감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지 않으시는 까닭은 우리가 진정한 믿음으로써 당신을 알아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곧, 우리 눈앞에 당신이 나타나시거나 실제로 당신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이미 믿음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인식의 대상으로밖에 주님을 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진정한 믿음을 통하여 당신을 알아볼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지 않고도 주님을 알아보는 사람이 행복한 것입니다.


지상에서 부활을 살자


▶ 인간의 한계

과학자들은 우주를 ‘소우주’와 ‘대우주’로 나눈다고 합니다. 소우주에 관하여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모든 물질의 기본 단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노력한 이래 현대의 과학자들이 분자, 원자, 소립자를 비롯하여 ‘쿼크’와 ‘렙톤’ 까지를 발견합니다.

이 렙톤을 1mm 세우기 위해서는 1초에 10개씩 하루 종일 세운다 하더라도 무려 317만 년이나 걸린다고 합니다. 때문에 소우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어떻게 이 작은 것들이 생겨났으며, 이것들이 어떻게 적당히 어우러져 이 세상을 이루는지 경이로움을 넘어 두려움마저 든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의 몸도 풀 수 없는 신비 덩어리입니다.

대우주인 은하계 역시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신비입니다. 현재까지 천문학이 발견한 우주의 범위를 ‘초초 은하단’이라고 천문학에서는 부릅니다.

그런데 이 초초 은하단 안에 있는 별의 숫자를 다 헤아리자면 1초에 100개씩 셀 수 있는 컴퓨터로 24시간 쉬지 않고 세어도 약 2조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로부터 생존하고 있는 모든 인류가 저마다 별을 수십 억 개씩 갖는다 하여도 다 가질 수 없으며, 또 얼마나 세어야 하는 숫자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대우주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가장 위대한 존재이지만, 또한 가장 미소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만드신 조물주 하느님께서 계시는 한 우리는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무엇을 보거나 만져봐서 알 수 있는 우주의 신비는 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토마스 사도의 경우처럼 보고 만져지는 하느님이 아니시라, 우리는 분명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 모든 형체와 인간의 감각을 뛰어넘는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신앙은 시작부터 순수한 믿음, 온전히 자신을 내어 맡기며 투신하는 믿음에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그것을 거부하는 것부터가 인간의 오만이며 교만인 것입니다. 때문에 ‘봄’과 ‘만짐’이 아닌, 그분 말씀에 온전한 믿음을 두고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신앙 고백이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요한 20, 28)


말씀자료 : - 배 광하 신부 - [편집 : 원근식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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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9/04/27 12: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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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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