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대림 제2주일/하느님의 소명에 따라 산 사람/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신부

글쓴이 :  산내들.님이 2017-12-09 06:16:5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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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마르코 1.1-8)

 

하느님의 소명에 따라 산 사람


나이팅게일은 30세 되던 날 이런 일기를 썼습니다.

“오늘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시작한 나이다. 주님, 오늘부터 당신의 부르심에 따라 살겠습니다. 유치했던 생각은 이제 버리고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주님의 목적에 순종하겠습니다.”

그 후에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로서 헌신적으로 일하여 세상에 ‘백의의 천사’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어느 날 어떤 기자가 그녀에게 “당신의 성공적인 생활의 비결이 무엇이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비결은 하나뿐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불러 주신 그 뜻에 나를 맡기고 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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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의죽음


이렇듯 주님께서 자신을 불러 주신 소명에 따라 산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세례자 요한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분의 길을 닦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광야에서 낙타 털옷과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벌꿀만을 먹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세례자 요한은 요르단 강에서 대대적인 세례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면서 곧 다가올 하느님 나라와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이러한 세례운동이 군중 사이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많은 추종자가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은 그가 메시아이길 바랐고, 또 그렇게 기대했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또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신과 곧 오실 분, 곧 주님에 대해 분명히 말합니다: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이렇듯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 사람은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또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아는 진정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는 생활과 나의 음성만을 듣는 생활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마음의 선택에서 한 발자국 전진하여 몸으로 하는 선택, 즉 나의 생활을 방향 짓는 결단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결정은 나의 이름을 불러 개인적으로 맡겨 주신 하느님의 목적을 자각하는 데서 더욱 크며 가치 있게 발전됩니다. 마치 세례자 요한과 나이팅케일의 삶처럼….


[말씀자료 : -고석준 아우구스티노- 신부-편집 : 원 요아킴]

 

오늘의 묵상



예수님과 같은 시대를 살면서 예수님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바친 인물이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입니다. 그는 즈카르야 사제의 외아들로 태어나 당연히 유다 전통에 따라 사제직을 계승하고 성전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지내며 살아야 할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의 보장된 삶을 포기하고 광야로 나가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며 오로지 예수님의 길을 닦으려고 광야의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은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라고 하며, 예수님 앞에서 한없이 작은 사람임을 드러냈습니다. 요한의 손가락은 늘 예수님을 가리켰고(요한 1,38 참조),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하며 구원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하고 사라졌습니다.

요한이 자신의 명성과 신념만을 위해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광야에서 가난과 금욕적인 삶을 내세우며 명성을 누리고 사람들의 스승 노릇이나 하며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는 구원 역사 속에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 투신한 사람들을 위해 삶의 본보기를 보여 줍니다. 진정한 투신은 요한처럼 광야를 선택하여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광야는 추위와 가난과 온갖 유혹을 견디는 삶입니다. 주님의 길을 닦기 위해 복음적 가치를 선택한 삶을 말합니다. 그들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가리킵니다. 신앙 때문에 커 보이는 삶이 아니라 오히려 작아 보이는 삶을 삽니다. 그들은 자기가 있던 자리에 주님을 초대하고 소리 없이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위해 투신한 사람들은 그 사람을 통해 예수님께서 누구신지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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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7/12/09 09: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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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7/12/09 21: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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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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