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연중 제4주일/선포되는 말씀의 은혜/글:강길웅 신부

글쓴이 :  원요아킴님이 2016-01-23 07:56:21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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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루카. 1,1-4; 4,14-21)

선포되는 말씀의 은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예수께서는 본격적으로 전도활동에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을 때 사람들은 감동했으며 그분 말씀의 위력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말씀'은 실로 말씀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성서를 보면 말씀은 그냥 예사 말씀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느님께서 “빛이 생겨라."하시자 빛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생성과 세상의 모든 만물이 그분의 말씀 한마디로 이루어집니다. 신약에 와서도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나병환자가 그 즉시 깨끗해지고 죽은 자가 벌떡 일어섰으며 온갖 종류의 병자들이 완쾌되었습니다. 말씀은 실로 보통 말씀이 아닙니다. 그 자체가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하느님의 말씀을 경외해야 합니다. 한 집안에서도 어른의 말씀에 순응할 때 평화와 기쁨이 있듯이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말씀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실천해야 합니다. 거기에 백성의 평화가 있고 열린 미래가 있으며 또한 소망의 성취가 있습니다. 말씀을 무시하면 백성은 여지없이 짓밟혔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존재와 그 역사의 과정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말씀을 떠나서는 백성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 의 흥망성쇠는 오로지 하느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바빌론의 유배는 그에 대한 백성의 눈을 환하게 뜨게 해 줬습니다. 그들은 노예생활을 통해서 말씀의 소중함과 위대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는 사제 에즈라가 백성들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 을 읽었습니다. 그들은 본래 타락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있는지 조차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바빌론에 끌려 가 종살이를 하는 동안 뉘우치고 깨닫는 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유배생활에서 돌아왔을 때 에즈라와 느헤미야의 주도로 성전 재건 운동을 펼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을 다시 짓고 성곽을 쌓는 데는 백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사가 완공되고 보니 너무나?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제 하느님 앞에 체 면이 좀 서는 듯 했습니다. 그때는 마침 초막절이라는 명절이었는데 사제 에즈라가 백성들 앞에서 하느님의 법전을 꺼내어 읽자 백성들 이 너무도 감격해서 울었습니다. 말씀에 불충실했던 과거의 죄악 때문에 울었으며 그렇게 좋은 말씀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서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축제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백성들은 그때 다짐을 했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자고.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율법을 소중하게 간직하자고. 바로 그때부터 율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율법학자가 등장하게 되는데 에즈라는 바로 첫 번 째 율법학자인 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개인이나 백성도 뭔가 실패해서 약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말씀에 눈을 뜬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약한 자 안에서 강하게 드러납니다. 

오늘 2독서에서도 그와 같은 사실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이요 서로가 그 지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몸 가운데서 약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더 요긴하다고 했으며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조심스럽게 감싸고 보기 흉한 부분을 보기 좋게 꾸민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자들이 화장을 할 때도 얼굴에서 가장 취약 되는 부분을 더 신경 써서 꾸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약한 것에 관심 을 더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은 의사의 마음이 건강한 자보다도 병든 자에게 있는 것과 같으며 하느님의 사랑도 죄 없는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 죄 중에 허덕이는 사람에게 더 가까운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자신이십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그 말씀이신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구약에서 말한 모든 것이 당신 안에서 다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죄 많은 세상이 이제 구원을 만났습니다. 

모든 말씀은 예수님으로 집약이 됩니다. 거기서 완성이 되고 거기서 구원이 됩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 슬퍼하는 이들, 그리고 병자와 약자들 안에서 그분의 말씀이 힘을 줍니다. 하느님은 진정 실패한 자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래서 그 말씀을 믿고 존경해야 합니다. 세상에 말들도 많고 좋다는 말씀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주는 말씀, 우리를 구원하시는 말씀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따라서 그 말씀을 소중히 간직합시다. 그리고 말씀대로 실천합시다.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지혜요 힘입니다.

[말씀자료 : - 강길웅 신부-(가톨릭신문) 편집 : 원근식 요아킴]

오늘의 묵상


독일의 재무부 장관이었던 바덴은 매사에 긍정적이고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면서 국가에 큰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이러한 삶을 살게 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심한 고생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서 허름한 여관에서 여장을 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자신의 구두가 없어진 것입니다. 바덴은 자기 같은 가난뱅이의 구두를 훔쳐 간 것에 너무 화가 나서 하느님을 크게 원망하였습니다. 

마침 그날은 주일이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 여관 주인이 창고에서 헌 신발을 꺼내 빌려 주며 함께 교회에 가자고 하였습니다. 마지못해 교회에 갔지만 남들이 바치는 기도와 찬송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의 행동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이 하느님께 눈물을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바덴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사람은 신발을 잃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두 다리를 전부 잃어버렸으니 신발이 있어도 신을 수 없는 처지가 아닌가? 그런데도 저렇게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리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 하는 사람인가? 그까짓 신발이야 다시 사서 신으면 그만인 것을 괜히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까지 원망하며 이렇게 화를 내고 있었구나!” 그 뒤로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결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조그만 일에도 늘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늘 우리 곁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느끼며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 각자의 삶을 되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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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6/01/24 13: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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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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