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순 제2주일/이성적 판단을 넘어선 무한한 사랑-서광석 신부

글쓴이 :  원요아킴님이 2015-02-28 06:51:2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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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마르코 9,2-10)


이성적 판단을 넘어선 무한한 사랑
                                                                            -서광석신부-

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외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여 완전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준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고 그에게 복을 내려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도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다. 그만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를 단죄할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변모로 부활의 영광을 미리 보여 주신다. 그러나 부활은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거쳐서 얻게 되는 영광이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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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묵상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그분의 신성(神性)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예수님이 치르셔야 할 십자가 수난과 죽음, 부활의 영광과 승천, 재림을 예시한 것이지만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어떤 맹인이 이웃집에 놀러 갔다. 밤이 되어 돌아가는데 그 집주인이 등불을 주었다. 맹인은 조롱한다고 여겨 화를 버럭 내었다. 주인은 "당신은 소용이 없을지 모르나,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은 그 등불을 보고 피할 수 있을 것이오"라고 했다.

 맹인은 등불을 받아들고 어두운 길을 더듬어 가다 웬 사람과 '쾅'하고 부딪혔다. 맹인은 "눈 뜨고도 등불이 보이지 않소?"하며 호통을 쳤다. 부딪친 사람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은 무슨 불이요. 당신은 꺼진 등이 보이지 않소?"하고 답했다. 맹인은 더 이상 말을 못했다.

 인간이 이성으로 전지전능한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알아듣기란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지혜나 지식으로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미약한 존재다. 그마저도 이기적 아집과 독선, 편견으로 자기중심적 사고로 빠져든다.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 속에서 현대인은 타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자부심을 겸비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가 돼간다. 그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필요한 것은 금전이다. 돈이면 서비스나 재화, 심지어 성(性)까지도 구매할 수 있다. 부의 축적을 위한 출세지향주의가 삶의 목표이며 그것들을 위해 각오를 다지고 어떠한 희생도 치를 기세다.

 이러한 이기적 개인주의는 신앙마저 위협한다. 이 세상 수많은 인구가 종교를 믿고 의지해 살지만 그 안에 독선과 비리가 얼마나 많은가? 허나 이것은 오직 '나' 자신에게 어떠한 이해타산이 미치는 가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면서 자기를 세상 중심으로 삼는 무지에서 비롯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옳고 그름을 분별없이 맹신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을 체험함으로써 이성적 판단을 유보한 조건 없는 신뢰이다.

 하느님의 에덴을 떠나온 우리 모두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느님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그분은 위대한 황제도, 백성 위에 군림하는 통치자도, 너그러운 절대 권력자도 아니다.

 하느님은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다니시며 가슴 태우시는 분이시다. 돌아온 탕자에게 벌은 고사하고 기쁨에 넘쳐 큰 잔치까지 베푸시는 분처럼 자식을 품에 안고 항상 보살펴주시는 아버지시다. 그 사랑은 따뜻하고, 무한하며, 무조건적이라 완전히 신뢰할 수 있어 우리를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 신앙공동체는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를 모시고, 서로 보호하고 돌봐주며, 희로애락을 공감하고, 가진 것을 나누며 사랑하는 형제자매로 구성된 가족이 돼야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현세에서 예수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어리석고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바오로 사도는 이에 대해 하느님의 역설적 지혜로 대답한다.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 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1코린 1,21??25 참조).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훗날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영광은 반드시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통해 가능하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놓으시고 비우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위해 그분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신뢰는 사랑에 기반을 두며 사랑은 이성적 판단을 넘어서는 것이다.



편집 - 원 근 식 요아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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