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연중 제11주일/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나눌 수 있습니다.신 대원 요셉신부

글쓴이 :  원요아킴님이 2016-06-11 10:09:39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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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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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 루카 7,36─8,3)



 
예수마음

[묵상주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나눌 수 있습니다.


연중 제11주일이다. 예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어느 바리사이로부터 초청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 초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아 음식을 잡수시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모든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는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셔서 성찬례를 주재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주재하시는 성찬례는 공동체의 밥상이며, 이 잔치는 누구든 참석할 수 있고 또 제외되거나 거부되는 사람이 없어야 할 잔칫상이다. 또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주재하시니, 그 잔치는 거룩한 잔치다. 그러한 밥상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서 죄 많은 사람이라고 낙인찍힌 여자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죄를 모조리 용서해주신다. 뿐만 아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카 7,50)라고 말씀하시며 구원을 덤으로 건네주신다.

바리사이의 집에서 거행된 거룩한 잔치는 식탁에 앉아 있던 자들뿐 아니라 눈에 눈물 마를 날이 없는 사람들까지 함께한 자리다. 또 믿음을 가진 이들과 믿음이 없는 이들, 용서를 원하는 사람과 용서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모일 수 있는 자리다. 그래서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리다. 따라서 그 자리는 곧 미사가 되고 성제(聖祭)가 되며 축제(祝祭)가 된다.

예수님과 함께하는 자리(미사)는 또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믿고, 그 믿음을 온몸과 마음으로 고백하는 자리다. 믿음을 고백하기 때문에 증거와 증언의 자리다. 그분을 주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증언하는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21)라고 하셨다.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고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곧 그분에게서 '죄 사함의 용서'를 받는 사람이 될 것이고, 용서를 받는 그 사람은 그 자체로 "기쁨이 충만해질 것"(요한 16,24)이다.

'믿음'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의 마음이다. 스스로 가난하지 못하고 약한 이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어찌 주님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드릴 수 있겠는가? 또 주님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가난하고 약한 이들과 기꺼이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죄 많은 여자가 자신의 눈물로 주님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루카 7,38). 그러자 주님께서는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루카 7,47)고 말씀하신다.

믿음은 사랑을 전제로 하고, 사랑은 용서를 전제로 한다. 믿음이 없으면 사랑할 수 없고, 사랑이 없으면 용서할 수가 없다. 믿음과 사랑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어줌'이며, 용서는 믿음과 사랑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잘 헤아려서 그 처지를 이해해주며 잘못에 대해 죄를 묻거나 따지지 않고 너그럽게 풀어주는 행위가 바로 용서다.

용서를 실천하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할 줄 알게 되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믿음의 삶을 살 줄 알게 될 것이다. 믿음의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 결국 주님께서 베푸시는 거룩한 잔치에 참여하여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때마침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 생각난다. "여러분이 무엇인가 용서해 준 사람을 나도 용서합니다. 사실 내가 용서하였다면,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하여 용서한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탄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2코린 2,10-11). 하느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며 당신의 자비와 은총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겸허 히 고백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성덕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는 사랑에서 나오고, 사랑은 믿음에서 나온다. 믿음은 곧 생명이고 진리이며 자유이고 부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게서 나온다. 그러니 믿고 또 용서하는 삶은 모두 하느님 은총으로 힘입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2코린 6,1) 해야 할 것이다.


        말씀자료:신대원요셉신부(안동교구)[편집:원근식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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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미♡모바일에서 올림 (2016/06/11 18: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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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6/06/12 08: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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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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