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청소년 주일)배광하 치리아코 신부

글쓴이 :  산내들.님이 2018-05-26 07:13:09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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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대축일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의 외아드님과 성령은 찬미받으소서.
정녕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셨나이다.

마태. 28,16-20

 

★아버지-아들-성령의 이름으로★


◈안드레이 루블료프

러시아 정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성화는 ‘안드레이 루블료프’(1370-1427)가 그린 「삼위일체」라고 합니다. 이 작품은 예술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가장 뛰어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는 작품으로 널리 평가 받고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가 몽고의 지배를 받았을 때, 많은 어려움 속에서 기도와 고행으로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적 그림인 「삼위일체」의 가장 왼쪽에는 성부 하느님께서 천사의 모습으로 계시는데, 그분 뒤에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부 하느님의 창조주 역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앙에는 성자 하느님께서 같은 천사의 모습으로 계시고, 뒤에는 소나무가 있습니다.


이는 생명과 십자 나무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른쪽에는 성령이신 하느님께서 계시고, 뒤에는 가파른 산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생활, 그 완덕의 길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많은 묵상 가운데 탄생한 삼위일체 하느님의 역할을 화가는, 성부께서는 창조의 힘과 위업을, 성자께서는 인간에게 십자 나무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신 분으로, 성령께서는 인간을 영적인 완덕의 길로 이끄시는 분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그림의 주제를 ‘화합과 일치’로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에 관하여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이해하였으나 화가의 묵상은 아주 단순한 면이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하신 위대한 일은 각각 다르나 결국 한 분이신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화합과 사랑과 일치’로써 가능한 일인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바로 화합과 사랑과 일치인 것입니다. 이것이 있을 때, 창조의 위대함이나 구원의 놀라운 은총이나, 영적 완덕을 통한 삼위일체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를 하느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몸소 인간에게 먼저 보이신 것입니다. 사도 성 바오로의 표현대로 하자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1코린 12,12).


손이 하는 일, 발이 하는 일, 귀가 하는 일이 각각 다릅니다만, 그 모든 지체는 몸에 속하여 있는 것입니다. 결국 몸을 떠나서 지체는 지체로서의 역할도 못할뿐더러 지체로서 존재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사랑의 관계

러시아의 대문호‘도스토예프스키’(1821~1881)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의 극치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결코 혼자서 하는 독립적인 객체일 수 없습니다. 사랑은 여럿이 함께 나누는 ‘관계’입니다.


‘너와 나의 관계’, ‘너와 우리의 관계’, ‘우리와 우리의 관계’ 입니다. 이 관계 안에서 사랑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 같은 관계가 아름다울 때, 세상이 구원될 수 있는 것이라고 ‘도스토예프스키’는 보았던 것입니다. 결국 구원의 완성은 관계의 일치에 있는 것입니다. 관계의 일치, 사랑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과연 구원이십니다. 이 놀라운 사랑의 완성을 통하여 이제 우리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은총을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4-15).


구약의 창세기에서도 분명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들자고 하십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우리는 분명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분들의 사랑의 관계에서 그분들의 모습을 닮아 창조된 자녀인 것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그 오묘한 삼위일체의 신비는 더욱 알 수 없습니다.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 성인(354-430)조차도 이 삼위일체의 신비에는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삼위일체의 위대한 하느님 신비를 헤아려 알 수는 없지만, 실천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은 관계 안에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하느님 사랑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신비를 알 수는 없지만, 그 사랑의 일치에 우리는 보다 가까이 갈 수는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명령하신 것,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가르치라 하신 것도 바로 이 사랑과 일치의 신비를 닮은 삶을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삶입니다.


[말씀자료 : -배광하 치리아코 신부- I 편집 : 원 근식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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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05/26 13: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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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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