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부활 제4주일/만민을 향한 거룩한 부르심

글쓴이 :  원요아킴님이 2013-04-20 04:40:30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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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인을 향한 거룩한 부르심 ★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 찬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한다. 버리면 얻는 것이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까 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공 지영, 『수도원 기행』). 무엇을 얻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구해서 얻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버리면서 얻는 것입니다. 구해서 얻는 것은 아무리 얻어도 더 큰 목표가 생겨 만족이 있을 수 없는 얻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버리면서 얻는 것은 아무리 작아도 덤으로 얻는 기분이므로 만족과 기쁨이 함께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버리면서 하느님에게서 얻으려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버리면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공허에 대한 두려움이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을 주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온전히 의탁하고 자신을 송두리째 봉헌한 많은 분들에게, 하느님 의 축복이 가득히 내리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부르심을 받고도 아직 성소 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아 방황하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주님께서 당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주시 도록 기도합시다. 그리고 모든 평신도들이 자신의 삶 안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깨닫고 그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의 은총을 얻도록 기도합시다. ☆ ☆ ☆ ☆ ☆ ☆ 착한 목자를 따라서 4남 1녀의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곱게 자랐으나 가난 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내어준 이 원미 테레사 자매가 있었습니다. 대학생 때에는 용돈을 모아 어려운 친구들을 도왔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독재에 맞서 싸우다 2학년 때 제적당한 뒤, 노동운동을 하다가 87년에는 수녀원에 입회하게 됩니다. 그러나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성소의 뜻을 꺾을 수밖에 없었으며, 허약 해진 몸으로 사글세방을 얻어 공장 일꾼과 파출부 등의 일로 번 돈을 빈민지역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마지막 삶을 투신합니다. 그녀는 죽음 을 앞두고 열흘 전 자신의 두 눈을 앞 못 보는 이를 위하여 기증하며 이 같은 말을 남깁니다. “33년 간 밝은 두 눈으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본 것만으로도 감사드립니다. 앞을 못 보는 이들에게 밝은 세상을 보게 하는 일이 신앙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내 몸은 어차피 썩어 없어질 것이 아닙니까?” 진정 착한 목자를 따라 살았던 성소의 삶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부르심, 그 생명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한 모든 이들의 땀과 눈물에 진정 오늘 묵시록 저자의 말씀이 이루어 졌으면 싶습니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주실 것이다”(묵시 7, 17). 주님의 참 부활을 믿었던 역사이래. 숭고한 이들의 소명과 주님 희망의 말씀이 없었던들 그 일들을 과연 훌륭히 끝마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참된 부르심을 받았던 모든 이들은 끊임없이 착한 목자께서 인도해주시는 ‘푸른 목장’을 희망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옛날 시편의 마음을 함께 되 내이고, 읊고 또 묵상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 1~4). 착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부를 수 있는 시편의 노래입니다. 성소주일을 생각함 성소주일에 모든 신학교에서는 엄청난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청소 하느라 신학생들은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소주일’을‘청소주일(?) ’이라고도 부릅니다. 다녀간 손님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늦게까지 치워야 하는 까닭입니다. 그래도 그 일들이 즐거운 이유는 우리들 사제성소를 뒤따를 후배들을 위한 작은 잔치였다는 보람 때문입니다. 진정 ‘부르심’은 너무 어렵게 생각 해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합니다.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 ‘아모스’는 당신 의 부르심에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 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양 떼를 몰고 가는 나를 붙잡으셨다”(아모 7, 14~15). 가끔은 세상의 유력한 이들을 뽑기도 하시지만, 대부분은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당신 구원의 도구로 뽑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주님 의 부르심을 받았던 성경의 모든 인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이 세상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화려한 인물들이었는지, 때문에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 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1코린 1, 26). 주님께서는 아무런 능력도, 권력도 없는, 정말 부족한 사람들을 복음의 도구 로 부르셨습니다. 무엇이 잘나서 그 거룩한 성소에 들어선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성소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 의 숭고한 뜻을 따르는 모든 이들은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는 것이며, 그 길이 성소의 길인 것입니다. 그 같은 아름다운 일을 할 때도 내가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 16). 분명 착하신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뒤를 따르는 이들의 기쁨과 참된 자유를 배워야 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지상의 천국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성소의 삶인 것입니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 14). ☆ [말씀자료 : 배광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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