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삼위일체 대축일/내 안의 삼위일체 실현 & 아버지와 아드님과 성령은 한 분이시다.

글쓴이 :  원요아킴님이 2015-05-30 14:32:28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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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마태오 28,16-20)

 

 

내 안의 삼위일체 실현



오늘은 삼위일체 신비를 기리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이 교리는 오늘 감사송에 나와 있듯,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느님이시며 한 주님이시나, 위로서 하나가 아니시고 삼위일체이신 본체로서 하나라는 것,

한 하느님이 세 위격으로 존재하는데 이 위격들은 하나의 하느님 본성이고, 본질이며 실체라는 교리로 니케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를 거치면서 형성된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 어떤 이론적인 사색에서 나온 정의이기보다는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을 경험한 사람들의 체험에서 출발한 교리라는 점입니다.

즉, 하느님과 예수님, 성령 안에서 하느님을 본 사람들의 체험입니다. 때문에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일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계속해서 이루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삼위일체 대축일을 지내면서 가져야 하는 태도는, 다양함 속에서 활동하시는 그분의 모습을 발견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자와 성령의 모습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눈을, 그리고 더 나아가 사도들과 교부들처럼 오늘의 다양한 모습과 환경 속에서 활동하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질 때 성부 성자 성령이 같은 하느님이심을 우리는 가슴으로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말씀자료 : -홍금표 신부- I
- 홍금표 신부-

 

아버지와 아드님과 성령은 한 분이시다.

예전에는 세례성사를 받기 전에 까다로운 교리문답 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시골 공소를 방문 한 신부님이 예비자 할머니에게 교리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하느님은 몇 분이십니까?”“한 분이십니다.”다음은 삼위일체에 대한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한 분이신 하느님은 몇 개의 위격입니까?”한참 생각한 할머니는 거침없이 대답을 했습니다.“ 두 개의 위격입니다.”

어이없어하는 신부님에게 할머니는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제가아주어렸을때성당에갔었는데그때벽에걸려있는 하느님 그림을 봤거든요. 거기에 긴 흰 수염이 있는 할아버지(성부)가 젊은 청년 예수님(성자)을 안고 있고 가운데 비둘기 모습(성령)이 있어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성부)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나도 나이를 먹어서 죽을 때가 되었는데 어렸을 때 본 그 할아버지가 여태 살아 있을 리가 없잖아요.”

신학교 때 교수 신부님께 들은 우스갯소리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삼위일체란“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이 계시고, 세 위격 이 한 분 하느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위격(persona)은 본래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맡았던 역할의 가면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옛날 그리스 에서는 한 명의 배우가 여러 개의 다른 가면을 쓰고 여러 역할을 맡아 공연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배우에게 여러 개의 가면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일체(substance)란 말은 본성으로 하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하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럿이 서 있게 하는 바탕이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삼위일체는 배우 한 사람이 무대 위에서 세 가지 다른 배역을 맡아 연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역사라는 무대에는 하느님만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구원의 무대에서 각자 고유한 배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배역을 잘 소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배역이 무엇인지 확실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과 일치를 우리의 삶에서 본받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사랑과 일치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할 때만 가능 해 집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결코 교리적이나 이론적인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히려 열심히 사랑하려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드러나고 확인되는 하느님 사랑의 실체입니다.

물론 삼위일체의 교리는 온전히 인간의 이성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는 하느님 계시의 신비로운 가르침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대로 신비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음인지도 모릅니다.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의 신비에“나는 믿나이다.”라고 응답하는 것이 신앙인의 자세일 것입니다.

[말씀자료 : -허영엽 신부- I 편집 : 원 근식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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