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연중 제23주일-더큰 바다로 나가기 위해-양 승국 신부

글쓴이 :  산내들.님이 2019-09-07 07:58:4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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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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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루카 14,25-33)

더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


수도생활, 봉헌생활도 시대의 변화와 함께 과거와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 수도생활 하면 즉시 떠오르는 단어들이 세상과의 결별, 고행, 극기, 보속, 기도 등등이었습니다. 약간은 울적한 회색빛깔을 지닌 삶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현대의 봉헌생활에서 더 강조되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친교, 기쁨, 형제애, 세상에 대한 가치 부여, 세상을 위한 적극적인 헌신 등등입니다.

혈육으로 맺어진 부모형제들에 대한 생각도 이젠 많이 달라졌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도회 입회하면 이제 가족과는 끝이구나 생각들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더 이상 그렇지 않습니다. 전보다 더 굳은 영적 유대 속에 혈육으로 맺어진 부모형제에 대한 사랑도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이 말씀,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그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모형제를 헌신짝처럼 버리라는 극단적인 말씀, 어떻게 생각하면 예의도 뭣도 없는 사람의 말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사실 강조점은 다른데 있습니다. 보다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 보다 많은 우선권을 두라는 강조말씀입니다.

이 시대 사방을 둘러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 한 가지는 하느님의 자리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점점 역사 뒤로, 무대 뒤로 사라져가는 느낌입니다. 서구의 경우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많은 학교 교실에서 십자가를 떼라 마라 계속 논란중입니다. 너무나 편안히 그어오던 성호 한번 긋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더 나아가서 수도자들의 일상생활 안에서도 하느님 이야기, 신앙 이야기가 점점 사라져만 갑니다. 하루 가운데 하느님을 생각하고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 하느님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한 번 회복해야 할 삶의 태도가 ‘하느님께 우선권’을 두는 생활방식입니다. 물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몸소 지으신 피조물들입니다. 하느님 보다 더 우위에 있어서는 안 될 대상들입니다.

하느님께 우선권을 두는 삶을 지향한다면 꼭 우리가 취해야 할 필요한 한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포기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선택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두 손에 다 쥘 수가 없습니다. 더 큰 선, 더 큰 아름다움, 더 큰 가치를 선택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취해야할 태도는 기존에 우리가 지니고 있던 것들에 대한 과감한 포기입니다.

큰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작은 시냇물을 포기해야 합니다. 더 크고 맛있는 사과를 쥐고 싶다면 그 전에 쥐고 있는 작은 사과를 던져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성장하고 변화하는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포기는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봉헌생활, 수도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포기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적 과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포기는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아름다운 대상이며 모든 것을 다 주고 바꾸어도 아깝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그분을 따르기 위한 것이므로 정말 기쁜 일이며 행복한 일인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이기도 하지만 때로 무서울 정도로 질투하시고 우리에 대한 욕심이 끝도 없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질투와 욕심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 영혼의 구원, 우리 삶의 아름다운 결론인 영원한 생명을 위한 질투요 욕심인 것입니다.

적당이가 아니라 모든 것을 바쳐서 당신을 추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완전히’ ‘절대’를 요구하십니다. 이런 하느님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답한 사람들이 바로 사제요 수도자들인 것입니다.

[말씀자료 : 양승국 신부-[편 집:원근식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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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9/09/07 18: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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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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