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것을 이어가는 주님의 종

바울라 2019/04/30 10:45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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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월요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2019.4.15

 

제1독서 <그는 외치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

▥ 이사야서  42,1-7

복음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요한이  12,1-11

 


 

끊긴 것을 이어가는 주님의 종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그 안에서 무언가는 참으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복음에서 마르타는 마리아가 그저 예수님 곁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유다는 마리아의 행동을 보면서 저 행동보다 나은 행동이 있는데 안한 것을 비판합니다.

또 수석사제들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일어난 라자로 또한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것을 끊은 상태로 살아갑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배척하고 단절하면 우리 자신은 참으로 편하게 살아갑니다.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는 데에 가장 쉬운 것 중 하나는 배척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무언가를 배척하여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을 착한 일을 하는 것 윤리적으로 옳은 일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며 살아가는 것도 한편으로는 스스로 그른 것을 배척하는 입장이 어느 정도 있습니다.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를 기억해야합니다.

우리가 함부로 끊은 것 하나가 하느님과의 관계도 끊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섭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죠.

모든 것의 씨를 뿌리신 분의 것을 무언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아닌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섬기던 수많은 우상들 그것은 하느님이 아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것들은 하느님의 특성을 일부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이 지닌 특성 중 좋은 것만 가지고 있었기에 섬기게 된 우상들이 많죠.

그러나 그 결과는 악을 퍼뜨리는 결과를 이룹니다.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우리는 신앙을 가르칠 때 무엇을 가르칩니까?

연민을 가르칩니까?

신학을 가르칩니까?

기도를 가르칩니까?

묵상을 가르칩니까?

자비를 가르칩니까?

심판을 가르칩니까?

참으로 우리가 놓치고 가는 단절이 있습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죠.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통해 연민하고 신학하며 기도를 하고 묵상을 합니다.

또 하느님을 통해 자비를 베풀고 심판을 합니다.

그런데 종종 그 안에서 착각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통해서 그것들을 하는 것이지

그것들을 통해서 하느님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이 없는 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치기 위해

연민하라 가르치고 신학하라 가르치며 기도하라 가르치고 묵상하라 가르칩니다.

무조건 자비를 베풀라 가르치며 무언가를 심판하라 가르치죠.

마치 유다가 나눔을 가르치는 것과 같이 말이죠.

여러분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있기에 그것들을 통해 하느님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하느님이 아닌 그것들만 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사라지고 현상적인 것들만 남습니다.

근원적인 것이 사라지고 그저 내 마음으로 느껴지는 수준만 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것을 통해 일으키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일으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형제 여러분 신앙의 단절을 회복하십시오.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응답하여 하느님을 통해서 많은 것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행등의 일을 함으로서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응답은 그런 것들로 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응답의 조건은 참으로 깊은 하느님의 자비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선행을 내려놓으십시오. 그

리하여 아무것도 아닌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그것이 모여 가정의 관계가 회복되며 공동체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여러분이 그 관계를 회복하였다면 온전한 하느님을 드러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이가 되어있을 것입니다.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을 온전히 받아들여

아무것도 아닌 당신 안에서 일으키시는 것을 보십시오.

모든 것 안에서 일으키시는 하느님을 발견하십시오.

나 자신의 관계 안에서 끊어진 것을 하느님을 통해 회복하십시오.

그럼 모든 것 안에서의 단절을 이어가는 주님의 종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늘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펼치신 분

땅과 거기에서 자라는 온갖 것들을 펴신 분

그곳에 사는 백성에게 목숨을, 그 위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에게 숨을 넣어 주신 분

네이버 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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