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모든 이가 사랑할 수 있도록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9-04 20:23:26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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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2019.9.1

 

제1독서 <너를 낮추어라. 그러면 주님 앞에서 총애를 받으리라.>

▥ 집회서  3,17-18.20.28-29

 

제2독서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입니다.>

▥ 히브리서  12,18-19.22-24ㄱ

 

복음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루카  14,1.7-14

 


 

모든 이가 사랑할 수 있도록

 

사람은 사랑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정확히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이죠.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풍성하게 다스리기 위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다스리고자 하며 사랑하려는 자신의 본성에 이끌리게 됩니다.

이런 본성을 지닌 사람을 하느님은 세상에 두셨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 속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양한 이유로 이 사랑의 흐름을 키우는 사람의 삶이 흔들리곤 합니다.

원죄로 지어진 탑입니다.

원죄로 인해서 사람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 결과 사람은 가장 근원인 하느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근원인 하느님에게서 창조된 세상만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들이 사랑하고 모든 이들이 다스릴 수 있는 세상을 마련하셨는데

인간은 그렇게 살지 못한 것입니다.

하느님이 안 계시니 스스로 높아진 느낌을 갖기 위해 다른 사람 위로 오르려 하며

자신만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조건들을 내어놓아

사람들이 사랑할 수 없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본래의 사랑의 법칙을 되찾기 위해 가르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사랑은 혼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느님 사랑 자체도 삼위일체로서 셋이서 하나의 사랑을 이룹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이지만 동시에 세 위격으로서 각자의 모습으로서 사랑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사람 또한 그렇습니다.

혼자서 이루는 사랑의 행위는 없습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사랑을 실천합니다.

이런 가치는 사람이 세운 기준으로 평가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느님의 기준으로서 좋고 나쁨이 평가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나쁜 것을 창조하시지 않고 오로지 선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사랑을 실천해갑니다.

현세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법을 명확하게 그리스도로부터 배워가면서 사랑을 실천해갑니다.

 

여러분이 나아간 곳은 시온 산이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도성이며 천상 예루살렘으로,

무수한 천사들의 축제 집회와

하늘에 등록된 맏아들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또 모든 사람의 심판자 하느님께서 계시고,

완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이 있고,

새 계약의 중개자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사람이 거룩해지게 만듭니다.

사람이 거룩해질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을 더 조명해서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 1독서의 집회서에서 선물하는 사람과 온유한 사람을 비교합니다.

선물하는 사람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지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바로 주지는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능력이 아니라 상대를 기다려주고 상대가 행동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줍니다.

서로가 거룩해질 수 있도록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서로 사랑하는 것을 잊고서 내가 사랑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동시에 상대가 사랑할 수 있게 내어주는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정녕 주님의 권능은 크시고

겸손한 이들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자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더 깊이 바라봅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 번째 말씀은 초대받았을 때 낮은 자리부터 앉으라는 말씀이었고

두 번째 말씀은 능력이 없는 이들을 초대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의 목적도 마찬가지로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낮은 자리에 앉는다면 내가 자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자연스럽게 내어주시는 자리를 기다리는 모습입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 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능력 없는 이들을 초대하라는 것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도 선물하는 이의 행동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내 능력을 과시하면서

자신을 높이는 행동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선물하는 것에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어필하는 용도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물하는 이가 하느님의 자리를 겸손히 받아서 행동한 것이라면

상대가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내어준 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잔칫상 안에서 함께하는 이들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또 초대한 이를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물질적이고 이윤적인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내면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선물하는 이가 하느님의 자리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행한 이라면

초대 받은 이들이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에 따라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려 하고 있습니까?  서로 사랑하려 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며

이 사랑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예수님을 스승으로서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킵니다.

우리의 사랑은 나를 드러내는 사랑인지

아니면 겸손되이 기다리며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사랑인지 되돌아봅시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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