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람을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

글쓴이 :  바울라님이 2019-08-30 18:52:40에 올려주신 글  ... 조회수(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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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2019.8.28

 

제1독서 <우리는 밤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여러분에게 선포하였습니다.>

▥ 테살로니카 1서  2,9-13

 

복음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이다.>

✠ 마태오  23,27-32

 


 

사람을 주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

 

스승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쁜 스승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양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만약에 자신의 권위에 따르지 않고

자신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어떻게 할까요?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한 마디로 물어보죠.

그 스승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하느님을 대하듯이 할까요?

사람으로 취급해주면 다행이겠죠.

나와 다르다는 것을 배척하는 것은 자신만을 아는 것이며

이를 하느님의 이름을 들이며 배척하는 것은 자신이 하느님이라는 교만을 지닌 것이겠죠.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만약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듣거나

자신의 행동 방식과 다른 것을 보았다고 생각해보죠.

단순히 다르기만 하다면 이에 대해 지나가는 소리로만 듣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른 것이 굉장히 불쾌한 것이라면 어떨까요?

듣기 싫은 소리일 수도 있고,

혹은 내 앞에서 정말 보이듯이 드러나는 불쾌한 표정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내가 보았을 때 부정적이라 생각되는 것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만약 윗사람이 그랬더라면

내가 무시할 수 없는 권위가 그랬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안의 ‘아니오’를 내보이지 않고서 ‘아니오’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랫사람, 내가 존중할 권위가 아닌 곳에서 그랬더라면

박해하고 듣지 않으려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그것을 지적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

 

이들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이야기를 사람의 말로 받아들일 뿐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윗사람 말이면 눈치 보며 받아들이는 척하고,

아랫사람 말이면 대놓고 불쾌감을 표시하며 박해하는 태도를 지닌 것입니다.

모든 것을 사람의 기준으로 보고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당연히 그들의 조상들과 같이 같은 행동을 보일 것입니다.

진실 되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죠.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하느님의 말씀을 대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사람들에게 칭찬하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단순히 드높였다는 뜻일까요?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진실되이 또 가림 없이 내어준 것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이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이 신자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의 나의 관계를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과 나의 관계가 창조된 목적처럼

하느님 뜻의 파트너이며, 친구이며, 신부이며, 부부라면

참으로 진실하고 가림 없이 통교하는 관계일 것입니다.

하지만 위선으로 가득한 관계라면

무언가 떠받들고 아부하고 위선적이며 진실이 아닌 가면을 쓰고서 만나는 관계이겠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느님께 아부의 관계를 맺어서 어떤 이익을 보려하십니까?

진실한 관계인 것입니다.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유롭게 받아들이고

나의 온전한 자유의지로 동의하고 거부하기도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즉 자유로운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신앙의 관계인 것이죠.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아버지가 자녀들을 대하듯

여러분 하나하나를 대하면서,

당신의 나라와 영광으로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느님께 합당하게 살아가라고

여러분에게 권고하고 격려하며 역설하였습니다.

 

자유로운 소통에서 생각해봅시다.

나와 다른 이야기를 들을 때 자유로운 소통이 되도록 경청했나요?

받아들여서 생각은 해보았나요?

나의 감정에 휘둘려서 혹은 나의 판단하고자 하는 교만으로

자유로운 소통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 않나요?

하느님은 나와 나의 형제를 통해 표현하십니다.

기뻐하시는 것 또 당신의 피조물에 막대하시는 것에 슬퍼서 혹은 화나셔서

그런 것들을 기쁨으로 표현하기도 슬픔으로 표현하기도 분노로 표현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형제의 이야기를 하느님 말씀으로 듣고 있나요?

얼마나 경청의 자세를 지니고 있나요?

얼마나 공감의 자세를 지니고 있나요?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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