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2018.9.15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히브리서 5,7-9v
복음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 요한 19,25-27
또는
복음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입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33-35
순명을 하면 식별이 됩니다.
순명을 하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순명하는 이는 자기 주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순명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많은 무신론자들이 이야기합니다.
신앙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교회의 몇몇 사람들은 순명을 잘못 받아들여
자기가 다루기 쉬운 꼭두각시 정도로 만든 이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 베드로 사도께서도 지도자들이 무엇을 순명시킬지 잘 생각해보라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그러면 순명은 왜 하는 것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수많은 왜곡이 있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교회의 행동의 본질인 성령의 활동을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소설에서는 감정이입을 하고서 보는 것이 가장 주인공의 마음을 읽기 좋은 방법입니다.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이 나인 듯이 그대로 따라가면
주인공의 감정이 내 마음에서 울리게 됩니다.
실제로 감정이입이 잘하는 사람은 어떠한 작품을 감상할 때
그런 식으로 간접체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웁니다.
관찰자의 입장이 아닌 내가 직접 주인공의 입장에 서서 느끼는 것이니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감정을 느낍니다.
이런 감정이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없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더라도 모든 것을 읽고서 그때 평가하는 것이지
읽는 중에 왜 이런 선택을 해? 답답하게 라는 식으로 반응한다면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인공의 길을 있는 그대로 걸어본 후에 주인공의 판단을 모두 인지하고서
그 때서야 우리는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상평의 가장 좋은 시점이죠.
만일 우리가 상대의 입장을 잘 모르겠다면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내 생각을 내려놓고 그 이야기에 온전하게 참여해보는 것입니다.
순명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순명이 자신을 내려놓아야 가능한 것이기에 고난입니다.
이 고난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사실 순명은 내 안에 갇혀 있는 나 자신에서 벗어나 상대와 관계를 갖도록 해줍니다.
우리는 서로 다릅니다.
그 서로 다른 것에서 내 생각에만 갇혀 살아간다면 우리는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서로 다른 것이 부딪혀 자신을 깎아내며 맺는 것이 관계입니다.
그 중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으면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것 아니냐? 아닙니다.
이러한 순종이 이루어졌을 때 상대의 생각을 알 수 있고 비로소 식별이 가능한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도 순명을 통해 받은 고난에 대해 이렇게 들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실로 왜곡된 시선이 아닌 온전하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 사람의 시선이 어디에 치우쳤는지
그 사람의 귀가 어느 쪽은 열리고 어느 쪽은 닫혔는지 명확하게 보입니다.
온전히 그 사람에게 보이는 상황 안에서 어떠한 감정으로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의 경청은 상대에 대한 순명에서 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아닌 그 사람의 사정을 모두 보고서
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에 치우쳤는지, 무엇을 듣지 않았는지
식별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안에서 성령인지 마귀인지도 식별이 가능합니다.
또한 겉모습은 옳지만 본질이 틀린 경우도 식별이 되고,
본질은 옳지만 겉모습이 본질을 드러내는 데에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서로에 대한 순명은 서로의 관계를 돈독히 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교회에 순명함으로서 교회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판단하였고 어떤 것을 보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본질이 종종 그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넘어 하느님께서는 왜 이런 것을 식별하게 하셨을까?
이것까지 바라보면 우리는 성령의 활동을 볼 수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순명은 꼭두각시가 되는 길이 아닙니다.
결코 인형이 되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보이게 만드는 또 다른 길입니다.
먼저 순명하십시오. 그러면 식별이 될 것입니다.
사실 상대의 판단은 내 눈이 아닌 상대의 눈으로 식별해야하는 것이 옳습니다.
순명을 통해 드러난 모든 생각들을 식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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