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2018.9.13
제1독서 <약한 형제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 코린토 1서 8,1ㄷ-7.11-13
복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 루카 6,27-38
나의 선택을 남에게 맡기지 마십시오.
오늘 어떤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하는 충고였죠.
인사를 잘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인사를 잘했던 여성이 어떤 기업의 인사팀장에게 눈에 띄여
취업이력서도 제출 안한 상태에서 갑자기 스카웃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사는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사소한 선행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좋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한켠에서는 안타까웠습니다.
인사라는 사소한 행동도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해야 하는 시대이구나.
이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성공은 무엇입니까?
남에게 인정받고 남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성공하는 것입니다.
사회에 공헌하는 부분이 되는 것이 성공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왜 성공하려 합니까?
인정받으려고 사랑받으려고 성공하려 합니다.
사회공헌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무엇입니까?
우리는 나에게 이득이 되는 이들을 사랑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닌 기계부품이 되어가는 시대입니다.
기계부품은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야
즉, 사용하는 사람이 불편함이 없이 해야 사랑받습니다.
인간이 기계부품시대,
인간이 남에 의해 자신의 행동이 선택되는 시대라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대를 꾸짖고 계심을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 준다.
내가 나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평가가 있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수많은 이들이 내가 나이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평가를 받습니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 그 사람이 이것을 원하니까 그렇게 해줍니다.
내 선택이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그 행동을 맞춘 것입니다.
내 선택이 상대의 소망에 달리게 된 것입니다.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러링, 상대가 나에게 이렇게 행동하고 있기에 내 선택도 그에 따라갑니다.
내 선택이 상대의 행동이 달리게 된 것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 것이라고요? 아닙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창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창조성을 통해 우리 인간은 이유없이 사랑이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이유없는 사랑으로 사회가 구성된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이유 없이 사랑할 수 있기에 그 사랑의 관계가 커져서
서로 부족한 것을 지킬 수 있던 것입니다.
사랑하다보니 서로 돕는 관계가 된 것이지 돕는 것이 먼저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남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을 내려놓고 자신의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남의 실수를 용서하고 남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이 실수를 하고 그것을 용서받고
자신의 길에서 부족한 것을 남에게 받습니다.
모두 각자 자신의 삶을 살아가다보니 해결된 것입니다.
완전한 거래관계로 시작된 것이 아닌
살다보면 도움도 받고 살다보면 도와주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서로 필요한 것을 돕게 된 것이 사회인 것입니다.
늘 이야기하지만 예수님의 복음은 새로운 것이 아닌
우리가 이미 가진 것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모험이 아닌 이미 실현 가능한 것을 지시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사랑할 이유가 없이 사랑하는 것,
오로지 자신의 선택으로 사랑하는 것, 온전히 자신의 삶입니다.
남이 변하길 바라며 남에게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삶이 아닌
내가 사랑하여 상대가 사랑하게끔 하는
내가 주도하는 삶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렇게 나약한 이들이 많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이 스스로 선택하여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십시오.
즉 그들이 사랑을 느끼도록 사랑하십시오.
또한 남이 그랬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여 사랑하는 삶을 일러주십시오.
그것으로 그들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을 남에게 맡기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자유의지를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나의 선택은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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