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관리인으로서 하느님과 같이 움직이고 충만해지십시오.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9-07 08:27:18  ... 조회수(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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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간 금요일]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2018.9.7

 

제1독서  <주님께서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코린토 1서  4,1-5

복음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 루카  5,33-39

 


 

관리인으로서 하느님과 같이 움직이고 충만해지십시오.

 

 

누구든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무릇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바는 그가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시종으로서

하느님의 신비를 관리해야하는 관리인으로서 살아갑니다.

또한 우리는 그 관리의 의무를 다해야합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하느님께 이끌어야하고

하느님의 뜻이 그 사람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이에 대해서 우리가 종종 목표를 잘못 알고서 잘못된 행동을 하곤 합니다.

주의 사항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리 심판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어떠한 악한 성향을 보더라도 그 악한 성향을 바꾸려 들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아들을 교육한다고 할 때 우리는 그 문제아를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또한 우리가 악인들에게 설교할 때 우리는 그 악인은 바꾸려고 노력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시도들입니다.

아무리 그런 시도를 하더라도 문제아들은 변하지 않고 악인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하는 많은 아동 단체들이나

교도소 같은 곳은 필요 없는가?

사실 그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도 절대 그들을 바꾸고자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패를 안타까워하지만 실패했다고 절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꾸고자 노력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들이 악인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악한 길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서 안타까워하지만

그들을 바꾸겠다는 다짐이 아닌 도와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절대로 타인에 의해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관리인의 직무를 다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무를 다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제시하신 것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가 관리인으로 의무를 다하는 것은

새 포도주에게는 새 부대가 되어주는 것이고

헌 포도주에게는 헌 부대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그 사람에게 맞추어주는 것이 아니라

새 포도주가 새 포도주로서의 가치를 빛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고

헌 포도주가 헌 포도주로서의 가치를 빛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새 포도주를 새 포도주로 못보고

헌 포도주를 헌 포도주로 못 봅니다.

우리가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지금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면서 뒤만 바라보니

앞으로 나아가는 쟁기는 보지 못합니다.

또 정반대로 앞에 커다란 돌이 있으면 어떻하지? 하면서

쟁기를 계속해서 멈춥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쟁기가 어떻게 나아가야하는가를 보지를 못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두신 이유가 있고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단식에 대해 지적하신 것도 그런 것입니다.

이유가 생기면 단식할 것이다.

그러면 정 반대로 왜 지금 단식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을까봐? 미래에 어떤 죄를 지을까봐?

단식은 자신이 부족한 것을 단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절제를 훈련하는 것이며

슬픔을 표현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기도든 그 전제는 언제나 현실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타인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으니까 이렇게 바뀌어야한다,

과거만 바라보고 그 사람의 현재는 바라보지 못합니다.

저 사람이 이러면 어떻게 하지? 없는 미래를 바라보고 그 사람의 행동에 대비합니다.

그러면 집중한 과거와 미래가 지금의 현재를 편견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과거를 바라보는 이들은 멈춰진 이들이며

미래를 상상하는 이들은 공허한 이들입니다.

멈춰진 이들과 공허한 이들이 바라본 현재는 편견이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시간인 오늘은 움직이며 충만하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관리해야하는 시종들이 멈춰있고 공허하다면

그들이 관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움직여야하고 충만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합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든지 세상 법정에서 심판을 받든지,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내가 과거에 죄를 지어서 실패했습니다.

죄를 지었기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시금 옳은 선택을 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는 없습니다.

다가온 오늘에서의 나는 아무런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 죄를 짓지 않겠다는 보장도 없고 맹세도 할 수 없지만

그것을 심판하고 바른 길로 이끄실 분은 주님,

내 안에 계신 성령인 것입니다.

우리가 타인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죄를 지었다는 것으로 또 죄를 지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닌

당장 오늘을 살아가는 그 사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타인을 관리할 때

그 사람이 죄를 지은 과거에 멈추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에 공허해지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

그 사람 자체로서 움직이며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움직이고 충만해지는 것은 그 사람 선택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람이 그렇게 움직이고 충만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시종들입니다.

우리의 일을 성실하게 임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것을 바라보실 것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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