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스승도 한마리의 어린양입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8-31 08:17:02  ... 조회수(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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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간 금요일]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2018.8.31

 

제1독서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 코린토 1서   1,17-25

 

복음   <신랑이 온다. 신랑을 맞으러 나가라.>

✠ 마태오   25,1-13

 


 

스승도 한마리의 어린양입니다

 

다양한 관계 속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 다른 나라는 모르겠고 조선시대를 생각해보면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무조건적으로 제자가 스승에게 복종하고 따르는 형태는 아니었습니다.

일제의 주입식 교육의 잔재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왜곡이 된 것입니다.

주입식 교육은 스승이 알고 있는 것을 제자에게 그대로 전해주어야 했기에

제자는 스승의 이야기에 반론을 해서도 안 되고 받아들여야만 했죠.

일제가 우리 조상들께 조선은 하찮은 나라라고 가르치려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조선시대의 스승과 제자관계를 생각하면 훈장과 아이들의 관계를 생각하는데

사실 그 관계와 스승과 제자 관계는 달랐습니다.

훈장은 가르칠 훈 길 장을 사용하여 가르치는 어른이었지 스승은 아니었습니다.

스승이라 불리던 이들과 제자의 관계는

학교에서 배우는 사이가 아닌 서로 각자 공부하며

서신을 통해서 종종 제자가 스승에게 질문하고 답해주는 형식이었죠.

이런 편지들을 보면 스승이 무조건 위는 아니었습니다.

퇴계 이황의 경우 어떤 학설을 내세웠더니 그의 제자가 반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맞다고 퇴계 이황이 이론을 수정한 적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조선시대에서는 스승 또한 배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군가를 가르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우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요즘 들어 탐구적인 학문이 아닌 주입식으로 배우는 공부가 늘어나다보니

스승은 영원히 스승이고 제자는 영원히 제자인 경우가 많아집니다.

윗사람은 무조건 지혜롭고 아랫사람은 무조건 배워야하는 사람으로 여기곤 합니다.

그래서 윗사람은 완전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그 사람이 부족한 면을 보이면 욕을 하기 바쁘고

일단은 윗사람을 완전한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나를 가르치는 이는 완전한 사람이어야하고

내가 어떤 사람을 가르치니 나는 완전한 사람이다

혹은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착각합니다.

오늘 바오로는 이러한 유대인들의 태도를 지적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바오로가 선포하는 것은 완전함이 아닙니다. 최악의 저 밑바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입니다.

 

교황님께서는 이에 대해 확실히 지적하십니다.

교황님께서는 “사제도 한 마리의 어린양임을 기억하십시오.”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제들은 교회에서 사목자 즉 목자, 스승으로 불리는 이들입니다.

그들이 인간임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들에게는 그를 완전한 사람으로 여기지 말고

사제들에게는 자신이 완전한 사람이라는 자만을 갖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완전한 지혜는 하느님이시며 우리는 그와 함께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그 지혜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도 이를 지적하십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

지혜로운 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 학자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의 논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세상은 하느님의 지혜를 보면서도

자기의 지혜로는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 배울 때 가르치는 사람을 선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선생은 앞서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어떠한 삶에 있어서 나보다 앞서서 살아왔고 나보다 적응이 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보다 노하우가 더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군대에서는 어떠한 문제가 생겼을 때

위로 보고를 철저히 할 것을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이등병이 처리할 수 없는 일을 상병이 쉽게 처리하고

상병이 처리할 수 없는 일을 분대장이 쉽게 처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구조와 방식을 잘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면

그것이 선생인 것입니다.

선생은 더 적응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더 적응해야하는 사람입니다. 더 탐구하고 더 배워야할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자신을 따르는 누군가가 있다고 하여

자신을 스승으로 여기고 완전한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이를 기억해야합니다.

내 제자의 등불이 밝게 빛나고 있다하여 나의 등불이 밝게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옆의 빛 때문에 내 빛이 꺼진지도 모르고

내 기름이 떨어진지도 모른 채 있다가 내쳐지는 존재가 됩니다.

그 때 제자의 등불을 이야기해도 그것은 나의 등불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 등이 꺼져 가니 너희 기름을 나누어 다오.’

 

참으로 안타까운 말이 있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의지할 사람보다 내가 책임질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렇게 젊을 때는 슬기롭게 등불의 빛을 밝히던 이들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신의 기름을 잃어가며 그 불을 살리지 못합니다.

저는 이에 좀 더 말하겠습니다.

지혜롭게 되는 것은 나 스스로 타인에게 의지하는 법과 책임지는 법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릴 때는 나의 책임이 작습니다.

이때 나는 작은 책임부터 배워가며 점점 자신을 높여 책임지는 법을 배웁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내가 쌓은 것 때문에 타인에게 의지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이때 나를 낮추어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내 마음의 등불의 기름은 나 스스로 채울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지해야합니다. 계속해서 배워야합니다.

그러면 동시에 나의 기름이 풍부해져 나를 따르는 이들의 기름을 책임질 수 있게 됩니다.

오늘 하루 성찰해봅시다. 나의 기름은 어떻습니까?

내 것이 많다고 나누어주는 여러분 기름이 제대로 들어오고 있습니까?

남에게 기름을 더 달라 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이 달라는 그 사람이 기름을 풍부하게 해주었습니까?

사람은 유한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려면 어디선가 받아야합니다.

받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미 주님께서 주변에 기름을 받을 곳을 수없이 마련하셨습니다.

 

주님의 자애가 온 땅에 가득하네.

 

형제 여러분 여러분 삶의 자리 어디서든 배움의 자세를 잃지 마십시오.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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