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랑받고자 하면 사랑받을 환경을 만드십시오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8-29 09:52:38  ... 조회수(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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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

<너는 허리를 동여매고 일어나라>

2018.8.29

 

제1독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

▥ 예레미야서  1,17-19

복음  <당장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 마르코   6,17-29

 


 

사랑받고자 하면 사랑받을 환경을 만드십시오.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저에게는 한 가지 원칙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다.” 입니다.

농담이 아니고 저는 초,중,고 12년간 학원 하나 안 다니고

학교 끝나면 완전 놀자판으로 놀았죠.

생각해보면 제 교과서나 문제집은 집에 온적이 없었습니다.

이 원칙으로 저는 수능 전날에도 집에 와서는

문제지 한 번 안보고 약간의 게임을 했습니다.

저는 가장 편하게 고3 생활을 보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즐긴 건 다 즐기고 살았죠.

물론 인서울은 아니지만 원하는 학교에 들어갔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만 하라 그러는 부모님에게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조언할 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네가 당당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서 네 맘대로 하라고 말이죠.

고등학교 당시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누워서 휴대폰 게임을 하던 저에게 어머니가 한 번 뭐라 한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해서는 저는 침착하게 반론했습니다.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잘 듣고 보충이나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놀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공부한다. 나는 지정된 시간에 학생의 본분을 다했고

그 외의 시간에는 휴식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저희 부모님은 저를 믿어주시고,

그 다음 부터는 게임관련 잔소리는 더이상 없었습니다.

 

의무를 다해서 내 권리에 대해 아무도 못 건들게 한다.

이것은 여전히 제 원칙이긴 합니다.

귀찮더라도 최소한의 의무라도 하고서 제 권리를 누리려 합니다.

사실 이건 제가 성실하기 때문에 의무를 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다른 사람을 제멋대로 다루는 것은 힘든 일이며

그게 가능하더라도 꽤나 큰 희생과 대가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다루는 것은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조종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입니다.

예시를 들어보자면 여러분 앞에서 어떤 사람이 칼을 들고 당신을 찌르려 한다면

그 사람이 오기 전에 감수성을 자극하여 관두게 하는 것이 확실한 방법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오기 전에 여러분이 방패를 만드는 것이 확실한 방법입니까?

오늘 독서를 바라보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원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의 공격을 자체를 없애는 것이 아닌 여러분 자신을 강하게 하도록 하십니다.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

 

노예제도가 반인륜적 행위라고 판명된 지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노예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을 많이 합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사람들이 옹호해주길 바라며

자신이 힘들면 배려해주길 바라며

내 모든 행동에 도움이 되도록 옹호하고 재능기부해주길 바랍니다.

내 사정을 알아주길 바라며, 내 사정에 맞추어

다른 사람이 행동하는 노예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자신 외의 모든 것이 자신이 노예가 되어주지 않은 것에 실망하며 세상이 각박해졌다,

세상은 썩었다 하며 타인을 탓하며

타인을 어떻게 해서든 내 말에 따르게 하려 합니다.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면 그 사람에게 인정이라도 받으려 하죠.

내가 높아지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타인을 노예로 만들려는 이들은

스스로 타인의 노예가 되어갑니다.

마치 헤로데와 헤로디아처럼 말이죠.

오늘 복음을 바라보면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스스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타인을 이용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는 그런 모습을 드러냅니다.

딸을 이용해야 세례자 요한을 죽일 수 있었고

헤로데는 타인에게 신경쓰다보니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자신의 권위 때문이었습니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이의 사랑을 바라는 이는 다른 이에게 의존합니다.

그러나 자기 스스로 사랑을 실천하는 이는 자기 자신에게서 권위가 나옵니다.

물론 타인의 사랑으로 면담에서 이루어지는 이해와 존중으로

자신의 권위를 다시 살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신이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타인이 나를 사랑하게 하기 전에 타인이 나를 사랑하도록 사랑하십시오.

사제도 한 마리의 어린양이라고 하셨던 교황님 말씀대로

여러분이 사랑하길 바라는 그도 유한한 인간입니다.

여러분이 사랑을 주지 않으면 한계가 오는 이들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사랑하길 바란다면

사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여러분 마음대로 하십시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 받고자 하는 이는 인간을 서서히 죽음으로 이끕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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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08/29 12:3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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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아기jejus모바일에서 올림 (2018/08/29 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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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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