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신앙은 삶을 변화시켜주지 않습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8-26 06:53:40  ... 조회수(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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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1주일]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2018.8.26

 

제1독서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 여호수아기   24,1-2ㄱ.15-17.18ㄴㄷ

제2독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이는 큰 신비입니다.>

▥ 에페소서 5,21-32

복음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 요한   6,60ㄴ-69

 


 

신앙은 삶을 변화시켜주지 않습니다.

 

신앙인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하루하루가 새롭습니까?

아니 사실 세상 사는 건 전혀 안 변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언가 마음의 짐이 더 씌여졌을 것입니다.

무언가 세례 받을 때는 모든 것이 잘 풀릴 것 같았지만 정작 그렇지 않고

성당에 잘 못 나가고 복음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못하니 마음의 죄책감이 생깁니다.

그래서 성가에서 이런 가사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몰랐더라면 더욱 편했을지도 모르는 그런 세상이지만"


성가 “마음을 드높이”의 일부 가사입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길은 행복한 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신앙은 실제로 삶을 더 힘들게 하면 했지 편하게 만들어주진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기도하면 만사가 풀리고 걱정 하나 안하고 살 생각하며 하느님의 힘을 믿는 이들에게

절대로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기 마련입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에게 신앙이 없다면 세상에서 들려오는 다수의 의견을 택합니다.

세상에서 흘러가는 데로 살게 됩니다.

실제로 이렇게 살면 행복은 둘째쳐도 편합니다.

괜히 생각할 필요 없고 나를 드러낼 필요도 없이 자신만 챙기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신앙을 가지게 되면 다른 선택지가 나타납니다.

소수가 주장하는 선택지, 다수가 아닌 한 분이신 하느님의 제시하는 길입니다.

이 소수의 선택지를 택하기 위해서는 다수에게 맞서야하는 길입니다.

익명으로 맞설 수 있는 길도 아니고 누구를 대리로 세울 수도 없으며

나의 본모습으로 맞서야하는 길이죠.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많은 이민족들 신 중에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선택하는 것과 같이 말이죠.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신앙은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주지 않습니다. 단지 작은 선택지를 하나 줄 뿐입니다.

세상의 모두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선택지를 말이죠.

잘 보이지도 않을 뿐더러 결코 편하지 않은 선택지이며

선택하면 반드시 당장 불이익이 돌아올 선택지를 줄 뿐입니다.

언제나 자신을 성찰하고 나를 희생하며 다른 이를 사랑하는 선택

폭력을 쓰는 이에게 폭력을 쓰지 않고 거짓을 말하는 이를 거짓으로 대하지 않는 선택,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주지 않으시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선택,

온갖 불행이 널려 있으면서도 생각을 바꾸라 이야기해도 바꾸지 않는 선택

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앙은 이를 제시합니다.

바오로가 설명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도 남편은 자기만 생각하면

 

내가 대장으로서 권위를 누려야하고 아내는 남편의 돈만을 기다리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런 기본적인 상황에서 다른 선택,  사랑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그런 선택을 합니다.

그들의 머리에는 논리의 구조가 없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생각할 줄 알고 분석할 줄 압니다.

신앙인들은 사랑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보았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도 관계 속에서의 사랑을 창조해내란 것이 아닌 본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순명과 사랑 중 무엇이 먼저 이루어졌냐 한다면 사랑이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시어

우리가 납득하여 예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하시어 순종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인은 보지도 못한 것을 납득하지도 못한 것을 예하고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진정한 신앙인은 먼저 하느님을 뵙고 납득한 것을 예 하고 순명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받으려 노력합니다.

우리가 하느님 이름만 붙이고 눈에 보이는 데로 막 나가는 것은 신앙의 선택지가 아닙니다.

잠시 멈추어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그 작은 선택을 찾는 것이 신앙의 선택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삶의 여행길에서 어디서 왔고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가 목적지인지는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여행길에서 선택할 뿐입니다.

안전해 보이는 이집트로 갈 것인지,

죽음의 땅인 광야로 부르는 불기둥을 따를 것인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신앙은 세상을 따르는 이들 안전을 따르는 이들에게 거북한 말을 건냅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떻게 들리십니까? 여러분은 삶에서 어디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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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rood (2018/08/26 12: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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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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