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위선자-사랑의 가르침으로 사랑이 아닌 폭력을 휘두르는 이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8-21 23:34:48  ... 조회수(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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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불행하여라,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

2018.8.22

 

제1독서 <나는 내 양 떼를 그들의 입에서 구해 내어 다시는 그들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하겠다.>

▥ 에제키엘   34,1-11

복음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

✠ 마태오   20,1-16

 


 

위선자-사랑의 가르침으로 사랑이 아닌 폭력을 휘두르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좋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정의를 외치는 말도 많고 진실을 위한다는 말도 많습니다.

선을 행해야하고 예의범절이 존재하며 매너가 있습니다.

호의를 베푸는 미덕도 많고 다양한 배려를 보여주는 사회의 모습은 보기 좋습니다.

이 세상을 잘 둘러보면 우리가 본받고 배울 수 있는 그런 스승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수많은 선행의 가르침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옳은 것을 많이도 배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는 여전히 폭력이 가득하고 그로 인한 불행이 만연합니다.

사람들은 불행에 빠지지만 행복을 향한 가르침을 찾지 않고

오히려 그런 많은 가르침들이 지겹다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는 가르침 받은 이들의 폭행 때문입니다.

그런 폭행 중에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알려드립니다.

'집에 들어갈 때 신발장을 보면 가정교육상태를 알 수 있다.'

일명 배운 이들이 남의 집에 방문했을 때 하는 폭행입니다.

청소를 깔끔하게 해야지 좋은 환경을 만들어내고

그 좋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좋은 모습을 나타내는 것은 맞습니다.

마치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깔끔한 데에서는 왜곡되기가 어렵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 여러분을 심판관으로 임명된 증서는 아닙니다.

많은 스승들은 제자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의 목적은 너가 하라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심판관이 되라고 하는 가르침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것을 가르쳐주셨고

하느님께서도 율법을 통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네가 하라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심판관이 되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운 가르침으로 다른 이에게 왜 하지 않냐고 이야기하는 것은

가르침을 통해 폭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폭행을 하는 이유는 폭행을 하면 내가 다른 이를 짓밟고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집에 온 손님이 “집에 들어갈 때 신발장을 보면 가정교육상태를 알 수 있다.” 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손님이 아닌 주인을 감사하러 온 심판관이 됩니다.

이러한 폭행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자기들만 먹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목자가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젖을 짜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으며

살진 놈을 잡아먹으면서, 양 떼는 먹이지 않는다.

너희는 약한 양들에게 원기를 북돋아 주지 않고

아픈 양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부러진 양을 싸매 주지 않고 흩어진 양을 도로 데려오지도,

잃어버린 양을 찾아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폭력과 강압으로 다스렸다.

 

우리의 복음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사랑으로 일깨워 사람답게 살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 복음의 가르침으로 사람을 종으로 만드는 이들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보이는 따뜻한 선행 이야기들로 세상을 차갑게 만드는 이들이 많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호의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호의가 계속되면 둘리가 된다.”

둘리가 호이호이 하며 마술을 부려서 저런 농담이 나왔지만

진짜 이유는 둘리의 내용에 관한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고길동에게 시달리는 둘리가 불쌍하다고 하지만

어른이 되고 보면 둘리에 대해 재평가가 됩니다.

오히려 고길동이 불쌍하고 보살이라는 평가가 나오죠.

어른이 돼서 보니 둘리는 불법침입에 추가로 친구들까지 데려와서 생활비를 축내며

그 가족에게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식객으로 살아갑니다.

게다가 가스 폭발시켜 집을 날리던가,

혹은 비싼 수집품을 허락 없이 가지고 놀다가 부시는 행각도 보이죠.

좀 커서 보면 둘리는 자신이 누리는 호의가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모습입니다.

저 농담을 진지하게 말하면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라고 말합니다.

호의는 대부분 가볍든 크든 희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 희생이 내가 누려야할 권리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호의를 베푼 상대는 나의 하인이 됩니다.


어떤 선행을 네 위치에서 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 사람을 하인으로 만드는 이들,

수많은 예의범절과 매너라는 이름으로 입의 혀를 꼬아버리는 이들,

이들은 세상의 수많은 선의 가르침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기본적으로 생명을 죽이는 것을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아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폭력의 수단인 세상의 다양한 가르침이 배척됩니다.

우리가 느끼는 상대에 대한 불쾌함, 대부분 무엇입니까?

아 저 사람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 것인데?

저 위치에서는 이렇게 해야지.

상대가 해야 할 행동을 규정했지만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우리는 불쾌합니다.

이 불쾌함은 정의의 갈망이 아닙니다. 단지 나의 이익을 위함입니다.

내가 좀 행복하길, 내가 기분 안 나쁘길 내 희생 없이 이득이 되길 바라는 욕망입니다.

오늘 주인에게 항의하는 이들은 정의를 외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의 중심에는

주인을 내 종으로 만들어 멋대로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맨 먼저 온 이들은 차례가 되자

자기들은 더 받으려니 생각하였는데,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만 받았다.

그것을 받아 들고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종들은 자신의 욕망으로 그 질서가 아닌 합의되지 않은 호의를 요구합니다.

아무리 그들이 옳다고 해도 호의는 주인의 몫입니다.

그가 호의를 베풀 것인지 아닌지는 그 사람이 정하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그 호의가 나한테 향할 수도 있고 다른 이에게 향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호의가 무조건적으로 나에게 향해야한다 생각하는 것

호의를 권리로 여기는 것은 사회악입니다.

이에 대해 주인도 확실히 선을 긋습니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형제 여러분 옳은 것이 있다면 여러분의 다른 형제에게 원하지 말고 스스로 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사랑을 통하여 눈이 먼 이를 보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며

혀가 꼬인 이들을 풀어주는 이들입니다.

종이 된 이들을 사랑을 통해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

즉 눈과 귀는 열려 배우며 그들의 혀는 '예'를 통한 순종을 하며

'아니요'를 통한 주장을 외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가르침 받은 대로 행하면서

그 가르침을 통해 심판을 한다면 그대가 바로 위선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사랑을 통한 해방의 복음이지만

그대는 그런 복음을 앞세워 족쇄를 채우기 때문입니다.

눈과 귀를 열어 수많은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십시오.

혀를 풀어 '예'할 것은 제대로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제대로 '아니오' 하도록 하십시오.

인형이 인간이 되는 기적 그것이 복음입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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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카엘라모바일에서 올림 (2018/08/22 19: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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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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