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사랑할 준비하다가 사랑을 못합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8-20 10:42:43  ... 조회수(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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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너희의 자랑스러운 힘이고 너희 눈의 즐거움이며

너희 영의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2018.8.20

 

제1독서  <에제키엘이 너희에게 예표가 되고, 그가 한 것처럼 너희도 하게 될 것이다.>
▥ 에제키엘    24,15-24

복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너의 재산을 팔아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 마태오   19,16-22

 


 

사랑할 준비하다가 사랑을 못합니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다.

동물과는 구분되는 인간의 보이는 특성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반적인 인간은 도구 없이 맨손으로 동물을 상대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과거 원시시대에 나약한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물과 달리 도구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지금 살아가는 현대에도 다양한 도구들이 인간을 돕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도와주는 도구들이 너무 유용해서 지배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안 그러신가요? 아닌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도구 없이 무언가를 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나요?

예를 들어 청소를 한다 하면 청소를 돕는 도구는

청소기 대걸레 손걸레 빗자루 쓰레받이 세제 등의 도구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이 도구들이 없이 청소를 하라 한다면 가능할까요?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도구에 지배되고 있지 않는지 고민해 보아야합니다.

가능하긴 합니다. 굉장히 힘들 뿐입니다.

왜 갑자기 도구에 지배되는 것을 잠시 생각해야한다면

우리가 조건에 지배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의무를 하기 위해서는 권리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하며

사랑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책임져줄 재력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하고

선행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넉넉함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하며

하느님을 뵙기 위해서는 어떤 기도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합니다.

조건에 지배되어가는 이런 환경에서 도구와 조건의 의존도는 높아지지만

하느님의 뜻은 멀어져갑니다.

도구에서 오는 희열로 도구를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심령기도을 통해

어떤 사람에게 당신을 밝히시어 그 사람이 굉장한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심령기도로 얻은 기쁨이라 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심령기도로 그쳐버립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아닌 심령기도를 섬기게 됩니다.

물론 그것은 하느님의 현존이 있는 것입니다.

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기뻐하는 이에게 선언하십니다.

 

나 이제 너희의 자랑스러운 힘이고

너희 눈의 즐거움이며 너희 영의 그리움인 나의 성전을 더럽히겠다.

 

심령기도를 믿는 이에게는 심령기도를 빼앗고

재력을 믿는 이에게는 재력을 빼앗습니다.

이것이 영적 메마름입니다.

이 메마름은 정말 갑작스럽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완전해지기 위한 작업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만나신 젊은이는 돈이라는 조건을 통해 율법을 지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메마름을 느낍니다.

그의 마음에 담긴 것은 충만함이 아닌 아직 무언가 부족하다 느낀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제가 다 지켜 왔습니다.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
 

그 사람은 부족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충만히 누리지 못했습니다.

분명 자신은 율법을 잘 지키고 그럴 환경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청소를 하려 하는데 청소도구는 수없이 모여있습니다.

그런데 청소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청소를 하는 당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율법을 지키고,  많은 이들을 도울 재력을 지닌 젊은이였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젊은이는 없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 젊은이가 돈 많은 이로서 하느님을 따르는 이가 아닌

그저 인간으로서 하느님을 따르는 이가 되도록 젊은이를 초대해주십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


많은 이가 메마름을 느끼고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자신이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정해야합니다.

도구를 사랑하여 모은 적은 있어도 하느님을 사랑한 적은 없는 것입니다.

청소를 한다 하지만 청소하는 이 없이 도구만 모으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규정을 수없이 지키고 ,교회에 기부를 많이 하고, 선행을 많이 해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신이 없으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조건이 충족되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조건이 충족되면 또 다른 조건이 필요하고 그렇게 조건이 늘을 뿐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조건에서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어야합니다.

정의를 외칠 수 없는 조건에서 정의를 외칠 수 있어야합니다.

진리를 외칠 수 없는 조건에서 진리를 외칠 수 있어야합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을 사랑할 조건과 도구를 찾기 전에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기도하는 당신보다 응답하는 당신을 원하십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링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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