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하느님 나라는 부모와 같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8-18 08:20:37  ... 조회수(409)
    이 게시글이 좋아요 싫어요

[연중 제19주간 토요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2018.8.18

 

제1독서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 에제키엘    18,1-10ㄱ.13ㄴ.30-32

복음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마태오   19,13-15

 


 

나를 이해하라고 외치는 이는 상대에게 이해가 아닌 외치는 것을 가르칩니다.

 

여러분들은 살아가면서 자신과 입장이 다른 이들을 얼마나 만나셨나요?

제가 좀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 같네요.

사실 나랑 입장이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어렵죠.

당장 가족의 관계만 봐도 아이의 입장과 부모의 입장이 다르고

부모 안에서도 아버지의 입장과 어머니의 입장이 다르죠.

동상이몽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아무리 같은 위치에 있어도 생각하는 것이 다릅니다.

나랑 입장이 완전히 똑같은 사람은 찾기 힘듭니다.

생각이 비슷하면 함께할 뿐이죠.

다만 나랑 입장이 완전히 다른 이들과는 종종 부딪힙니다.

오늘 복음의 상황도 그런 상황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아이들을 데려온 사람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겠죠.

그들은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예수님께 와서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가족이든 직업이든

모두 내려놓고 온 이들입니다.

이 두 입장은 완전 다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입장이 더 중요한 것이죠.

제자들에겐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자신들이 더 중요하기에

그들은 중요치 않고 아이들도 중요치 않습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의 방해물일 뿐입니다.

예수님께 기도를 받고 싶은 그들을 이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시합니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그들의 입장을 무시한 것일까요? 예 무시한 것이 맞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가장 먼저 보기에

내 입장이 중요하다 느끼고 그런 의미에서 조금 더 나아가서

다른 이의 입장을 봐야한다고 입장을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입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입장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과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몸소 그것을 알려주신 것이 있습니다.

에르메스 론키 신부는 모세의 불순명을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하느님은 그들을 모두 죽이고 모세를 새로운 백성으로 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에 불순명합니다.

오히려 사랑과 생명을 선택합니다.

모세가 하느님의 입장보다 사랑과 생명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를 독성죄로 보지 않고 오히려 높이 평가하십니다.

에르메스 신부는 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제 백성을 택하겠습니다." 감히 인간의 열정으로 하늘에 도전합니다.

 

그런데 진짜 독성죄는 살아있는 사람보다 이론적인 진리를 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어떤 입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타인이 넘어지고 쓰러지게 하는 결과라면

그것은 사랑과 생명이 아닌 죄입니다.

다른 이가 스스로의 죄로 넘어지고 쓰러지는 것은 인과율이기에 어쩔 수 없지만

내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를 배척하고 나에게 굴복시키는 것은 죄입니다.

이런 죄는 타인으로 하여금 여러분을 굴복시키게 만듭니다.

참 아이러니한 현실들을 많이 봅니다.

사실 타인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

타인을 이해해야하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일부 결혼한 이들은 사제의 조언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너는 나와 입장이 다르니 나를 이해할 수 없다며

그들의 입장을 배척합니다.

그들은 결혼의 유무로 사제의 입을 막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대에게는 네가 내 입장이 되어보라고 이야기하면서

정작 자신은 타인의 입장을 짓밟고 자기 입장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내 말을 들으라고 외쳐도

여러분이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누가 여러분의 말을 듣겠습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타인에게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라고 외쳐도

당신 스스로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당신을 이해하겠습니까?

여러분이 타인을 굴복시키는데 타인이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겠습니까?

이는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습니다.

 

이 사람이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폭력을 휘두르고 남의 피를 흘리게 하면,

아들이 살 것 같으냐? 그는 살지 못한다.

이 모든 역겨운 짓을 저질렀으니, 그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가 죽은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상대의 악행에는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사랑과 생명에 귀를 막고 눈을 가리는 이는

사랑을 받지 못하고 생명도 위협당합니다.

여러분이 듣지 않는다면 상대도 듣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이 말만 한다면 상대도 말만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를 이해해달라고 외치면 상대도 나를 이해해달라고 외칠 것이고

여러분이 자비를 버리면 상대도 자비를 버릴 것입니다.

내가 한 행동은 상대에게 온전히 전염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자신의 자녀입니다.

아이들은 마치 스펀지 같습니다.

역시 어리고 젊으니까 눈과 귀와 입이 싱싱하게 살아있습니다.

다만 식별의 능력이 없기에 눈과 귀로 들어오는 것을 그대로 받습니다.

부모가 보여주는 모습이 귀를 닫는 모습이면 아이들은 귀를 닫고서 삶을 시작합니다.

부모가 보여주는 모습이 눈을 감는 모습이면 아이들은 눈을 감고서 삶을 시작합니다.

부모가 보여주는 모습이 입을 벌린 모습이라면

아이들도 입을 벌리고서 삶을 시작합니다.

부모가 보여주는 모습이 굴복시키는 모습이라면

아이들도 다른 이를 굴복시키며 삶을 시작합니다.

그런 삶의 시작은 죽음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사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귀를 닫으며 살았으면 귀는 퇴화되고

눈을 감고서 살았으면 눈이 퇴화됩니다.

입을 오랫동안 열어두면 턱은 입을 닫는 법을 잊으며

굴복시키며 살아왔으면 자비를 잊습니다.

그런데 삶의 시작부터 그런 아이들은 그 퇴화가 얼마나 빨리 진행되겠습니까?

퇴화된 이들이 죽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괴롭습니까?

하느님께서는 걸어갈 길에 대한 자유를 주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길의 책임을 지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집안아,

나는 저마다 걸어온 길에 따라 너희를 심판하겠다.

이스라엘 집안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으려 하느냐?

나는 누구의 죽음도 기뻐하지 않는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그러니 너희는 회개하고 살아라.”

 

회개는 무엇입니까? 퇴화된 것들의 제 기능을 되찾으라는 것입니다.

눈은 사랑을 볼 수 있고 귀는 생명을 들을 수 있으며

입은 사랑과 생명의 말만 할 수 있을 때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볼 수 있고 세상을 들을 수 있는 이들은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의 법칙을 발견합니다.

그 법칙에 어긋나는 죄의 법칙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많은 간접 경험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과 생명에 눈과 귀가 닫으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습니다.

보고 듣기 위해 입은 필요한 말만 해야 하는 이,

하느님 나라는 그들에게 가까이 있습니다.

사실 하느님 나라는 부모와 같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듣고 보는 이가 있는 반면

일찍이 귀를 닫아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아 보지도 못하는 이들이 있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의 사랑의 법칙을 찾는다는 목적으로 입을 침묵해보십시오.

여러분의 눈과 귀가 지혜를 보여줄 것입니다.

그 지혜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내 입장을 말하기 전에 사랑과 생명을 찾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사랑과 생명을 또 미움과 죽음을 보고 듣는 습관을

또 사랑과 생명만 말하는 습관을 가지십시오.

하늘 나라는 그런 이들에게 가까이 있습니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 마리아사랑넷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4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