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자신의 생각이 아닌 복음을 믿으십시오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8-06 07:12:57   ... 조회수(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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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2018.8.6

제1독서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었다.>

▥ 다니엘   7,9-10.13-14

제2독서   <우리는 하늘에서 들려온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 베드로 2서   1,16-19

복음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 마르코   9,2-10

 


 

그리스도인 여러분, 자신의 생각이 아닌 복음을 믿으십시오

 

소문이란 것이 참으로 무섭다고들 합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가기 때문에 소문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나는 분명히 A를 말했는데 소문이 돌고 돌고 돌아서

내가 Z를 이야기하였다고 소문이 나기에 참으로 무서운 것이지요.

내가 A라는 행동을 했는데 소문이 돌고 돌고 돌아서

내가 Z를 했다고 소문이 나있으니 무서운 것입니다.

분명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 되어있기에

분명 내 명예가 아닌데 내 명예가 되어있고

분명 내 죄가 아닌데 내 죄가 되어있기에

소문이란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럴 때 두 가지 감정이 듭니다.

참 경이롭습니다. 소문을 거친 이들의 창의성이 놀라워요.

이걸 요약해서 기가 막힌다고 하죠.

그리고 짜증나죠. 내 것이 아닌데 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말이죠.

하느님께서도 자주 그런 기분이 드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게 말하면 경이롭고 나쁘게 말하면 기가 막히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난 분명 내가 A라고 했는데 얘는 내가 Z라고 이야기 했다면서

나를 잘 안다고 이야기하네? 그렇기에 하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집주인이 일어나 문을 닫아 버리면,

너희가 밖에 서서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그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하고 너희에게 말할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교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성당을 술판으로 만들러 오는 이들도 많고

성당을 폭행과 모욕이 가득한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러 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느님을 제쳐두고 자기 형제를 외면하고서 친한 이들과 수다 떨러 오는 이들도 있고

사목회, 울뜨레아, 은사자 등 일부 권력을 쥐고서

바리사이처럼 내가 특별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들도 많고

그냥 나오라니까 나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의 그냥 나오라 해서 나오는 이들이 가장 죄가 적습니다.

그들의 죄는 하느님의 말씀을 제멋대로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나는 한 영적지도자를 기억합니다.

그 지도자가 수난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지도자의 설명을 들으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정말 가볍게 표현했다고 느낄 것입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수난이 영화 “파이널 데스티니”와 같은

자극의 극치를 달리는 이야기로 들었습니다.

가장 가벼운 표현으로 예수님께서 한 쪽에 못이 박히셨는데

반대편에 못 박는 곳이 닿지 않기에

병사가 팔을 잡아당겨서 예수님 팔이 탈골되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성경에 어디 그런 표현이 있습니까?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또 사도들이 성모님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금 당신이 교회의 수장'이라고

이야기했다 하며,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가

성모님께 눈치 보여 교회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성모님께서 교회에서 그런 권세를 부리셨다는 것을 어디서 이야기한 것입니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신자들은 울고 감동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복음을 믿지 못하고 신자들에게 감동만을 중시한 나머지

복음이 아닌 허구를 전하는 영적지도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많은 이들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신앙이 깊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하느님의 이름만 갖다 붙여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 모든 행동이 자신과 많은 이들의 신앙을 깊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슷한 상황에 대해 암브로시오 성인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비가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엄격함과 준엄함이 있는 곳에는 하느님의 사도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은 계시지 않습니다. -성 암브로시오-

 

자비가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지만

그 자비를 무시하고 교회의 위신을 효율적으로 지킬 수 있는 엄격함과 준엄함에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다니는 사도들이 있을지언정 하느님께서는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행동을 통해서 나의 신앙과 다른 이의 신앙이 깊어진다고 생각하고

하느님께 감사함이 커지고 스스로 회개함이 커진다고 합니다.

그것의 진실은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깊어지는 것이 아닌

내가 만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깊어지는 것이며,

내가 만든 하느님께 대한 감사가 커지고,

그 하느님께 회개하는 것이 커지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변모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 때 베드로는 이 기적을 보면서 예수님께 이렇게 청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이런 베드로의 말을 잘랐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기적의 순간의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려 했던,

나도 모르게 나온 나의 것을 남기고 싶은 그 욕망을 막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의 것을 섞고자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내 멋대로 해석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욕망을 막아 세우시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예수님께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이셨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드님이셨습니다.

자신의 말을 선포하는 이가 아닌

아버지께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시는 분이셨습니다.<요한 5.19>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지만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전하시는 분이었습니다.<요한 8.26>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은 사람의 아들이

오직 연로한 분께 받은 것을 통해 통치하신다는 것을 증언하였고

베드로 사도도 자신들이 전하는 복음이 사람이 지어낸 신화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것이며 그것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재림을 알려 줄 때,

교묘하게 꾸며 낸 신화를 따라 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위대함을 목격한 자로서 그리한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아까 베드로가 그러하였다고 했듯이

우리도 무언가를 들으면 당장의 판단에 나의 것을 섞어서 들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를 막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방침에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사도들은 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게

무슨 뜻인가 논의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까? 저는 아니라 봅니다.

우리는 모르기에 그런 왜곡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 말에 대해 사도들처럼 한 번 논의해봅시다.

베드로 사도는 이 조치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날이 밝아 오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

어둠 속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의 수많은 생각들이 가라앉은 어둠의 순간에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침묵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모두 죽은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살아날 때

그 때서야 우리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 자신은 지금 어떻습니까?

내 생각을 전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멋대로 일하고 거기에 하느님의 이름과 교회의 이름만 붙이고 있습니까?

교회의 왜곡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으로부터 옵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들을 모두 죽이십시오

아니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죽이고 다시금 복음을 들으십시오

각색하지 말고 허구의 것을 넣지도 말고 과장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의 복음을 믿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선포하십시오.

네이버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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