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8주일]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2018.8.5
제1독서 <내가 하늘에서 너희에게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리라.>
▥ 탈출기 16,2-4.12-15
제2독서 <여러분은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합니다.>
▥ 에페소서 4,17.20-24
복음<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 요한 6,24-35
감사해야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사랑도 복음전파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한 학생이 노인 요양시설에 2박 3일 봉사활동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하고 집 안 분위기도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봉사활동 끝나면 자살할 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봉사를 하니 정말 대충했죠.
요양시설에서 긴 기간 봉사하거나 일하신 분들은
봉사 와서 대충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대충 아실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침대에 누우신 할아버지가 자신을 부르시더니
이렇게 더운 날 와서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셨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학생은 자살하겠다는 마음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난 그런 감사를 받을 자격이 없는데
그저 함께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시는 할아버지께 너무 미안하고 감사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한 감사는 합당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그 학생은 할아버지께 무언가를 해드린 것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한 할아버지의 눈먼 감사는
죽음을 다짐했던 한 학생을 생명으로 되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생각에 감사는 사람이 받은 것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우리가 팔다리가 모두 없다고 하더라도
뇌가 반쪽이 날라 갔더라도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복음전파입니다.
우리 세상에는 감사해야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감사해야할 것이 너무나 당연시 되어갑니다.
생명이 있는 것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감사히 여겨야하는데 너무나 당연시 되어갑니다.
왜 감사해야할 것이 당연시 되어갈까요?
익숙함도 있지만 감사의 전제조건에
'공짜'라는 전제조건이 붙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사장과 직원의 관계면 사장은 넌 내가 돈을 주고 일을 시키기 때문에
너와 내가 함께하는 이유는 당연하고 감사할 일이 아니라 여기는 것입니다.
학생의 경우엔 학생의 의무라는 이유로 학교에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군대의 경우에는 애국심과 의무라는 이유로 군대에서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됩니다.
믿음의 공동체에서는 신앙이라는 이유로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됩니다.
그것이 전혀 감사할 일이 아니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봅시다. 다만 이 예시로 드는 것은 죄는 아닙니다.
생명이 없는 것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탁기를 집에 새로 들여놨을 때 과거 손빨래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세탁기는 참 감사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당연해지면 효율을 따지게 됩니다.
물 낭비를 줄이는 법을 생각하고 더 깨끗하게 빨래가 되는 법을 궁리를 합니다.
세탁기야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연한 대상이 자연이 되면 환경파괴와 자원 낭비로 이어지고
그것이 동물이 되면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로 동물학대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사람이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저비용으로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으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상대가 내 마음대로 저비용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여줄 때가 되어야지
감사할까 말까해집니다.
즉 일을 잘해야 감사할까 말까하고,
내 말대로 움직여주어야 감사할까 말까 수준이 됩니다.
당연한 게 하느님이 된다면 내가 기도하고 믿어주었으니
나에게 은총을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이는 하느님의 일을 묻는 동시에 내가 믿을 수 있도록 무얼 해 줄거냐고
예수님과 거래를 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내 주변에 사람이 있다는 것,
내 주변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무언가가 있다는 것,
주변에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에 감사하지 못하고 내 멋대로 다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자연현상에도 감사해야함을 보여주십니다.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제가 어떤 책에서 읽은 것이 이 만나와 메추라기 떼의 기적은
과학적으로 증명 가능한 자연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 중 하나라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저 자연환경이니 하느님과 관계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우리 인간들도 이해할 수 있는 자연의 법칙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 자연 법칙들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정말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자연의 법칙에 대해 감사하며
그 자연법칙을 만드신 하느님께도 감사를 올려야한다는 것이
이 독서에서 나타나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도 지적하십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그러나 이런 감사들이 너무나 당연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 대상이 사라지고 나서야 좋게 말하면 그 대상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감사함은 세탁기에게 느끼는 감사정도입니다.
즉 고장 나서 그 역할을 못할 때
그 대상의 소중함을 느끼고서 수리를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것은 오늘 예수님처럼 대처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느끼는 감사이며
내 이익을 위해 다시 되찾아 와야 한다는 욕심입니다.
만약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과 대처 가능한 무언가가 있었다면
이들은 예수님을 쫓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물건 정도에게 바치는 감사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감사지만 예수님과 같이 대체품이 없는 경우에는 쫓아와서 되찾으려 합니다.
그런데 대체품이 있는 경우엔 어떨까요?
만약 예수님과 같이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과 달리 사람들 앞에 나서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을 갈아치웠겠죠.
똑같은 효율에 저비용 즉 내가 쫓아다녀야하는 노력이 줄어드니까요.
우리의 사회를 살펴봅시다.
“당신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 라는 사람도 많고
자신의 자식을 그 다른 자식과 바꿨으면 하는 욕망인지 비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학생도 불량학생은 그저 무시하고 모범생만 챙기면 그만입니다.
불량학생은 그저 퇴학이나 전학이라도 갔으면 좋겠다 싶어 합니다.
부모를 다른 부모와 비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비교를 한다는 것 자체는 감사를 잊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비교하는 이유도 깊은 이유도 아니고
당장의 만족을 채워주지 않기 때문에 감사를 잊고 그런 행동을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형제 여러분,
제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말하였듯이 감사는
우리의 사랑을 가시화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입니다.
내가 팔다리가 없더라도
나의 뇌가 반이 날라갔더라도
내가 당장 죽을 지경에 이르렀어도
사람으로 하여금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감사입니다.
우리의 고급 진 감사의 수준을 낮추어주십시오
받아야지 감사해야하는 그 감사를
내가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야 하는 것인 감사를
상대를 노예처럼 부려먹어야지 나올까 말까한 그 감사를
단순히 나와 함께하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감사로 수준을 낮추어주십시오.
욕망으로 장식한 우리의 가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야합니다.
곧 지난날의 생활 방식에 젖어
사람을 속이는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여러분의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내가 받은 것을 감사하는 것이 맞습니다.
내가 받은 것, 나와 함께하는 이들,
내 주위에 있는 환경들, 모두 감사해야할 것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무언가가 나와 함께한다는 것이 감사해야하는 것들입니다.
그 창조된 것들과 함께하며 우리는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배고프다고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하느님께 나한테 해준 것이 뭐가 있냐고 외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감사하지 못하는 이는 사랑할 수 없고 저비용 고효율만 따집니다.
그런 이는 하느님의 빛을 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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