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기분이 나쁠 때 지혜로운 선택을 하십시오

글쓴이 :  바울라님 2018-08-04 00:23:02  ... 조회수(5)
    이 게시글이 좋아요(1) 싫어요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여러분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

2018.8.4

 

제1독서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이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 예레미야서  26,11-16.24

복음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마태오  14,1-12

 


 

기분이 나쁠 때 지혜로운 선택을 하십시오

 

여러분은 상대가 이런 행동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행동들이 있나요?

그러니까 굉장히 짜증나는 행동들 말이죠.

저의 경우에는 상대가 갑자기 약속을 잡아서 부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잠깐 나와라 그런 건 괜찮은데 30분 이상 소요되는 일을

약속도 없이 갑자기 부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런 의미로 저는 깜짝 파티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놀라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갑자기 스케줄이 생긴 것이 싫은 것입니다.

심지어 윗사람 이름까지 댄다면 짜증은 극에 달합니다.

이런 경우죠.

“지금 누구랑 함께 있는데 너 온다고 말씀드리니까 기다리신다더라 빨리 와”

이런 경우에는 “바쁘다고 하고서 안 나가서 그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까...“

심각하게 내적갈등을 합니다.

뭐 쪼잔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사전 약속 없이

갑자기 부르는 행동은 저에게는 상당히 무례로 느껴지는 행동입니다.

상대가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같은 위치의 동기든 말이죠.

여러분에게도 각자 이런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내가 느끼기에 무례로 느껴지는 상황들이 말이죠.

사실 그건 죄랑은 상관없습니다.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싫어하는 것이 있을 수 있죠.

다만 그것을 통해 사람을 무시하고 미워한다면 그것은 죄입니다.

 

종종 다양한 작품에서 우발적인 범죄자들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너 때문이야. 범죄는 자기가 저질러놓고서 피해자 탓을 하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어떤 어떤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했다고 말이죠.

우리는 어떤 행동을 싫어할 수 있습니다.

죄는 미워하는 것은 허용되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윗도 시편을 통해 이렇게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일을

저의 눈앞에 두지 않으오리다.

죄짓는 일을 제가 미워하여

그런 것 저에게 붙어 있지 않으리이다. 시편 101.3

 

상대에게 이 행동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마땅치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상대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예시를 들자면 '변명하지 마라', '아 됐고', '그런 거 하지 마라'  등등 이런 이야기들이죠.

이 말에 깔려있는 기반이 나는 상대가 정말 싫기 때문에

그의 말을 하나도 듣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정말 잘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지만

아무리 훈계를 하는 입장이라도 상대의 입장을 무시하는 것은

나는 상대 따위는 관심 없고 죄를 단죄하는 것만 관심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무시하는 것에서 당신의 그런 의도가 느껴지기 때문에

상대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반항감만 조성되는 것입니다.

 

정반대로 상대의 훈계를 거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문제되는 행동은 그저 듣기 싫다는 행동을 취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헤로데와 헤로디아는 그저 듣기 싫은 말을 없애기 위해

처음에는 훈계하는 사람을 말을 못하도록 억압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억압했다고 느낄 때 틈새가 보였을 때 죽여버립니다.

우리의 행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듣기 싫은 말을 대할 때 먼저 그 사람이 말을 못하게 막아버립니다.

그리고서 나만 말을 하고서 그 사람을 완전한 죄인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다시는 말이란 것을 못하도록 그 자리에서 창피를 주고 내쫓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도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죄 없는 이의 피, 그것이 죽음만을 이야기할까요?

성경에서는 생명이 없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네.

그들의 손은 만지지 못하고

그들의 발은 걷지 못하며

그들의 목구멍으로는 소리 내지 못하네.

 

생명이 없는 우상을 생명을 섬기듯이 섬기는 것도 죄이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생명이 없는 우상처럼 여기고 그렇게 만드는 것도 죄입니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중이던, 상대에게 지적을 받는 중이던,

내가 기분이 불쾌하든, 짜증나든지 간에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은 불의한 선택이며

당장은 내 뜻대로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책임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기분 나쁜 상황은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때 마귀가 제시하는 넓고 쉬워 보이는 길을 조심하시고 지혜롭게 대처하십시오.

그 지혜는 사랑과 존중에서 시작됩니다.

네이버 블로그 양 세마리의 잡생각들 https://blog.naver.com/crodeiran

카카오스토리에서 공유하기 페이스북에서 공유하기 네이버 밴드에서 공유하기 트위터에서 공유하기 Blogger에서 공유하기


  댓글 쓰기

 
로그인 하셔야 댓글쓰기가 가능합니다. 여기를 눌러 로그인하세요.
 

이전 글 글쓰기  목록보기 다음 글

 

본 게시물에 대한 . . . [   불량글 신고 및 관리자 조치 요청   |   저작권자의 조치요청   ]
| 마리아사랑넷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메일추출방지정책 | 사용안내 | FAQ | 질문과 답변 | 관리자 연락 | 이메일 연락
Copyright (c) 2000~2024 mariasarang.net , All rights reserved.
가톨릭 가족공간 - 마리아사랑넷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