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17주일]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
2018.7.29
제1독서 <먹고도 남을 것이다.>
▥ 열왕기 하권 4,42-44
제2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에페소서 4,1-6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 6,1-15
올바른 봉헌이 잊혀진 세대
오늘 독서와 복음 각각의 이야기에서는 예언자를 두 명씩 볼 수 있습니다.
누구와 누구일까요?
복음에서는 헷갈리실 수도 있지만 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들의 일을 행하십니다.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중개자로서
그들이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는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치셔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독서의 엘리사는 예언자로 이야기 되었으니 당연합니다.
그럼 나머지는 누구일까요?
독서에서는 바알 살리사에서 온 어떤 사람과
복음에서는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져온 어떤 아이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예언자인가?
제가 예수님께서 예언자들이 하던 일을 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이 바친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친다.
예언자들은 그 이전에 '자신이 가진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쳤습니다.
자기 자신이 온전히 바치는 법을 알기에
'다른 이들에게 바친 것'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과 엘리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새로운 예언자인 셈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즉 신앙이 올바르게 자라기 위해서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배워야합니다.
무엇이 올바른 봉헌인가, 무엇이 올바른 신앙인가를 배우기 위해서는 올바른 것을 배워야죠.
그러나 이 예언의 직분, 올바른 신앙에 대한 가르침은 사라져갑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앙의 결과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많은 군중은 그 광경을 보면서 결과 밖에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결과를 보면서 아 저런 결과가 나오면 하느님의 뜻인가 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이비들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조금만 은사가 생기면 진정하지 못하고 '나는 하느님께 선택되었다'고 외치죠.
또 성당에서 서로 하하, 호호 하고 친교를 이루면 다인 줄 압니다.
'그냥 평화로우면 되는 거지 뭐' 하면서 살아갑니다.
교회가 충만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그저 결과를 어쭙잖게 모방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만큼 나누어 주셨고
“그들이” 배부른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사람들'과 '그들이'
그저 그 5천명을 대표하는 몇 명의 사람들을 표현한 것이었을까요?
5천명, 더 나아가 5천명 뿐만 아닌 그 이상 되는 “모든” 이들이 배부르게 먹은 것이었습니다.
100명이든 5천명이든 그 이상이든
그 자리에 모였던 이들이 모두가 충만해진 것이었습니다.
이는 올바른 봉헌을 통해 받은
하느님의 평화이며 그로 인해 이루어진 일치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우리의 일치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십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우리가 오늘날 느끼는 충만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교회에서 느끼는 충만은 무엇입니까?
마실 때는 맛있게 마셨지만 떠나고서 구토하는 술로 인한 충만입니까?
그냥 몇 명에서 수다 떨고서 얻는 웃음입니까?
마귀를 구마하고서 얻는 승리감입니까?
멋진 연설을 하고서 뿌듯한 그 느낌입니까?
성당에서는 충만하고 가정은 무너지는 일시적인 충만함입니까?
어떤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는 명예욕입니까?
이것이 옳은 충만이라고 보십니까?
올바른 봉헌을 통해 얻은 하느님의 평화는
올바른 봉헌을 통해 보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무엇에 봉헌하고 있습니까?
술입니까? 친구입니까? 잡담입니까? 규정입니까? 방종입니까?
높은 자리입니까? 권력입니까? 은사입니까? 찬사입니까?
이런 것들에게 우리 자신을 봉헌하고 있으니 우리는 헛된 충만을 돌려받을 뿐입니다.
모든 만물은 대가를 지불하면 무언가를 돌려줍니다.
그러나 전부 유한하고 헛되며 부작용이 있습니다.
예를 여러분이 술에 자신을 봉헌한다면
자신과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충만할지언정
술을 못 마시는 이들은 충만하지 않습니다.
또한 집에서 여러분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충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헛된 충만은 일부만을 즉 눈에 보이는 대표들만을 충만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충만은
여러분과 관계되는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고도 남을 정도의 충만을 보여주고
많은 이들을 여러분들께 끌리게 합니다.
처음에는 군중들처럼 신기하게 바라보고,
여러분들을 질투하거나 제멋대로 다루려는 이들이 있겠지만
그 봉헌이 끊어지지 않고
그 봉헌을 통해 얻은 평화의 끈이 끊어지지 않으며
그 평화를 통해 이룬 일치기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들도 여러분을 통해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는 것을 배웁니다.
봉헌을 헛되이 여기지 마십시오.
물론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봉헌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시기 위해
우리가 봉헌한 것을 통해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기 위한 응답이 봉헌입니다.
올바른 봉헌을 모르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인 그대에게 봉헌 예물을 가져오면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제 멋대로 헛된 충만을 돌려줄 것입니까?
아니면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실 것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올바르게 봉헌하고 있습니까?
우리 형제에게 받는 것들을 올바르게 봉헌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일시적인 무언가를 주는 스스로 선택한 하느님의 대체품에
헛된 봉헌을 하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헛된 봉헌을 하면 여러분의 자녀도 헛된 봉헌을 배웁니다.
헛된 봉헌은 교회 밖에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입니다.
나는 올바른 봉헌을 하고 있는 것인가 성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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